이덕희(인과계열12)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날씨가 서늘해지며 가을 냄새가 난다. 눈 깜짝할 새에 시간들이 흘러가고, 가끔 그대로 있는 자신의 모습이 불안하다.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지만 학점에 자격증, 취업 생각까지 하면 고되더라도 차라리 영어 책을 펼치고 앉아 있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하다. 이렇게 떠날 수 없는 이들을 위해 로드 무비에 대하여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길 위의 여정을 필름 안에 담은 로드 무비이다. 로드 무비가 삶에 대한 비유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길 앞에서는 인간은 온전히 발가벗겨져 삶과 마주하게 된다. 어떠한 것을 영원히 소유할 수도 없고, 수많은 만남 뒤에는 이별이 따라 온다. 희노애락 어느 감정이든지 영원히 머무르지도 않고 순식간에 걸어온 발자국들은 과거가 되어 버린다. 하루에도 수십 번의 선택을 하여야 하고,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조차 예측 할 수 없다. 또한 '길'은 우리의 관습과 통념의 범주를 넘어선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하기에 온전히 나 자신이 중심이 되어 마땅히 그래 왔던 것들에 대해 감히 새롭게 정의할 수 도 있다. 그래서 길은 삶에서 빈곤, 범죄, 질병, 공허함등의 이유로 삶에서 소외된 이들을 그 품에 고즈넉이 품어 주기도 한다. 어찌하여 길 위로 떠나게 되었든 간에,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법을 배우거나 혹은 혼자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든지, 길은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 준다.
 
로드 무비를 좋아하게 된 것은 아마도 '방황'을 삶의 일부로 받아 들여 주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에서는 방황이 곧 실패나 낭비와 동등한 의미로 치부되지만, 로드 무비 속에서는 방황조차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인정 된다. 무언가에서 실패를 하면, 아무도 다그치지 않아도 스스로 움츠려 든다. 지금 있는 곳에서 벗어나기 두렵고, 양 손에 모든 것을 가득 쥐고도 새끼손가락까지로도 무언가를 그러쥐고 싶어 한다. 서점 가판대에는 가장 쉽고 빠르게 성공하는 법들을 비법인 냥 설명해 놓은 책들이 넘쳐 난다. 무언가를 위해 목표를 세우고 최선을 다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성공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며, 주변을 둘러 볼 여유 없이, 획일적 목표만을 위해 쳇바퀴 돌듯 사는 것은 어떠한 의미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등바등하며 억지로 어딘가에 머무르려 하기 보다는, 필요하다면 잠시 붙들어 잡았던 것을 놓고 조용히 삶의 흐름에 맡길 줄 아는 지혜가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2시간 남짓한 러닝 타임이 끝나갈 때 즈음, 루디와 마틴은 그리도 원하던 바다에 도착하고 넘실거리는 파도 앞에 차례로 쓰러진다. 석원은 자살한 대식을 끌어안고 울부짖고, 델마와 루이스도 차를 타고 절벽 위로 날아오른다. 마이크는 도로 한 복판에서 쓰려져 누군가에 의해 실려 간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면 낭만적인 허구는 사라지고 나만이 현실에 덩그러니 놓여 있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는 허구의 몇 천배 이상의 시간이 남아 있다. 무언가를 이루어 낼 시간도, 그 것을 위해 헤맬 시간도 충분하다. 우리의 삶의 끝에 과연 무엇이 놓여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