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유진 기자 (nipit616@skkuw.com)

시는 문학의 뿌리다, 어느 문화권이나 산문보다 운문이 먼저 생겼고, 사람들은 아름답게 꾸민 운문을 신 앞에서 노래했다. 본질적으로 주술의 언어에 근본을 두고 있는 것이다. 미래에 영향을 끼치는 힘을 말에 담고 다가올 미래를 말로 예언하는 것. 모두 시작(詩作)에 은밀히 내재된 의도였다.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를' 것이라 광복의 기원을 담아 노래한 이육사의 시, '구름으로 가득 찬 더러운 창문 밑에 한 사내가 쓰러져 있다'고 섬뜩하리만치 절묘하게 제 죽음을 예언한 기형도의 문장에서 그런 주술성을 느낄 수 있다. 언어에 가장 근원적인 이미지를 담을 수 있는 문학 갈래, 시를 들여다보았다.

  시를 읽는 코드 세 가지 

시인은 시를 쓸 때 한 단어, 한 행을 고심해서 배치한다. 밀 퇴(堆), 두드릴 고(敲)로 이뤄진 '퇴고'라는 단어는 '중은 달 아래 문을 두드린다'라는 짧은 문장에서 '두드린다'가 좋을지 '민다'가 좋을지 고심한 데서 나온 말이 아니던가. 일상적 발화라면 어느 쪽이든 좋을 테지만 시를 지을 때는 그럴지 않다. 이렇게 시인이 정교하게 '코드화'한 텍스트를 해석하는 것이 시를 읽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시의 코드화를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로 비유와 상징, 그리고 객관적 상관물을 꼽을 수 있다. '비유'는 자신이 표현하려는 바를 다른 사물이나 대상에 빗대어 나타내는 것이다. 원관념은 원래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고 보조 관념은 원관념의 뜻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끌어들인 개념이다.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라는 정지용의 시구에서 '늬'라는 원관념을 '산새'가 수식하는 것이 비유적 표현의 예다. '상징'은 비유의 하나인 은유와 비슷한데, 은유에서 원관념이 생략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비유와는 명확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상징의 원관념과 보조 관념은 서로의 유사성에 구애받지 않으며, 비유는 보조 관념이 원관념과 1:1로 연결되지만, 상징은 여러 개의 원관념을 동시에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상징과 비유에서 보듯이 시의 언어는 모호성을 띤다. 하나의 개념을 직선적으로 지칭하기보다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여기서 '객관적 상관물'의 역할이 드러난다. 객관적 상관물이란 창작자가 표현하려는 자신의 정서나 사상을 다른 구체적인 사물을 이용해 간접적으로 환기할 때 쓰이는 시적 도구다. 고구려의 유리왕은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펄펄 나는 저 꾀꼬리/암수 서로 정답구나'라고 읊었다. '사이좋은 꾀꼬리 부부'는 그의 외로움을 부각하는 역할을 하는 객관적 상관물인 것이다. 함축과 암시가 시의 본질로 간주되면서, 객관적 상관물 기법은 현대시 창작의 대표적인 기법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난해성인가 전위·실험성인가

시는 갖가지 상징과 다의적인 단어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영화와 같은 다른 매체처럼 단번에 해석되지 않는다. 이런 난해성은 일반 대중들에게서 시가 꾸준히 멀어지게 된 원인 중 하나다. 영상 매체 시대의 대중들은 직설적으로 이미지를 전달하지 않는 '시'에 무관심해져 갔고, 시인들은 점점 더 수수께끼 같은 시어를 사용해 갔다. 난해성에 대한 논란은 1920년대부터 계속돼왔다. 일제 강점기의 문학가 김기진은 "시가 전 대중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되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그 원인을 시인들에게 돌렸다. 한편 동시대의 대표적인 모더니즘 시인 김기림은 난해성은 시의 숙명이고,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중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시는 전위주의에 앞서는 새로운 가치의 체계에 속하는 것인데, 독자들이 이에 대한 이해 없이 시를 대하기 때문에 어렵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오감도 시 제4호> 난해하기로 이름 높은 이상의 시다. 이 시를 해석하지 못한다고 무지하다는 평을 들을 일은 없다. 독자와의 원활한 소통을 염두에 두고 있는 시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인 김수영은 "정도를 벗어난 난해성은 그저 불가해성"이라며, 난해성을 위한 난해시를 비판했다. 이상의 출현 이후 수십 년이 흘러 모더니즘 계열의 난해시가 범람하자 이런 맥락에서 지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신경림 시인은 "난해시의 발생은 민중적 바탕의 손실에서 비롯하며, 반역사적 엘리트주의의 발로"라고 주장했다. 오늘날에는 다시 시의 난해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추세다. 난해성 대신 전위, 실험 등의 용어를 사용하며 그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2000년대 활발히 작품활동을 한 '미래파' 시인들의 전위적인 시들이 그를 대표한다. 세월이 흐르면 이들의 시가 21세기의 시적 경향으로 그려질 것이다. 시대를 보여주는 몇 글자의 창, 그들의 행보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