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법05)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또다시 여론이 들끓고 있다. ‘나영이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나주 사건’이 터지면서 국민들의 불안감이 분노로 폭발해버린 것이다. 사회 일각에서는 심지어 ‘물리적 거세 제도’까지 도입하자는 의견이 나올 정도로, 흉악 성범죄자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 입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반인륜적인 행위들에 대한 격렬한 분노에 충분히 공감하고, 때마침 쏟아져 나오는 정책 제안들의 취지도 충분히 이해하겠지만, 필자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사회의 움직임들에 조심스럽게,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싶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우리나라의 성범죄자들에 대한 처벌의 입법 수준이, 이미 충분히 강력한 수준에 와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납득할 수 없겠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외국의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제도상’으로 우리는 거의 동일한 수준의 처벌을 하고 있다. 다만 문제는, 그런 ‘제도‘들이 제대로 시행·집행되고 있지 않다는 데에 있다. 즉, 국회에서는 이미 강력한 처벌을 주문해놨는데 사법부에서 이를 따라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괴리가 생긴 것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판사들의 인식이 대체로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즉 문제의 본질은 우리 사회(특히 사법부)의 성차별적 인식과 가부장적 문화에 있는 것이지, 입법과 제도의 미비가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로, 설사 강력한 처벌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효과가 별로 크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형사정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범죄발생률 감소이다. 과거의 추악한 범죄행위에 대한 응보의 기능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중요한 기능은 미래의 범죄를 예방하는 기능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강력한 처벌이 우리에게 안전한 미래를 가져다 줄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강력한 처벌과 범죄 발생 감소율 사이에 별다른 인과관계가 없다는 사실은, 이미 범죄학계에서는 오래된 상식이다. 오랜 역사에 걸친 수많은 실증적 연구들이 ‘처벌이 강해져도 범죄 발생률에는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것이다. 징역형뿐만 아니라, 전자발찌, 화학적 거세와 같이 관련된 모든 형사정책상의 제도들이, 대부분 효과 없기로 검증되었거나,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 있다. 물론 그렇다고 처벌이 없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처벌은 있어야 한다. 처벌이없으면 범죄가 늘어날 것이라는 역의 명제는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효율성’이다. 우리는 지금 더 이상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정책에 너무 많은 예산을 쏟아 붓고자 한다는 것이다. 징역형을 예로 들면, 수형자 1인을 감당하기 위해 정부가 얼마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지 생각해본 적 있는가?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수형자 1인을 가둬두기 위해 지불되는 비용이 한 달에 100만원에 달했다고 한다. 아마 지금은 더 많은 비용이 들 것이다. 만약 지금 여론의 추세대로라면, 앞으로 교도소에가둬지는 인구의 숫자가 몇 배는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 많은 재원은 다 어디서 마련할 것인가? 공짜 점심은 없다. 나라의 인력과 예산, 그리고 재원은 늘 한정되어 있다. 한정된 자원을 생각했을 때, 과연 강력 처벌 일변도의 형사정책이 바람직한 것일까?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다른 제도들의 처지도 비슷비슷하다. 재범 방지를 위해 마련한 전자발찌제도는 시스템 구축을 위해 쏟아 부은 예산만 몇 백억 원에 육박하는 데, 인력부족 등 각종 현실적인 문제와 재범 방지 효과에 대한 검증 미비 등으로 실효성 논란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다. 거세 제도 역시, 성범죄 충동 억제 효과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이 이뤄지고 있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즉, 아무리 많은 범죄자들이 거세를 당한다 해도, 성폭력 범죄 발생률은 줄어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과연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지금 또다시 강력한 처벌을 위해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해야하는 것일까? 필자는 그것이야말로 넌센스라고 본다.

그렇다면 강력한 처벌 외에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효과적인 대책으로는 뭐가 있을까? 우선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사회인식을 개선하는 데에 더욱 초점을 맞출 것을 제안해볼 수가 있겠다. 사실 성폭력 범죄의 가장 크고 근본적인 이유는 가부장적이고 남성우월적인 사회인식에 있다는 것이 범죄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가족 내에서 여성과 아동의 권리가 약한 사회일수록, 여성의 지위가 남성의 지위보다 열악한 사회일수록, 성폭력에 의한 여성과 아동의 피해가 더욱 크다는 것이다. 비록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전통적으로 유교문화권에 강하게 귀속되어 가부장적인 문화의 뿌리가 깊은 한국은, 이런 면에서 성폭력 문제에 대해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여권을 더욱 더 신장시키고, 사회 곳곳에 잔존하는 남녀 간의 성차별적인 인식을 개선시키기 위한 노력이 더욱 더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특별히 언론사에 요구할만한 것은, 지나친 일화적 프레임 위주의 보도와 선정적인 ‘사건 중심’의 보도를 지양해달라는 것이다. 이러한 보도 행태는 잘못된 여론을 형성하고, 성폭력 범죄에 대한 그릇된 인식, 즉 강간통념(Rape myth)을 조장하기 쉽기 때문이다. 단순히 자극적인 ‘사건’을 기술하는 대신 ‘사회’와 ‘문화’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기획기사는 피해자의 개인정보 누출 우려도 적고, 형사 정책상으로도 바람직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가정'이 무너지지 않게 국가가 더욱더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미국 범죄학계의 원로인 허쉬(Hirschi) 교수에 따르면, 아이가 성장과정에서 어떤 대상에 대해 얼마만큼의 애착(attachment)을 갖고 또한 그러한 관계를 얼마나 끈끈하게 유지하느냐에 따라서, 범죄의 충동을 참지 못하는 범죄자로 성장할지, 잘 참는 일반인으로 성장할지가 결정된다고 한다. 부모님을 여의고 불우한 환경에 처한 아이들에게, 우리 사회가 공동체의 관점에서, 부모의 역할을 대신 해줄 수 있는 제도적인 후견 조치를 좀 더 촘촘히 시행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장래의 범죄율 감소에, 강력한 처벌보다 훨씬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필자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결국 이것이다. 예산과 인력이 한정된 것이라면, 좀 더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집중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우리가 계속해서강력한 처벌만을 고집하게 된다면 우리의 마음이야 후련해질지도 모르겠지만, 이는 성폭력 예방 교육과 교도행정 개선, 성폭행 피해자 처우 개선 등 많은 분야에 있어서 총체적인 부실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실은 결국 또 다른 형태의 성폭력 범죄를 낳게 될 것이고, 우리 사회는 성폭력 범죄의 증가라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될 것인데, 과연 이러한 미래가 바람직한 것인가? 부디 이번 일을 계기로, 본질적인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대책들이 나와서 우리 사회가 파렴치한 범죄자들로부터 하루빨리 해방되기를, 간절히 소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