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영재 편집장 (ryuno7@skkuw.com)

야구팬이라면 지난 13일 LG 트윈스와 SK 와이번스의 경기 막바지를 인상 깊게 봤을 것이다. LG 김기태 감독은 0-3으로 지고 있던 9회말 2아웃 상황에서 팀의 중심 타자인 박용택을 빼고 대타를 기용했다. 대타는 역전을 위한 회심의 카드로 기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고다. 그런데 배트를 들고 걸어 나오는 선수는 신인 ‘투수’ 신동훈이었다. 어리둥절한 신동훈은 공을 타격할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김기태 감독은 심지어 대기타석에 있던 정의윤도 벤치로 불러들였다. 사실상 이기기기를 포기한 것이다. 결국 이 경기는 신동훈이 삼진을 당하고 종료됐다.

이후 김 감독의 행위를 둘러싸고 여러 해석이 뒤를 이었다. SK가 9회에만 투수를 두 번이나 교체한 것에 화가 났는지 김기태 감독은 “죽어가고 있는 사람을 살렸다가 다시 죽이는 행위로밖에 볼 수 없다. 죽어가고 있는 사람에게 옆에서 장난치면 당연히 기분이 안 좋다”며 대놓고 불만을 토로했다. 반면 SK 이만수 감독은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며 “이해할 수 없다. 기만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긴급 상벌위원회를 열어 ‘팬들에 실망감을 안겨주고 스포츠 정신을 훼손시켰다’며 김 감독에 벌금 500만원을 부과했다.
 
김 감독의 행위에 무언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많다. 이전부터 김 감독이 야구계의 불문율을 지키지 않고 있던 이 감독에게 감정이 쌓여왔을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필자는 야구팬들이 김 감독의 결정을 옳고 그름의 문제로 접근하지 않는 것에 내심 놀랐다. 야구를 현장에서 보던 관중들은 말할 것도 없고 TV로 중계를 지켜보던 팬들은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승패를 떠나서 야구에서는 9회에 큰 점수 차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오는 안타 하나도 소중히 여긴다. 프로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팬들에게 보답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리 적은 기회였어도 최선을 다해 임하지 않은 태도는 많은 팬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김 감독이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큰 의미를 지닐지 몰라도 기본적인 책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비난받아야 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13일에 열린 인사캠 확대운영위원회(이하 확운)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단과대별 학생회비 기본배정액 삭감 안건이 부결되자 경제대학 김성웅 학생회장을 비롯한 몇몇 위원이 회의장에서 나가버린 것이다. 당일 위원회 전에 있었던 중앙운영위원회에서는 원래 150만원인 기본배정액을 140만원까지 삭감하는 것으로 협의가 되는 듯했다. 그러나 확운에서 삭감 여부 자체가 과반의 찬성을 얻지 못해 부결되자 김성웅 회장 외 2명이 퇴장했고, 이에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게 된 확운은 더 이상 진행될 수 없었다. 김 회장은 지난 1학기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이하 전학대회)에서부터 꾸준히 기본배정액 삭감을 주장해왔다. 학생회비 납부비율에 큰 차이가 없다면 경제대 학우들이 낸 학생회비와 유학대 학우들이 낸 학생회비는 10배 가까이 차이가 날 것이다. 그러나 기본배정액 제도로 인해 경제대학에 배분되는 학생회비는 유학대학 학생회비의 2배에도 미치지 못한다. “경제대 학생이 다른 소규모 단과대의 학생회비를 내 주는 꼴이 돼 버린다” 김 회장의 볼멘소리도 주목할 만하다.
 
필자는 제3자의 입장에서, 경제대학과 같은 대규모 단과대 측은 기본배정액 제도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이에 그간 표출돼왔던 소규모 단과대의 이기주의적 태도에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김 회장은 자신이 퇴실하면 확운이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김 회장의 태실은 경제대 학우들을 대표해 반대표를 던진 위원들에게 가장 강력한 방법으로 항의를 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방법이 틀렸다. 현실적으로 한 학기에 두 번 이상 열리기 어려운 전학대회를 준비하는 확운이었다. 기본배정액 관련 안건 뒤에는 두 개의 안건이 더 남은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 전학대회가 어떤 안건을 갖고 열릴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전학대회와 그것을 준비하는 확운의 상징성과 전체 학우를 대표하는 위원단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자칫 전학대회를 무산에 가갑게 만들 수도 있는 김 회장의 행위는 확실히 오판이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와는 상관없이, 대표자에게 주어진 기본적인 역할과 임무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점은 지적받아 마땅하다.
 
김 감독과 김 회장의 의중은 이번 기회로 수신자들에게 충분히 전달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 큰 것을 포기해야 했다. 목소리를 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어도 프로와 대표자로서 각각 기본을 지키는 방법은 정확히 하나씩이다. 어떤 분야든 상관없이 기본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