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과대 몸짓패 '아성'

기자명 신혜연 기자 (shy17@skkuw.com)

까만 티셔츠 차림에 하얀 목장갑을 낀 젊은 청년들이 바쁘게 몸을 놀린다. 다소 비장한 가사의 민중가요가 힘찬 리듬으로 전개되자, 음악에 맞춰 절도 있게 이어지는 동작들이 곧 보는 사람의 마음에까지 혁명의 열기를 불어넣는다. 모여든 관중들은 하나 돼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청년들의 몸짓에 응원을 더했다. 지난 2일 어스름한 저녁 무렵, 홍대 걷고 싶은 거리에서 벌어진 몸짓패 합동 공연 ‘끝나지 않은 여름’의 한복판에 우리 학교 이과대 몸짓패 ‘아성(牙城)’이 있었다.
몸짓은 87년 6월 항쟁을 거치면서 생겨난 ‘문선’의 일종이다. 문선이란 '문예선동'의 줄임말로 대중을 이끌고 의식화하는 문예 장르를 말한다. 80년대 말부터 선거용으로 널리 쓰이며 대학가의 문화로 자리 잡기 시작한 몸짓은 학생운동 세력이 약해짐에 따라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한때 서울권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우리 학교 인사캠 몸짓패 ‘전율’과 ‘싸울아비’ 역시 2007년을 기점으로 사라졌다. 현재 인사캠에는 단과대를 중심으로 한 몇몇 소모임 율동패들이 선거철에 맞춰 단기적인 활동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자과캠 유일의 몸짓패 아성은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1998년 물리학과 학생회 구성원들의 주도로 결성된 아성은 현재 새내기 5명과 2학년 운영진 8명을 포함해 재학생 38명이 활동 중이다. 주 2회 진행되는 정기 연습과 세미나를 바탕으로 매년 4·30 문화제, 수원지부 노동문화제 등에 참여하고 학기 말 정기공연을 벌인다. 새로운 몸짓을 만들려는 노력도 계속한다. 김종은(물리08) 학우는 “다른 몸짓패에 비해 창작 비중이 매우 높은 편”이라며 자부심을 나타냈다.
학생운동이 힘을 잃고 있는 오늘날도 몸짓은 여전히 메시지를 담은 춤이다. 패장 윤평화(물리11) 학우는 “맞으면 아프다고 말해야 알 수 있는 것처럼 소리 없이 억압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투쟁이 필요하다”며 특히 몸짓이 “사회적 약자들이 핍박받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춤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아성은 지난 학기에 명동과 시청 앞 대한문 쌍용자동차 분향소에서 공연을 벌였고, 지난 2일에는 홍대 걷고 싶은 거리에서 쌍용자동차 사태를 알리기 위해 △고려대 △경희대 △성신여대 몸짓패들과 연합한 거리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이처럼 아성은 단순히 몸짓이라는 동작을 배우는 동아리가 아닌 사회를 향한 메시지를 만드는 공간이다. 매주 진행되는 세미나에서는 자본주의 사회가 옳은 것인지, 핍박받는 약자들을 도울 방안이 무엇인지 등을 주제로 의견을 나눈다. 김종건(물리11) 학우는 “다 함께 공연 준비를 하고 집회에서 공연하는 것처럼 힘을 합해 하는 활동이 좋다”며 “특히 세미나에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생각을 늘려나가는 것이 유익하다”고 몸짓패의 매력을 설명했다. 윤 학우 역시 “기존의 사랑 노래와 달리 우리의 삶을, 현실을 표현한다는 데 색다른 매력이 있다”고 밝혔다.
사회 문제에 대한 고민과 동시에 아성은 여느 동아리처럼 강한 친목을 자랑한다. 윤 학우는 몸짓패들이 어려움을 겪는 지금까지도 아성이 이어져 올 수 있었던 비결로 ‘끈끈한 인간관계’를 꼽았다. 연습실이 없어 아스팔트 바닥에서 연습한다는 그들은 “‘아성’이라는 이름은 몰라도 ‘공대 가는 길에 이상한 거 하는 애들’은 다들 안다”며 웃었지만, 그럼에도 “그 모습이 너무 좋아서” 몸짓을 계속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처음에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만큼 열심인 사람들의 열정이 좋다는 말이 아니었을까. ‘삶의 어둠 속에 피어나는 희망의 몸짓’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늦은 저녁 어둠이 내려앉은 공대 가는 길에서 오늘도 아성은 희망의 몸짓을 피워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