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영재 편집장 (ryuno7@skkuw.com)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아픈 걸로만 따지면 요즘 사람들은 다 회춘하고 있을 걸?”
친구들과 모여 서로의 힘든 인생살이를 이야기할 때마다 뱉어내는 볼멘소리다. 언젠가부터 청춘은 당연히 힘들고, 그 힘든 것을 이겨내야 비로소 성숙한 어른이 된다는 것이 의심할 바 없는 진리처럼 통용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청춘들은 기계적으로 ‘힘든 삶’에 떠밀리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심지어 나이를 먹을수록 더 힘들어진다.
현대인들은 새로운 우상을 숭배하고 있다. 바로 ‘미치는 것’이다. 자기 분야에 미쳐버린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존경한다. 그런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나는 언제 한 번 미쳐볼까’하고  자신을 깎아내리기도 한다. 하루에 잠을 네 시간만 자고, 식사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공부나 일에 쏟아 붓는 사람이 존경을 받는다. 그런 사람들이 쓴 자기계발 서적은 대개 인기가 많다.
이는 사회적 현상이다. 때문에 자녀를 둔 학부모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누군가가 밥을 먹으면서도 공부를 미친 듯이 열심히 해서 서울대 의대를 갔다는 사실을 접하면,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경탄을 금치 못하며 자기 자식도 그렇게 하기를 바랄 것이다.
하루는 부친께 전화가 왔다. “며칠 전에 방영한 스타특강쇼 한 번 봐라. 네가 느끼는 게 많을 거다.” 궁금해서 다운로드를 했다. 방송에서는 토익 스타 강사로 유명한 유수연 씨가 20대들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행동 없는 고민만 하면서 자신의 초라한 현실을 시대 탓, 사회 탓으로 돌리느라 밤잠을 못 이루는 청춘들에게 문제는 너 자신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물론, 정말 대충 살면서 롤렉스 시계와 메르세데스 벤츠를 꿈꾸며 ‘난 왜 안 되지’ 하며 고민만 늘어놓은 사람들에게 유수연 씨의 지적은 촌철살인일 것이다. 그런데 그 지적이 그렇지 않은 평범한 사람에게도 절실하게 다가가는 건 언뜻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이러한 현상을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봤다.
대부분이 성공을 위해 미치는 것을 택한다. 그렇게 미치는 사람들은 진정 그것이 좋아서 미치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진정 하고 싶은 일이 아닌데도 자신의 대부분의 시간과 노력을 투입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본말전도(本末顚倒)다. 영어 공부가 정말 좋아서 하는 사람은 영어에 미치는 것이 당연하다. 자연스레 영어 실력과 그에 따르는 부, 명예 또한 주어질 것이다. 그런데 영어를 싫어하는 사람이 미래의 안정된 삶을 위해 자신의 20대를 하기 싫은 영어 공부에 모두 투자했다고 생각해보자. 그 사람의 20대는 인생에서 사라진다. 어디까지나 미래는 불확실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다. 불확실한 행복을 위해 지금 당장의 행복을 포기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 그것은 허구에 가깝다. 이것이 첫 번째 생각이다.
두 번째 생각은 조금 극단적일 수도 있다. 지금은 미치지 않고서는 ‘제대로 먹고 살 수조차 없는’ 세상일 수도 있지 않은가? 미치기 싫어도 미쳐야만 하는 세상 말이다. 필자가 이때까지 들어왔던, 20대가 생각하는 기본적인 삶의 조건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웬만한 초봉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야말로 미쳐야만 한다. “선생님이 되면 초봉이 140만원에요. 집 장만하는 것 어렵지 않아요. 아무것도 안하고 숨만 쉬고 살았을 때 89세에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어요”라는 풍자개그에 실소를 머금은 사람은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물론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도 꽤 미쳐야 한다.
20대의 대부분을 독서실이나 그 외의 답답한 곳에서 사용해버리는 이들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저 사람도 미래를 위해 가장 소중한 현재를 포기하는 것인지, 혹은 미쳐야만 살 수 있는 것인지. 만약 당신의 결론이 후자로 내려지고 ‘무언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면, 변화의 기회가 어쩌면 올해 말에 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