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우리학교 일일 체험기

기자명 나영인 기자 (nanana26@skkuw.com)

▲ 김원식 기자 wonsik0525@skkuw.com
일일 학생 체험을 위해 오전 10시 반 즈음 조계사 한 건물에 있는 '희망의 우리학교'를 찾았다. 일반계 고등학교는 3교시가 한창 진행될 시간이지만 이곳은 등교 시간이다. 지하 1층에 자리한 사무실 바깥 벽면에는 '죽음의 입시경쟁교육 중단하라'고 써진 카드가 붙어 있었다. 사무실은 도서관으로도 이용되고 있기에 학생들의 편의를 고려한 인테리어가 아기자기했다.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사무실 오른쪽 구석에서 기르고 있는 고양이 7마리였다. 귀여운 고양이들과 크고 작은 화분들, 그리고 금붕어가 든 어항이 따뜻하고 생기 넘치는 희망의 우리학교만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 같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2년이 지난 내가 이번 수업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그 와중에 학생이 한두 명씩 차례로 도착하기 시작했다. 6명의 학생 중 정윤서 양이 제일 먼저 등교했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고양이가 밥을 잘 먹고 있는지부터 챙겼다. "트위터에서 고양이를 두 달간 임시로 보호해 줄 사람을 구한다는 멘션을 보고 제가 데려 오자 했어요." 윤서양은 사무실에서 고양이를 길러보자는 깜짝 제안도 모두의 동의를 얻어 결정됐다고 덧붙여 말했다. 그 말 속에서 학생들의 의견이 중심이 되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뒤이어 신선혜 양과 엄지원 양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어제도 본 사이건만 지난밤 있었던 일로 떠들썩한 모습은 영락없는 고등학생이었다. 등교 시간부터 수업으로 꽉 차있는 일반 학교와 달리 이곳의 수업 시간표는 비교적 여유가 있는 편이다. 학생들은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자유롭게 자습을 하거나 각자 맡은 청소나 화분 관리를 했다.
▲ 김원식 기자

최훈민 군이 도착하고 얼마 안 있어 목요일의 첫 수업인 독서 토론이 시작됐다. 김원영 멘토는 수업을 시작하며 5살에 500억 원의 재산을 가지게 된 상속자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학생들에게 현재 사회에 존재하는 재벌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소개했다. 강의 중에도 새로운 화두가 던져지면 자연스럽게 토론으로 이어졌다. 독도 영토 분쟁, 북핵 문제, 유럽 재정 위기 등 시사 상식 없이는 논의하기 어려운 주제로 토론이 오고갔다. 모두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데에 거침이 없었다. 활발한 토론으로 인해 각자 준비한 독서 토론 발제가 늦어지기까지 했다.
지원 양의 발제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독서 토론이 이어졌다.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읽고 발제문을 써와 직접 소리 내어 읽는 것으로 발제가 시작됐다. 수업은 발제가 끝나면 멘토님이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일반 학교에서 교사가 일방적으로 가르침을 주는 것과 달리 이곳에서 멘토의 역할은 다양한 시각에서 논의가 이뤄지게 하는 사회자같은 것이다. 실제로 토론 중 멘토와 학생들은 의견이 엇갈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아무도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거나 남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는다. 훈민 군은 김대중 평전을 읽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의 민주화를 이끈 훌륭한 사람"이라며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온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멘토는 "과거 김영삼과 단일화를 하지 않아 민주화의 흐름을 늦춘 장본인이기도 하지 않느냐"며 " IMF시절 대규모 구조조정과 함께 신자유주의의 흐름을 만들어낸 인물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윤서 양은 경제 부문은 비판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일부 인정했다. 하지만 뒤이어 "당시 대통령이 되자마자 IMF라는 상황을 떠맡게 된 상황에서 경제를 이 정도로 일으킨 점도 다시 평가받아야 한다"며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뒤이어 다른 학생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이런 자유로운 토론은 학생들에게는 매우 익숙해 보였다. 모두의 활발한 참여로 평소보다 30분이나 지나서 수업이 끝났다.
뒤이어 1인 1강 수업이 이어졌다. 1인 1강은 학생 한 명이 자신이 아는 것을 다른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는
▲ 김원식 기자
수업이다. 이번 주에는 훈민군이 일일 멘토가 됐다. 디지털 미디어 고등학교에 다녔던 훈민 군은 포토샵을 가르치기로 했다. 강의는 포토샵을 한 번도 다뤄보지 못한 지원 양을 위해 기초부터 이뤄졌다. 일일 멘토가 된 훈민 군이 먼저 시범을 보이면 다른 학생들이 시연해보는 방법으로 진행됐다. 포토샵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윤서 양도 나머지 학생들을 도왔다. 교사 한 명이 중심이 되는 수업이 아닌 모두가 참여하는 수업이었다. 훈민 군이 페이스북에 올라온 윤서 양의 사진으로 잡티를 제거하는 시범을 보이자 학생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내 "다크서클은 어떻게 없애지?" "브러쉬는 어떻게 사용해?" 등 질문이 쏟아졌고 모두 포토샵 강의에 집중했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시종일관 즐거운 분위기가 이어졌다. 자신의 1인 1강에는 무엇을 가르치고 싶으냐는 질문에 지원 양은 자신이 관심 있는 근현대사를 강의하고 싶다고 답했다.
"꼭 이곳에 입학하지 않아도 자신이 원하는 수업만 골라 들을 수 있는 열린 회원(가칭)을 모집하려고 생각 중이에요. 하실래요?"라는 윤서 양의 물음에 기자는 망설임 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평소 같으면 '그 치열한 고등학교 시절을 어떻게 견뎠는데 다시 학교 수업을 들으라는 거냐'며 발끈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희망의 우리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학생들과 같이 지내보니 다시 고등학생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 김원식 기자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은 지금 학교에서 야간 자율 학습을 하며 모의고사 문제집을 풀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진정으로 하고 싶은지를 찾기보다 먼저 대학부터 들어가고 보자는 주위의 부추김에 강요받아서 말이다. 하지만 희망의 우리학교 학생들은 그런 입시 중심의 학교를 벗어나 당당하게 외치고 있다. 교육당국은 청소년에게 사과하라며, 친구들이 죽어가고 있다며. 지금 6명의 학생들이 가는 길이 제도권 교육 현실에 대한 해답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들은 지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를 알고 있다. 또 몸소 실천하고 있다. 당신에게 묻는다. 지금 당신은 진정으로 행복을 느끼는 일을 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