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서툰 사람들>

기자명 권세진 기자 (ksj4437@skkuw.com)

필름있수다 제공
“철컥철컥” 칠흑같이 암전된 무대 위에서 거칠게 현관문 따는 소리만 들려온다. 소리가 계속되는 가운데 희미한 조명이 문고리를 비추자 객석에 앉은 이들은 걱정과 불안에 휩싸인다. 문이 왈칵 열리고 도둑이 씩씩대며 들어온다. “야. 이 멍청한 계집애야. 문을 안 잠갔으면, 안 잠갔다고 얘길 하던가!” 집주인 유화이는 혼자 살면서 문도 안 잠그고 자는 여자다. 자기보고 뭐라고 하는 도둑에게 “아무리 도둑놈이지만 너무 함부로 말씀하지 마시라”고 대들기도 한다. 겁 없는 ‘또라이’거나, 사는데 서툴거나. 하지만 도둑 장덕배도 만만치 않다. 그가 하는 양을 보고 있으면 슬그머니 ‘도둑이 뭐 이래?’하는 생각이 든다. 손목에 밧줄 자국이 남을까 걱정된다며 수첩에 적어온 특별한 매듭법으로 화이의 손을 묶는다. 작은 귀중품이나 현금만 챙겨 나가는 요즘 도둑답지 않게 실속 없이 커다란 자루를 들고 다닌다. 또 그 안에 쓸어 담는 물건들은 엘피판, 곰 인형, 돼지저금통처럼 시시한 것들뿐이다. 도둑이고 집주인이고, 이쯤 되면 서툴다고 해야 할지 이상하다고 해야 할지 헷갈린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도둑의 역할과 집주인의 역할은 분명하다. 덕배는 겁 좀 주고 값나가는 물건이나 훔쳐 가면 되고, 화이는 벌벌 떨고 있으면 된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 간단한 역할극 속에서 이리 삐져나가고 저리 삐져나가며 밤새도록 티격태격한다. 둘은 서로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시시껄렁한 농담에 깔깔깔 웃기도 한다. 그와 그녀의 관계는 아무리 봐도 우리가 공유하는 ‘도둑과 집주인’이라는 이미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차라리 오랜 친구나 연인이라고 하는 게 더 그럴듯할 지경이다.
둘은 밤새 별별 이야기를 다 나누는데, 그 중 실제로 일어났던 ‘지강헌 사건’에 대한 덕배의 짧은 독백이 있다. 탈옥수 지강헌은 경찰들에게 포위된 상황에서 비지스의 ‘홀리데이’라는 음악을 틀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고는 “나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시인이다! 돈 있는 놈은 무죄고 돈 없는 놈만 유죄다!”라고 외친 뒤 권총으로 자살했다. 덕배는 이 이야기가 너무 감동적이라면서 눈물을 흘린다. 일반적인 논리에 따르면 순순히 체포돼 목숨을 부지하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엄숙한 배경음악이 깔린 가운데 세상의 불공정함을 외친 뒤 스스로 최후를 맞이한다. 비록 탈옥수지만, 비장미와 숭고미마저 느껴진다.
화이와 덕배, 그리고 지강헌의 공통점은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종종 ‘또라이’라고 불린다. 과연 집주인은 집주인답게, 도둑은 도둑답게, 탈옥수는 탈옥수답게 살아야 할까? 연극 <서툰 사람들>은 우리에게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덕배는 화이와 지지고 볶느라 하룻밤을 공쳤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그는 그녀를 친구로 얻었다. 지강헌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비웃음의 대상이 됐겠지만, 적어도 자기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모습으로 최후를 맞이할 수 있었다.
그들이 반대로 보통 도둑 혹은 보통 탈옥수답게 굴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무엇이 더 행복한 선택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선택지가 하나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위로가 되지 않는가? 어떤 상황에서든 주어진 역할에 맞춰 정석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지만, 남들이 보기에 엉뚱하기 짝이 없는 짓을 해버릴 수도 있다. 내가 하는 선택이 때로 상식에서 삐져나간다 해도 괜찮다. 화이와 덕배처럼, ‘또라이’가 되는 대신 나름대로 소중한 무언가를 얻게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공연명:<서툰 사람들>
△공연일시:2012년 12월 31일까지
△공연장소:대학로 문화 아트원씨어터 2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