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콜라티에 김성미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어스름이 잔잔히 깔린 오후, 대한민국 1호 쇼콜라티에 김성미가 운영하는 초콜릿 공방 '빠드두'에 방문했다. 그녀는 이제껏 300명의 쇼콜라티에를 길러냈으며, 지속적으로 초콜릿 무료 강연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자신보다 초콜릿에 미친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는 그녀. 초콜릿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김지은 기자 / kimji@
이병록 기자(이하 록) : 처음으로 쇼콜라티에라는 직업을 알리셨지만 아직은 사람들에게 생소합니다. 쇼콜라티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요?
김성미 쇼콜라티에(이하 김) : 사전적인 의미로는 ‘초콜릿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초콜릿을 만들기만 하는 사람을 쇼콜라티에라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쇼콜라티에가 되려면 초콜릿을 만드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초콜릿을 만들 때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초콜릿을 만드는 기술자밖에 되지 못해요. ‘초콜릿을 왜 만드느냐?’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답을 할 수 있어야 진정한 쇼콜라티에라고 할 수 있어요.

록 : 한국에 쇼콜라티에가 없던 그 시절, 어떻게 초콜릿에 관심을 두게 되셨나요?
김 :
 사실 저는 대학교에서 사회학을 전공했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20대에 일본으로 유학을 갔죠. 세상에 대한 모험심 반 그리고 호기심 반으로 외국으로 갔답니다. 거기서 처음으로 디저트 문화를 접했어요. 그 당시 한국에서는 케이크라는 음식을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로 디저트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일본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정말 새로웠어요. 그렇게 잠깐 스쳐가듯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유럽으로 어학연수를 가서 초콜릿을 제대로 접했죠. 유럽에는 ‘초콜릿’ 하나로 문화가 형성돼있었어요. 흔히 청춘이 막무가내로 사랑에 푹 빠지듯 그때 저도 초콜릿의 매력에 퐁당 빠졌었어요. 그렇게 두 번의 문화 충격을 받았지만, 쇼콜라티에가 지금처럼 제 직업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록 : 제대로 초콜릿을 배우려고 결심한 때는 언제인가요?
김 :
IMF 시절이었어요. 워낙 혼란스러운 시대였던지라 제 가치관도 흔들렸죠. 이대로 있으면 타인에 의해서 제 운명이 결정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갖지 못한 ‘내 것’을 갖고 싶었죠. 그때 떠오른 것이 젊은 시절 저에게 충격을 주었던 초콜릿이었어요. 당시 한국에서는 초콜릿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우는 길이 일반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영국에 있는 꼬르동 블루 요리 학교로 입학했죠. 입학하는 것까지는 많이 어렵지 않았어요. 하지만 입학하고 나서가 문제에요. 저 같은 경우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뭐든지 생소했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부족함을 느껴서 호텔에 가서 다시 일했지만, 거기서도 성이 차지 않아서 파리에 있는 개인 가게에서 또 일했어요. 그렇게 일을 해도 이것저것 빼고 나면 남는 돈은 정말 적었어요. 남들은 돈벌이도 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면서 미쳤다고 했지만 전 그 당시가 너무 행복했어요. 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었고 살아있다는 것에 충실했던 시절.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김지은 기자 / kimji@

록 : 당시 한국은 초콜릿에 관해 황무지였을 텐데요. 한국에서의 활동은 어떠셨나요?
김 :
 우선 유럽에서 공부하던 시절보다 힘들었습니다. 쇼콜라티에라고 하면 한국에서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던 시절이니까 말이죠. 그래서 일단은 초콜릿을 알리고자 노력했어요. 그래서 2001년 초콜릿으로 만든 작품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후에 아담한 개인 작업실을 열었고 시간이 흘러 그 규모가 커지고 지금의 빠드두가 됐어요. 그리고 지금은 우리나라에 더 많은 쇼콜라티에를 만들기 위해 교육에 힘쓰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도 초콜릿에 점점 관심이 많아지고 있어요. 그렇지만 아직 시작단계에 불과해요. 유럽에는 400년의 전통이 내려오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100조 원에 달하는 초콜릿 시장이 자리 잡고 있는 것에 비하면요. 유감스럽게도, 그 큰 시장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쇼콜라티에는 매우 드물어요. 그래서 우리나라 초콜릿으로 세계에 발돋움할 수 있도록 초콜릿 교육을 하자고 결심했죠. 우선 사람들에게 초콜릿 제작의 기술적인 부분을 중점적으로 가르치고 있어요. 올해 11월 광주에 교육원을 세울 계획이고 내년에는 강북에 교육원을 만들려고 준비 중입니다. 그리고 미국, 일본, 벨기에, 프랑스 등에 초콜릿 관련 기관과 MOU를 맺어 유학을 도와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렇게 교육을 받고 외국으로 나가면 제가 걸었던 길을 보다 수월하게 갈 수 있을 겁니다.

김지은 기자 / kimji@
록 : 작품에 대한 영감은 어떻게 얻으시나요?
김 : 세상 어디서든 얻을 수 있어요. 조형, 건축 등 모든 것에서 말이에요. 초콜릿을 만들 때 저는 세계 곳곳에 있는 디자인을 따라 해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명 다른 사람의 작품을 따라 한 것이지만 초콜릿이란 재료로 만드는 순간 오묘하게도 단순히 모방이 아닌 저의 작품이 됩니다. 그런 쇼콜라티에를 ‘달콤한 도둑’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웃음)
김지은 기자 / kimji@

록 : 초콜릿 만드는 것을 즐기는 모습이 참 부러워요. 마지막으로 쇼콜라티에를 꿈꾸는 사람에게 당부하고 싶은 점이 있으신가요?
김 : 
예전보다 지금의 한국이 초콜릿을 배우기에 더 좋은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아직 이 땅에서 쇼콜라티에가 되기에 충분한 교육이 이뤄지기는 어려워요. 아직 한국에는 공식적인 자격증도 없고 말이죠. 우선 국내에서 기술적인 면을 미리 배우고 외국으로 나아가 문화적인 부분을 배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