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 필리핀’에 mabuhay(마부하이)<어서오세요>!
‘혜화동 필리핀’에 mabuhay(마부하이)<어서오세요>!
  • 김기진 기자
  • 승인 2012.10.08 19:02
  • 호수 1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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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 필리핀 시장 스케치

▲ 김기진 기자
 
매주 일요일 오후 1시가 되면 혜화 로터리 한 편에 100m의 필리핀이 들어선다. 향수에 이끌린 필리핀 이주민들이 모여 타국에서의 외로움을 달래는 이곳은 혜화동 필리핀 장터다. 이 신기한 시장에는 한국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필리핀 물건과 음식들이 즐비하다. 시장 옆에는 필리핀 공용어인 타갈로그어로 미사가 열리는 혜화동 성당이 있다. 지난달 16일과 23일 시장 일대를 직접 찾아가 그 모습을 그려봤다.
 

 

 

 

16일 미사 시작 시간인 오후 1시 반을 약간 넘겨 들어간 성당에는 이미 필리핀 이주민들이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앉을 의자가 부족해 일어서서 타갈로그어 미사를 듣는 이들로 성당 뒤편은 북적거렸다. 국내에는 영어로 진행되는 미사는 많지만, 타갈로그어로 진행되는 곳은 거의 없다. 필리핀 신부의 모국어 설교와 많게는 1000명에 이르는 동향 사람들이 주는 편안함이 이주민들의 타향살이 설움을 달래주고 있었다. 타갈로그어 미사는 1995년 필리핀 신부에 의해 최초로 열려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다. 국민의 80%가 로마 가톨릭 신자인 필리핀에서 주일인 일요일에 열리는 미사는 가장 성스러운 행사로 여겨진다. 경기도 일산에서 온 조세핀 씨는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을 동포들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은 큰 행복"이라고 말했다. '아멘'밖에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진지한 얼굴을 한 이주민들의 엄숙함에 사진기 셔터를 누르기가 조심스러웠다. 미사가 막바지에 이르자 필리핀 신부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 추석날 이주민들을 위한 행사를 소개했다.

▲ 필리핀 전통 음식 '발롯'. 김기진 기자
미사가 끝나고 인파에 밀려 나온 성당 앞에는 10여 개의 노점상들이 동성중학교 앞까지 줄을 서 있었다. 북적거리는 시장에는 까만 피부의 필리핀 사람들이 쇼핑을 즐기고 있었다. 대강 봐도 100명은 넘어 보이는 인파였다. 시장은 17년 전 혜화동 성당의 필리핀 미사가 시작된 이후 사람들이 모이면서 자연스레 들어섰다. 시장 좌판에선 필리핀 공산품과 길거리 음식을 팔고 있었다. 관심이 간 음식은 곤계란이라 불리는 '발롯'이었는데, 겉모습은 삶은 달걀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껍질을 까자 선명한 혈관과 털이 없는 새끼오리의 형체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발롯은 부화 직전의 오리알을 삶은 것으로 미국 포브스지가 선정한 세계 혐오식품 중 하나다. 발롯 외에도 열대과일 '얌'으로 만든 케이크 '카사바', 바나나 튀김 등 갖가지 필리핀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대체로 달고 느끼해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이국적인 외모지만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3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올라니 씨는 "엄마의 나라를 가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필리핀 문화를 알려주고, 필리핀 물건을 사기 위해 이곳을 자주 찾는다"고 답했다. 호기심에 발길을 멈춘 한국 사람도 많았다. 여자친구와 이곳을 찾은 대학생 김범영 씨는 중국인의 '차이나타운'같이 필리핀 타운에 온 기분이라고 말했다.

▲ 김기진 기자
23일 오후 다시 한번 혜화 로터리를 찾았다. 이번에는 시장이 아닌 은행이었다. 우리은행 혜화점은 필리핀 이주민들의 해외 송금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일요일에도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문을 연다. 은행은 지난 2006년 필리핀 대사관이 이주민의 편의를 위해 우리은행과 협약을 맺은 이후로 계속 주말 운영을 해오고 있다. 청원경찰 광명훈 씨는 "오늘은 추석 전 주라 사람이 별로 없지만, 평소에는 온종일 북적거린다"고 답했다. 우리은행의 2층에는 'FEWA(Filipino Employment permit system Worker Association:필리핀 고용허가시스템 노동자 협회)'라는 단체가 운영하는 필리핀 쉼터가 있었다. FEWA는 이곳에서 이주민 노동자의 임금체납 해결과 권익보호를 위한 상담을 해오고 있다. 이외에도 체육대회를 개최하고 주보도 발간하는 등 필리핀 노동자를 위한 행사를 꾸준히 열어오고 있다.

이주민들은 시장을 구심점으로 자국의 문화를 지켜나가고 있었다.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고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다문화 사회의 참뜻을 실현하고 있는 셈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필리핀 국적의 국내 거주자 수는 4만 명으로 점점 늘어가는 추세다. 이번 주말 필리핀 시장을 찾아 가까운 미래에 함께 살아갈 그들을 이해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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