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생활도서관 박가분 운영위원 인터뷰

기자명 신혜연 기자 (shy17@skkuw.com)

▲ 신혜연 기자

최근 고려대학교(이하 고대)에는 '안철수, 인간의 얼굴을 한 이명박'이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대선에 관한 이슈를 끌어낸 이 글은 고대 생활도서관(이하 생도)에서 작성한 대자보였다. 고대 생도는 현재 실질적으로 가장 잘 운영되고 있는 생도다. 2만 권 이상의 장서를 보유한 도서관에는 하루 10명 이상의 이용객이 꾸준히 방문하며 등록 회원은 1만 2000여 명에 이른다. 그러나 고대 생도 역시 한때 운영위원이 단 4명만 남는 등 위기를 피할 수 없었다. 이후 단순히 공간을 유지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세미나, 강연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대학사회에 목소리를 내며 학내 입지를 굳히기 위한 활동을 계속해오고 있다. 고대 생도를 찾아 오늘날 생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들어봤다.

Q. 고대 생도는 어떤 취지로 만들어졌나?
A. 90년 대 초반, 당시 중앙도서관에서 구할 수 없는 금서 등을 갖추며 학생운동에 필요한 학술사업을 벌였다. 고대 학생뿐 아니라 노동자를 비롯한 일반 시민도 이용할 수 있는 민중 도서관을 만들자는 취지로 운영됐다. 생도 입구에 쓰여 있는 "진보사상의 대중화와 학문의 자유 쟁취"가 당시 내건 슬로건이었다.
그런데 민주화를 이룬 뒤로 진보적 학문을 접할 수 있는 경로가 많아지면서 생도는 정체성의 위기를 겪게 됐다. 아직 학생운동이 남아있던 상황에서는 진보적 연사들을 초청해 강연회를 열고, 학내 학술 사업을 벌이는 식으로 활동을 계속했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는 성격이 많이 변했다. 목적의식을 가지고 운동을 하기보다는 진보적인 개개인이 모여드는 자유롭고 평등한 분위기의 공간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뒀다.

Q. 현재 고대 생도의 운영체제는 어떻게 되나?
A. 고대 생도는 학생회 소속 특별자치기구로, 한 학기에 700만 원가량의 학생회비를 분배받는다. 관장을 따로 뽑지 않고 10명의 운영위원이 활동하고 있다. △도서부 △연대사업부 △자료부 △총무부로 나뉘어 부서별 책임자를 정해 업무를 분담한다.
도서부는 도서 등록과 관리를 하고, 연대사업부는 다른 생도들과의 연락을 맡거나 학내단체들과 연대하는 일을 담당한다. 최근엔 시간강사 투쟁, 미화노조 투쟁 등을 학내 단체들과 연계해 활동했다. 자료부는 고대 생도가 학내 존재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일종의 아카이브(자료창고) 역할을 자임했다. 학생자치 활동을 할 때 생기는 모든 기록물을 생도가 보관하기로 한 것이다. 학생자치 기록물에는 총학 선거 공약집이나 △고대문화 △스포츠KU △여성주의 교지편집부 석순 등 학내 자치언론들이 있다. 이 외에도 16종의 잡지와 신문 등 정기 간행물 구독을 담당하고 있다.

Q. 지난 달 27일 △고려대 △서강대 △연세대 △이화여대 △한국외대 등 다섯 개 대학이 모여 '생도의 밤'이라는 행사를 열었다. 계기가 무엇인가?
A. 생도들이 각자의 캠퍼스에서 벗어나 공동의 학술사업을 하면서, 지역사회와 연계해 보는 건 어떨까 생각했다. 단순히 학우들을 위한 학술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지역과 시민사회가 필요로 하는 학술사업들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독으로는 쉽지 않은 만큼 연대하는 게 좋지 않겠나.
이번 행사에 참여한 다섯 개 대학을 포함해 서울대 상록자치도서관, 성균관대 생도를 직접 방문해 이야기를 들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정기적으로 생도 대표자 회의가 열렸다. 예전에는 학생운동과 연계해 목적의식을 공유했기 때문에 지속적 모임이 가능했다. 하지만 운동권 세력이 약해지고 생도들이 독자적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학생사회 내에서 스스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 과도기를 거쳐야 했다. 이제 각자 모색해 본 경험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제2의 민중도서관 운동을 해 볼 때라고 생각한다.

Q. '생도의 밤'에서 어떤 내용이 논의됐나?
A. 고대 생도에서는 '대안 대학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각 생도들이 거점이 돼 동시다발적으로 강연과 세미나를 여는 학술사업이다. 시민사서단을 둬 외부인도 참여할 수 있게 하고, 원하는 강연회와 학술사업에 대한 의견을 받기 위해 시민들에게 피드백을 받는 사업을 제안했다. 지금 당장은 각 생도들이 하려는 사업을 공동으로 홍보해보는 게 어떨까 싶다. 이화여대 생도에서는 생도 연합 잡지를 제안했다. 운영위원들 간 세미나를 여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Q. 앞으로 생도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하나?
A. 캠퍼스 밖의 학술사업을 통해 대중성을 강화하고, 생도 이용객들의 학습과 운동을 일치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세미나 구성원들과 공부하면서 집회도 나가고 친목을 쌓아갈 수 있는 거점으로 활용됐으면 한다.

Q.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생도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
A. 중앙 도서관에 비하면 생도는 그 규모면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어떤 기획을 채워나가느냐다. 무일푼에서 시작하는 자치사업들에 비하면 공간도 있고 적게나마 지원금도 주어지니 생도라는 공간은 분명 이점이 있다. 이화여대 생도는 특정한 주제와 분야, 저자 등을 골라 독서모임을 만든다고 한다. 오히려 그런 방향이 중구난방으로 다량의 책을 가져다 두는 것보다 훨씬 의미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