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나영인 기자 (nanana26@skkuw.com)

과거 80년대 독재정권 시절 문화공보부는 도서출판에 대한 사전 심의와 불온서적 지정 등을 실시했다. 이에 맞서 중앙도서관에서 볼 수 없었던 금서들을 구비해 학문 사상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운동의 일환으로 90년대에 들어서 생활도서관(이하 생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대학 사회의 담을 없애 지역 사회와의 연계성을 높이고 인문사회과학을 대중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생도는 학내자치기구로서 대학 내 학문 활동의 흐름을 주도했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위기에 맞닥뜨렸다. 학문 사상의 자유가 보장됨에 따라 생도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 시작한 것이다. 또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신자유주의의 흐름이 대학가를 뒤덮었고 생도에 대한 관심도 사그라졌다.

▲ 작년 학내자치기구 자격을 상실한 건국대 생도의 모습. ⓒ건대신문
 

대학 내에서는 생도가 들어가는 예산에 비해 이용률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자치기구로 남아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해서 공감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일례로 작년 건국대 생도는 이로 인해 폐지위기에 처했었다. 건국대 총학생회에서는 △편향된 분위기 △적은 이용자 수 △자치기구임에도 투표로 뽑히지 않는 점을 문제시했다. 이에 건국대 생도뿐만 아니라 타 대학에서도 효율성의 논리로 생도를 폐지하면 안 된다며 반대운동을 펼쳤지만 결국 전체학생대표자 회의를 통해 총학생회 산하기구에서 제외됐다. 이로 인해 지원금이 끊겼고, 이번 학기에는 공간이 절반 정도로 축소됐다. 

총학생회에서 지원을 받는 생도들도 지원금이 적어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기는커녕 도서를 구매하는 것도 어려운 실정이다. 이화여대 생도는 총학생회비의 10%를 다른 3개의 자치기구와 함께 나눠 쓰고 있다. 이화여대 생도 최희은 관장은 “연 120만 원의 예산 중 행사에 들어가는 비용을 제하면 운영비가 부족해 항상 운영위원들의 사비로 충당하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우리 학교 인사캠 김귀정 생도는 김귀정 추모제 진행비를 제외하고는 학교로부터 받는 별도의 지원금이 없다. 생도의 운영비는 생도 관장에게 주는 민주동문회의 장학금으로 메꾸고 있는 상황이다. 지원금 자체가 적다 보니 책을 분류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에도 난항을 겪고 있으며, 도서대여도 시행되고 있지 않다. 자과캠 황해정 생도 역시 2008년 자치기구로서의 자격을 잃고 부족한 예산을 사비로 충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려는 학생들의 수가 갈수록 적어지는 것도 생도의 자체적인 운영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서울대 상록자치도서관은 이번 학기 5명의 신입부원 중 3명만 남았다. 건국대 생도도 지난 학기 8명의 신입부원 중 대부분이 활동을 그만뒀고, 이번 학기에는 현재까지 지원자가 없다.

여러 대학의 생도 관계자들은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달라진 사회 흐름에 따른 학생들의 관심 저하’를 꼽았다. 건국대 생도민윤기 관장은 “인문사회 도서를 읽어 교양을 쌓기보다는 자기계발서를 익는 사회 풍조가 만연해졌다”고 말했다. 군부독재 시절과 는 달리 지금은 학문 사상의 자유가 보장됐지만, 도리어 다양한 학문 사상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대학이 취업을 시켜주는 직업 학교의 성격을 띠게 되면서 상경계열의 학문만 주목받게 되고 인문사회과학에 관한 관심은 줄어들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주로 인문사회과학서적을 다루는 생도에 대한 관심 역시 자연스레 사라졌다. 더불어 생도가 정치적 색깔을 띠는 편파적인 도서관이라는 선입견 또한 학생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생도는 편파적인 것이 아니라 중앙도서관이 할 수 없는 다양한 학문 사상의 전당의 역할을 하는 특화된 도서관이다. 그러나 생도의 본래 의미를 알지 못하는 학생들은 이런 선입견 때문에 생도를 멀리하고 있다. 이로 인해 신입 부원이 오지 않아 홍보가 되지 않고, 학생들은 생도에 더 무관심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현재 생도는 벼랑 끝에 서 있다. 3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생도는 다시금 자유로운 학문의 공간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