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권세진 기자 (ksj4437@skkuw.com)

 

<슈퍼맨>,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헐크>……. 그래픽 노블 속 슈퍼 히어로들에 대한 애정은 이규원씨를 번역가의 길로 이끌었다. 그는 번역활동 외에도 미국만화와 히어로물에 관한 인터넷 블로그 '부머의 슈퍼히어로'를 운영하며 마니아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다. 그래픽 노블에 대해 묻자, '영웅'에 대한 지식과 사랑으로 똘똘 뭉친 그는 열정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권세진 기자(이하 권):그래픽 노블이란 무엇인가?

이규원 번역가(이하 이):미국과 영국의 만화를 통틀어 그래픽 노블라 한다. 처음에는 그냥 '만화'라고 하면 될 것을 괜히 '그래픽 노블'이라 포장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작가들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른들도 좋아하고, 아이들도 좋아하는 장르가 됐다. 어른과 아이가 어울릴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라고 생각한다.

그래픽 노블의 특징은 그림이 실험적이라는 것이다. 작가들은 만화를 유화나, 콜라주로 그리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이러한 시도를 신선하다 여긴다. 또 그래픽 노블은 내용이 쭉 이어지기는 하지만 각 에피소들들이 저마다 완결성을 갖췄다. 30~50페이지 정도로 기승전결이 있는 에피소드들이 잡지에 연재되는데 이들을 책으로 묶어내기 때문이다.

 

그래픽 노블에는 히어로가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한다.

이:미국이 역사적으로 영웅을 갈구하던 시기가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때다. 이때 일본의 진주만 침공도 있었고, 이를 계기로 미국이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됐다. 전쟁에 나간 젊은이들은 공을 세워 금의환향하고 싶어 했고, 고향의 가족들은 그들이 무사히 살아 돌아오길 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슈퍼맨, 배트맨, 캡틴 아메리카 같은 영웅 캐릭터가 등장해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히어로물의 침체기가 왔다.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들에게는 영웅보다는 가족과 따뜻한 터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때부터 히어로물보다는 연애, 스포츠 만화가 흥행했다. 그러다 1985년부터 영웅의 가면 뒤에 가려진 인간적 고뇌 같은, 성인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가 그래픽 노블의 주를 이루기 시작했다. 과거에 히어로물을 읽던 어린이들이 자라 어른 독자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미국만화 번역에 뛰어든 계기는?

이:처음에는 단순한 취미였다.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 미국만화 블로그를 시작했는데, 만화 속 캐릭터들을 정리해 인터넷 공간에 올리다 보니 블로그가 많이 알려졌다. 그러다 우연히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 번역 일을 정식으로 시작하게 됐다. 즐겁고 꾸준히 하다 보니 꽤 많은 책들을 번역했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대학시절,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끼리 농담으로 "우리 멀티미디어계의 한량이 되자"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때의 객기어린 농담이 어찌 보면 현실이 됐따고도 할 수 있다. (웃음)

 

권:블로그 방문자들과 소통하며 번역을 한다고 들었다.

이:댓글 등을 통해 독자들의 반응을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어 번역에 도움이 많이 된다. 책 번역에 들어가기 전에 이메일로 "이 책은 이런 식으로 번역하면 좋겠다"는 연락이 오기도 한다. 의견이 너무 다양할 때는 어떤 것을 반영해야 할지 고민이 많이 돼 난감하기도 하다. 머리가 혼란슬버긴 해도 행복한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쪽으로 번역을 하게 되지만 좋은 의견이 많이 공유되면 번역의 질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번역과정에서 어려움은 없는지

이:미국식 표현을 있는 그래도 번역하는 것과 우리나라식으로 매끄럽게 의역하는 것 사이에서 많이 고민한다. 등장인물이 전화를 끊을 때 "굿바이"라고 하는데, 이를 '안녕'이라고 하는 것과 '끊어'라고 하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또, 고정관념을 극복하는 것도 어렵다. 러시아 여자가 주인공인 만화를 번역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공산주의자이다. 이럴 경우에는 주로 북한 사투리를 써 왔다. 이제 이 같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지금도 영어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따. 또한 역사책과 철학책도 많이 본다. 이런 책을 통해 얻은 지식이 번역의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픽 노블 <판타스틱 포>의 작가 마크 밀러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것은 한 시간동안 보고 웃으라고 쓴 이야기다"라고 했다. 만화를 보면 한 시간 동안 웃고, 더 나아가 한 달 동안 여운이 남는다. 이렇게 재미를 주는 만화를 시간과 여력이 된다면 항상 옆에 두고 싶고, 번역도 계속해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