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게임 만들기 게임잼 스케치

기자명 김기진 기자 (skkujin@skkuw.com)

"모른다면 우리가 알려줘야겠다." 게임잼(game jam)의 기획의도가 개최자의 입을 통해 회의장에 퍼졌다. 대담한 이 기획의도에 참가자들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지난달 11일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는 셧다운제 대상 게임을 선별하는 평가표를 공식홈페이지에 게시했다. 그러나 이 평가표는 주관적인 문항이 많고, 재미 요소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등 게임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항목이 대거 포함돼 있어 네티즌의 질타가 이어졌다. 지난 5일에서 7일까지 이에 분개한 14명의 게임개발자들은 12개의 평가항목에 맞는 게임을 직접 만들어 평가표의 부당함을 알리는 게임잼 행사를 열었다.

 

5일 저녁 늦게 들어선 회의장에는 참가자들이 어색한 첫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행사의 취지에 공감한 중소게임업체 XL게임즈가 주말 동안 대여해 준 장소였다. 참가자는 △현직 게임 회사 종사자 △중앙대 게임학과 학생 △게임개발자 지망생 고3 학생 등 사회 각지의 게임 개발자들이었다. 통성명을 마치자 개최자인 인디게임개발사 터틀 크림 박선용 대표가 행사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평가표를 처음 봤을 때는 게임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도 없이 제작돼 매우 화가 났지만 생각해보니 그들이 모른다면 우리가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평가표의 모든 항목에서 1점을 받아 총 12점을 받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 김신애 기자 zooly24@skkuw.com
설명이 끝나고 본격적인 게임 만들기에 들어갔다. 각자 아이디어를 적은 포스트잇을 붙여 한쪽 벽을 채웠다. '여가부의 반복 소송으로 망하는 게임업체를 운영하는 게임'이라는 내용의 포스트잇이 눈길을 끌었다. 나온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게임 기획의 발표 시간이 이어졌다. 김문기 게임 디자이너는 'I must die'라는 무기력한 제목의 기획을 선보였다. 실행시키면 얼마 안 가 주인공이 죽음에 이르는 다소 허무한 게임 기획이었다. 김 디자이너는 "내 능력을 확인할 수 없어야 하고 경쟁심도 유발하지 않아야 하는 등 모든 항목에서 1점을 받기 위해서는 이런 게임 구조가 최상"이라며 풍자했다.

7일 오후 5시, 게임 발표 한 시간 전에 도착한 회의장에선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평가항목에 부합하도록 게임을 만드는 것을 포기한 팀도 있었다. 팀원 노현규 씨는 "개발된 게임을 인터넷상으로 공유할 예정이라 조금이라도 재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평가표에 맞추면 재미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발표가 시작되고 취재진에게 평가표가 쥐어졌다.

▲ 게임 '인생은 시궁창 쳇바퀴'의 한 장면.
쟁쟁한 후보를 제치고 ‘가장 재미없는’게임으로 뽑힌 것은 14.5점으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룰렛형 게임 ‘인생은 시궁창 쳇바퀴’였다. 10억 원 벌기를 가훈으로 삼았지만 대물림되는 가난과 암울한 인생에 결국 파산하고 마는 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다룬 게임이다. 룰렛을 돌리면 주식이 폭락하거나 사기를 당하는 등 특 정 사건을 겪게 되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소지금이 0원 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시간이 지나 죽게 되면 자식이 빚을 물려받아 게임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기획을 제안한 김시현 게임기획자 지망생은 “현실의 암울한 모습을 그대로 담으면 자극적이지도 않고 평가표에 맞는 게임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행사는 "게임개발자들은 시궁창 쳇바퀴 같은 인생에서 활력을 불어넣는 존재"라는 박선용 대표의 말로 끝맺음했다. 아마도 여가부의 평가표가 게임 개발자에게 묻고 있는 것은 '재밌는 게임을 만든' 죄가 아닐까.


◇게임잼=팀을 짜서 48시간 동안 구상에서 제작까지 하나의 게임을 완성하는 행사.
◇셧다운제=16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심야 시간의 인터넷 게임을 제한하는 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