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민중의 집』

기자명 나영인 기자 (nanana26@skkuw.com)

유럽 이탈리아의 'Casa del Popolo', 영국의 'Peoples Palace', 독일의 'Gewerkschaftshaus'는 모두 같은 말로 해석된다. 바로 '민중의 집'이다. 민중의 집은 100여 년이 넘도록 유럽 지역 사회의 주춧돌로서 역할을 해왔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유럽 전역에 자본주의 시장 원리가 확산되면서 노동자들은 자발적으로 민중의 집을 만들었다. 당시 자본주의는 산업 구조뿐 아니라 일반 민중의 삶에까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깊게 침투했다. 경제적 이윤 추구가 우선시되던 때에 노동자들은 부품처럼 취급받았고, 사회에는 개인주의가 만연해졌다. 이런 초기 자본주의의 비인간적인 구조에 맞서 공동체적인 삶을 복원하고자, 노동자들은 △교육단체 △노동자 조직 △문화예술단체 등과 결합해 민중의 집을 탄생시켰다.

민중의 집은 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모이는 공간 이상의 의미가 있다. 처음에는 자본주의 흐름 안에서 자신들의 생계를 해결하고자 하는 협동조합의 형태로 시작됐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민중의 집의 기능은 다양화됐다. 일반 민중은 삶의 질 개선을 위한 다양한 △문맹 퇴치교육 △스포츠 활동 △직업 훈련 등을 실시하며 이곳을 복합적 공간으로 발전시켰다. 민중의 집의 이와 같은 다양한 움직임은 당시 자본주의 흐름에서 소외된 일반 노동자들을 위한 것이었고, 이는 진보적 정치 활동의 뒷받침이 됐다. 자본주의를 고수하기보다 이에 맞서 일반 민중의 권리와 복지를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은 결과다. 그렇다고 해서 민중의 집을 단순히 진보적 정치사상에 편향된 곳으로만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우리 학교 정현백(사학) 교수는 민중의 집을 "일반 민중이 자신의 일상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곳"으로 표현하며 "민중의 집의 목적은 지나친 소비와 경쟁 위주의 삶을 지양하며 대안적인 삶을 추구하는 데에 있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의 공간 넘어
진보정치의 발판으로

▲ 이탈리아 민중의 집 'Casa del Popolo'. ⓒm4_n1c4
유럽에서 민중의 집이 가장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 곳은 스웨덴이다. 1890년 남동부 지방 티안스타드에 최초로 생긴 스웨덴의 민중의 집은 이후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 당시 스웨덴 노동운동가들이 노동자 모임을 조직화할 때 일상적으로 모일 공간을 마련하고자 민중의 집을 만든 것이 시작이었다. 현재 스웨덴 민중의 집의 상급 단체라고 할 수 있는 '민중의 집 연합회'는 전국의 533개 민중의 집을 연결하여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컨설팅과 전시회 개최, 각종 회의 등 다양한 콘텐츠를 진행하고 있다. 또 강력한 지역운동의 연합 체로 자리매김하며 과거 스웨덴의 좌파 정당인 사회민주당의 지지층을 넓히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이탈리아 민중의 집도 스웨덴보다 규모는 작지만, 현재까지 제 기능을 유지하며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스웨덴 민중의 집은 기초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으며 서로의 연대로 운영되지만, 이탈리아 대부분의 민중의 집은 개인 회원을 기반으로 개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또 술과 놀이, 유흥이 있는 놀이터와 사회 참여 공간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스웨덴이나 이탈리아와는 다르게 스페인 민중의 집은 큰 위기를 맞았었다. 스페인 사회주의 세력의 역량을 상징했던 민중의 집은 1936년 발발한 내전 후 프랑코 독재 정권이 수립되면서 대부분 소실됐다. 그 후 명맥이 끊기는 듯했으나, 2008년 스페인 노동조합총연맹(이하 노총) 마드리드 지역본부가 민중의 집 기념행사를 개최하는 등 복원의 신호탄을 쐈다. 최근 들어는 노총의 지도 아래 노동조합의 위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복원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유럽의 민중의 집은 지금까지도 민중의, 민중을 위한, 민중에 의한 공간으로서 과거의 역사가 아닌 현재진행형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