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신혜연 기자 (shy17@skkuw.com)

공간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민중을 위한 공간인 '민중의 집'은 아이들의 놀이 공동체이자 주민들이 함께 밥을 먹고 서로의 생활 속 노하우를 나누는 사랑방으로 날마다 주민 자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2008년 처음으로 설립된 마포구 민중의 집을 비롯해 중랑구와 구로구 등 단 3곳뿐인 만큼 국내에서 민중의 집은 아직 생소한 개념이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100년 전부터 지금까지 지역 주민들의 생활공간으로 뿌리 깊게 자리 잡아 왔다.

민중의 집은 출발부터 마포 주민들의 참여로 이뤄졌다. 2006년에 '문화연대'를 비롯해 마포에 기반을 둔 시민 단체들과 마포 농수산물센터 상인연합회, 노동조합들이 모여 마포를 변화시킬 방안에 대한 세미나를 시작했다. 근 2년간의 준비 끝에 지역 주민들을 위한 자치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논의는 망원동의 2층 가정집에서 '민중의 집'으로 실현됐다. 전세금은 마포에 있는 노조와 단체, 개인들의 후원금으로 마련됐고 회원들의 자발적 참여로 내부 공사를 마쳤다. 1층에 넓은 거실과 주방을, 2층에 벽난로까지 갖춘 민중의 집은 담장을 허물어 마을과의 경계를 없애고 주민들을 맞았다. 그렇게 민중의 집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주체가 된 다양한 모임들이 형성됐다. 마포가든호텔 노동조합원들은 지역 주민들을 위해 직접 요리교실을 열었고, 세탁소 가게 아저씨는 다리미질 강좌를, 일본 이주 여성은 일본어 강좌를 마련했다. 재능기부 형식뿐 아니라 취미를 공유하는 동아리 활동이나, 매주 함께 밥을 먹는 '화요 밥상', 생활 협동 벼룩시장인 '다정한 시장' 등의 활동이 이어졌다.

▲ 민중의 집에서는 망원 시장의 골목 골목을 찍어 지도로 만들었다. 김지은 기자 kimji@skkuw.com
안성민 마포 민중의 집 사무국장은 민중의 집이 "따로 용도를 정해놓지 않은 마을 회관과 같다"고 표현했다. 주민들의 제안에 따라 열린 운영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실생활에 적용 가능한 사업들이 전개돼 온 것이다. "대규모 사업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유럽의 민중의 집과는 달리, 한국의 민중의 집은 규모가 작은 대신 주민들의 소모임을 통해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아지트 같은 성격이 짙다"고 안 사무국장은 설명했다. 또한 민중의 집은 작은 단체들과 주민 조직들 사이의 허브역할을 해왔다. 2010년부터 개최된 '동네단체 공동신년회'는 올해 40여 개 단체에서 100명이 넘는 전업 활동가들이 모여들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지자체를 비롯한 지역 내 다른 단체들과의 네트워크 사업을 통해 사업 자금도 절감하고 있다. '도시 텃밭 사업'은 마포 구청과 함께 지자체 예산으로 시행됐고, 마포구 내 지역민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숨 쉬는 도서관'은 마포 구청 산하의 마포 문화재단과 함께하고 있다. 민중의 집 초대 발기인인 마포구 오진아 구의원은 "민중의 집을 지자체와 연계하는 것은 홍보와 공신력 측면에서 주민들의 호응을 끌어내기도 쉬울뿐더러, 지자체 입장에서 공무원들이 하지 못하는 다양한 관계망의 형성을 도와 상부상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독립하고자 자체적인 회비와 후원금으로만 운영하다 보니 재정상의 위기를 피할 수 없었다. 현재 민중의 집은 모든 사업을 주민들의 자체적인 참여와 재능 기부로 꾸려오는 등, 공간 임대료와 상근자 2명의 인건비만 지출하며 최소한의 재정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최근에는 연대 사업을 하는 홍대 상점들로부터 장소와 재료를 지원받아 후원의 밤 행사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2월, 건물 소유주가 임대료를 올려 달라고 요구해 결국 주변 건물의 3층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