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로지코믹스』 속 그림 <다나이데스>

기자명 유수빈 기자 (newbien@skkuw.com)

 버트런드 러셀이라는 사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광범위한 분야에 영향력을 끼친 20세기 지식인으로 유명하지요. 만화 『로지코믹스』에서는 논리학자 러셀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또한 이 책은 당대 사람들이 이성을 신뢰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모든 걸 논리적인 틀로 해명할 수 있다는 믿음이지요.
러셀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수학이 명백하게 증명된 논리를 토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수학자 볼차노의 ‘집합론’을 수학의 토대로 여기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뉘어 싸우고 있었지요. 이때 러셀이 볼차노의 집합론에서 역설을 찾아냅니다. 이 때문에 볼차노의 집합론을 근간으로 하던 수학계가 완전히 혼란에 빠지고 러셀은 수학의 올바른 토대를 만들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는 친구이자 스승인 화이트헤드와 함께 『수학원리』라는 책을 집필하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의 결심 이후로 몇 년의 시간이 지난 『로지코믹스』의 다음 장면을 봅시다. 어느 미술관에서 군청색 코트를 입은 러셀과 화이트헤드가 한 작품을 앞에 둔 채 말싸움을 벌이는 중입니다. 러셀은 여전히 『수학원리』의 기본 전제들을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화이트헤드는 이제는 그 책을 출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말풍선 너머, 벽에 걸려있는 이 작품이 사뭇 흥미롭습니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가 그리스 신화에서 소재를 따와 그린 <다나이데스>로군요. 그림 속에는 담담하지만 조금은 지쳐 보이는 여인들이 큰 항아리에 물을 쏟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은 무심하게도 항아리 밑에 뚫린 구멍으로 빠져나가 버립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이들이 각자의 남편들을 살해한 죄로 영원히 구멍 난 항아리에 물을 부어야 하는 벌을 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공리란 다른 모든 증명의 토대가 되는 명제를 말합니다. 러셀은 『수학원리』를 통해 새로운 수학 체계가 될 공리들을 세우려고 노력하지만, 그 결과는 본인에게도 썩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이 세운 기초를 의심합니다. <다나이데스> 속 여인들처럼 구멍 난 그릇에 물을 채우려는 쓸데없는 노력을 하는 게 아닐까, 하고 걱정하기도 하고요. 아니, 그 생각은 걱정이라기보다는 그를 지긋지긋하게 쫓아오는 직관일 것입니다.
『로지코믹스』의 주요 인물 버트런드 러셀을 포함한 논리학자와 수학자들이 보통 사람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서 일 더하기 일을 굳이 증명하려는 러셀의 시도를 보더라도 왜 그렇게까지 논리적인 증명에 집착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지요. 그러나 역사적으로 봤을 때 이들은 그저 ‘이상한 소수’가 아닙니다. 18~20세기 지식인들의 논리주의적 태도에 바탕을 두는 것은 이성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사고이며, 이는 고대 그리스부터 서양 근대를 쭉 관통해온 사유 체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전후로 이성의 논리적 완전성을 믿는 사유는 무너집니다. 왜냐하면 쿠르트 괴델이 어떤 산술체계에도 참인지 거짓인지 증명할 수 없는 명제가 있다는 것을 논증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전후에 사람들은 세계대전을 일으킨 원인으로 이성을 지목합니다. 결국 러셀이 채울 수 있으리라 믿었던 ‘완벽한 이성’이라는 그릇에는 구멍이 있다는 게 증명된 셈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