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대학교에 입학했으니, 지금 20대에게는 어느 새 함께 차나 술을 마시며 ‘대학의 길’을 논하기에는 이미 불편한 세대가 되었다. 진리에 고금이 없듯이 학문을 논하는 것에도 옛날과 오늘은 없다고 믿고 있지만, 학문하는 ‘동향(動向, trend)’의 ‘오늘’과 ‘옛날’은 엄연히 다르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대한민국 사방에서 인문학공부 열풍이 뚜렷한 추세(trend,동향)였을 때도 삼강령[‘명명덕’(明明德), ‘친민’(親民)/‘신민’(新民), ‘지어지선’(止於至善)]이 과연 오늘날 대학(인)이 가야 할 길[道]에 부
오늘 학부생 3명과 점심식사를 했다. 학과 홈커밍데이 행사에서 경품으로 발행한 “교수님과의 식사권”에 당첨된 학생들과의 식사였다. 다들 교수와의 식사를 조금은 부담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서로의 안부를 묻고 수업에 얽힌 뒷이야기를 하면서 분위기는 한결 자연스러워졌다. 어느새 식탁의 주제는 ‘취업’에 관한 것으로 흘렀다. 취업을 준비 중인 4학년 학생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자기소개서에는 성장 과정, 전공, 경력 사항을 포함해 가장 중요한 입사 동기, 입사 후 포부 등을 쓰게 되는데, 이 내용
봄학기 축제도 끝나고 기말시험의 어두운 그림자가 점차 다가오는 듯한 심기 불편한 세월에, 늦봄 날씨는 지나치게 화창하다. 일상이 되었던 미세먼지조차 잠시 자제해주고 있는 화창한 늦봄 날씨는 오히려 폭풍전야의 불안함, 불확실함의 전조라는 느낌이 가시지 않는 것은--, 이제 우리가 익숙한 세상에서 익숙한 전략과 전법으로 하루하루 반복적으로 생활할 수 있었던 세상은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되어버렸음을 이제 우리 모두가 나날이 절감하기 때문일까?우리가 익숙한 세상이 예측가능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이런 예측 가능한 세상에서 예측 가능한 미래를
1980년대에 활약했던 코미디언 고 이주일 씨는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 “뭔가 보여 드리겠다니깐요”, “일단 한번 보시라니깐요” 등의 유행어를 남겼다. 30년이 지난 작금에도 유행어가 모방, 재생산되는 경향이 있다. 작년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라는 제목의 연속극이 인기리에 방영된 바 있다. 요즘 대중매체에 출연하는 연예인, 뉴스해설가, 스포츠 중계 프로그램의 해설위원 등의 방송인들이 “일단”이라는 어휘를 무차별적으로, 빈번하게 사용한다는 인상을 준다. 최근 필자가 시청한 한 지상파 뉴스프로그램에 출연
한 외국인 학생이 강의 중에 물었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소중한 기회에 강의만이 아니라 한국 학생들과 더 많은 의견을 나누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 된다는 하소연도 덧붙였다.그건 그 외국인 학생뿐 아니라 사실 내게도 고민이었던 점이다. 학기의 절반이 지났지만 토론과 질의응답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은 특정 지역 출신 외국인 학생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인 학생들에게 “반론의 기회를 주겠다”고 했지만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결국 한국 학생들의 입장까지도 외국인 학생들이 대신 유추하여 논의한 끝에 아쉽게 강의가 끝났다.강의가 끝나
2006년 3월 처음 성균관대에 부임한 후 벌써 13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당시 공과대학 교수로 부임하면서 학위과정 중에 습득한 지식과 경험, 노하우 등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학생들과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잘 감당해낼 수 있는 인성과 실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해내겠노라는 다짐이 있었습니다. 13년의 시간이 흘러간 지금 이 처음의 다짐을 잘 실천해왔는지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시간이었지만 진정으로 학생들의 성공을 위해 달려온 지난 13년이었는가를요.전 로빈 윌리암스라는 영화배우를
새 학기에 학생성공센터가 문을 열었다. 학교와 학생의 소통을 강조하며 출발한 학생성공센터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란다. 무엇이 이 센터의 ‘성공’일까? 현재의 취업상황이나 트렌드에 대한 적응을 강조하면서 이미 정해진 성공 모델을 위한 프로그램에 학생을 적극 참여시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학생이 내 인생의 성공은 무엇인지에 대해 스스로 진지하게 고민하고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되는 것이 이 센터의 진정한 성공이 아닐까?“과연 나에게 성공이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대학 생활 내내 답을 찾기 위해 근본으로부터 고민하고 토론해
아들이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일이다. 어느 날 저녁 어스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와 엄마에게 진지하게 하는 말이 “엄마들은 참 이상해요. 세상에서 자기 아이들을 제일 미워해요” 아들의 이야기인즉슨, 아이들과 밖에서 놀다가 함께 친구 집에 들어갔는데 그 엄마가 그 집 아이만 야단을 치더란다. 우리 집에 들어와도 엄마가 나만 야단을 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그 집에 가서 보고 ‘아~하’ 깨닫고 나름 내린 결론이다. 그 아들이 지금 박사과정 말년 차다. 아직도 그런 이야기를 할까? 그럼 그사이에 뭐가 달라진 걸까? ‘사랑은 받는
우리 삶의 매 순간은 제품과 서비스, 공간과 콘텐츠, 지식과 아이디어를 소비하는 과정으로 채워지고 있다. 현대인들의 삶은 소비자로서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을 먹고, 입고, 쓰는지 뿐만 아니라 어떤 정보를 찾고, 어디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지까지 소비의 영역에서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선택은 곧 그들이 추구하는 삶의 모습과 연결되어 있다. 어떠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지에 따라 소비자는 무엇인가를 선택하기도 하며, 반대로 어떤 제품이나 기업에 대해 거부의 의사를 표현하기도 한다.소비자의 이러한 선택은 개인과 기업,
의사들이 질병을 치료할 때 수술을 하기도 하고 약을 처방하기도 하지만 공통적으로 의지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체의 자연치유 능력이다. 뼈가 부러져 석고 붕대를 하더라도 뼈가 다시 붙는 이유는 석고 붕대가 아닌 뼈가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며, 넘어져 피부가 벗겨진 후 소독을 하고 반창고를 붙여도 다시 새살이 돋는 것은 반창고가 아닌 바로 피부가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인체의 자가 치유 능력은 결국 우리 몸에 여러 종류의 줄기세포가 있기 때문이다. 줄기세포는 평소에는 잠자듯 있다가 필요할
영화보다는 전시를, 영상보다는 실제 사물과 현상을 골똘히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기에, 살면서 헤아릴 수 없는 원고를 작성했음에도 영화평을 쓴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작정하고 영화에 대해 한번 써보기로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이라는 영화 때문이다. 원제는 으로 한국어 번역보다 훨씬 솔직하다. 말 그대로 ‘남의(이 버린) 것’을 취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가족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한 학자의 칼럼은 지극히 ‘일본적인’ 이 영화의 핵심을 ‘포스트자본주의’나 전후 일본의 사회문제로 접근하였
뇌는 우리 몸에서 가장 복잡한 장기이다. 뇌 안 세포의 약 10%를 차지하는 뉴런만 해도 약 1000억 개이며, 이들은 100조 개의 연결을 맺으며 매우 복잡한 네트워크를 구성한다. 나아가 각 뉴런이 눈 깜박할 시간에 수십 개까지 전기신호를 만들어내는 것을 생각하면 뇌의 기능을 이해하는 것을 왜 인류의 마지막 난제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여러 곳에서 국가적인 과학 역량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BRAIN initiative’는 새로운 뇌공학기술 개발에 집중하는 사업으로 중심 과제로 뇌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