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광해> 속 옷 '곤룡포'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어떤 이가 한 나라의 왕이 되면 좋을지 생각해보셨나요? 그럼 왕이 되기 위한 자질 중 가장 필수적인 능력에 대해 한 번 논해봅시다.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누구든지 설득시킬 수 있는 대화술? 그것도 아니면 모든 문제 상황에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명석한 두뇌일까요? 물론 이 모든 것을 리더가 가지고 있다면 나쁠 것은 없겠지요. 하지만 왕으로서 가장 필수적인 능력은 타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감의 능력입니다. 자신이 이끌어야 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그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무용지물입니다. 사람들이 바라는 방향으로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죠.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광해>에선 참 특이한 사람이 왕좌에 앉습니다. 그는 바로 천민 출신인 광대 하선입니다. 당시 조선의 정치 상황은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왕 광해는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무리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지요. 결국 두려움을 못 이긴 광해는 도승지 허균에게 자신을 대신할 사람을 찾으라고 명합니다. 그리고 허균은 왕과 똑같은 외모와 말투, 목소리까지 왕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따라 할 수 있는 광대 하선을 발견합니다. 그가 허수아비 왕의 적임자로 발탁되는군요. 처음 왕의 역할을 할 때 하선은 허균이 하라는 대로 정사를 폅니다. 정해진 곳에 도장을 찍고 똑같은 대사로 대신들 앞에서 명령을 내립니다. 하지만 허균이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은 백성을 위해야 할 임금이 오히려 백성을 해치는 꼴이 되는 것을 하선이 눈치챕니다. 천민 출신으로 백성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하선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정책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올바른 정책을 펴는 하선이 입고 있는 옷의 용 문양이 그에게 썩 잘 어울립니다. 오직 왕만이 입을 수 있다는 ‘곤룡포’는 빨간색 비단 바탕에 황금색 용 문양이 수놓아져 있는 옷입니다. 여기서 용은 왕을 상징합니다. 용이 되기 위해서는 이무기가 차가운 물 속에서 천 년의 세월을 견뎌야 하지요. 이는 마치 용이 되기 위해서는 이무기 시절을 거치듯이 왕 또한 왕좌에 앉기 위해 천민의 생활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 보입니다. 그런 면에서 왕족으로 태어나 백성의 고통을 겪지 않았던 광해보다는, 천민의 삶을 몸소 겪고 실제로도 백성을 위한 정책을 펴는 하선이 곤룡포의 더 적합한 주인으로 보이네요.
원시시대에 리더가 되는 과정을 상상해봅시다. 그때는 계급이란 개념도 왕족도 없었겠지요. 고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살아남아서 가장 쉬운 일부터 아주 어려운 문제까지 겪어 봐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왕의 상징으로 용 문양을 선택한 이유가 단순히 용의 막강한 능력이 왕의 그것과 유사하기 때문 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맨 처음 곤룡포에 용 문양을 새겨 넣은 장인은 왕에게 조언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용이 이무기의 삶을 거치듯, 왕이 되기 위해서는 나라의 가장 낮은 곳부터 천천히 둘러보고 백성의 모습을 직접 봐야 합니다’라고 말이죠. 그렇게 함으로써 정사를 펼치기 이전에 밑 사람들의 마음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왕족으로 태어나 백성의 삶을 모르던 궁궐의 특권자들은 백성을 이해하는 공감의 능력이 현저히 떨어질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