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박승희 교수(사복)
우리 학교 학우들 중에서 길이 존경받는 정치지도자가 나올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학생들에게 현실 정치는 또 하나의 대학이고, 현재의 정치인, 특히 대통령은 모범 혹은 반면(反面)의 교수다. 좋은 지도자로부터는 그러함을, 좋지 못한 지도자로터는 그렇지 아니함을 배울 수 있다. 요즈음 국정원 선거개입 문제를 놓고 시국이 어수선한데, 박 대통령은 어떻게 처신하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이 시국 대학의 교수로터 무엇을 어떻게 배울 것인가?
지난 해 말 대통령 선거 당시에 국가정보원장이 직원들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전자망 문서에 댓글을 달게 하면서, 박근혜 현 대통령을 당선시키기 위한 여론 조작을 하고 있다고 야당이 폭로했다. 이에 맞서 지난 정권에서는 경찰청장을 동원해 사건을 은폐 축소했고, 당시 박근혜 후보는 야당의 문제제기를 흑색선전이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최근 국정원의 댓글을 통한 선거 개입이 검찰조사로 확인됐다. 그러나 현 정부는 이 국기 문란의 범법자들을 솜방망이 처벌로 마무리하려 하고 있다. 한편 여당은 국정원의 불법선거운동 사실을 감추기에 급급해 하고, 야당은 장외투쟁을 벌리고 있다. 대통령은 이런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은 큰 문제가 아닌 듯이 보인다. 그것 때문에 대선결과가 바뀌었다고 아무도 단정할 수는 없고, 대통령의 5년 임기가 길지 않는데, 다시 대선을 치루는 번거로움을 원하는 사람도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큰 문제의 씨앗이라는데 심각성이 있다. 이 세상의 모든 독재 정권은 국가의 정보기관을 동원해 국민 여론은 조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그 결말은 국민에게는 물론이거니와 집권자자신에게도 엄청난 불행이었다. 이에 관한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는 생각만 해도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언급하기도 싫다. 고개를 돌려서 지금 중동의 여러 나라에서 벌어지고 대립 혼란의 참상을 보자. 이것들이 모두 독재의 업보고, 그 독재가 정보기관의 정치개입부터 시작되지 않았는가? 비밀을 다루는 국가 정보기관의 정치 개입은 독재의 시작이다. 아름드리나무도 터럭 끝만 한 것에서부터 자라나듯이, 엄청난 사회적 재앙인 독재의 비극도 아주 미세한 듯이 보이는 정보기관의 정치개입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재앙의 뿌리를 이대로 두면, 서서히 젖어들어 마침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따라서 이 문제는 지금 당장 해결하는 것이 좋다. 노자(老子)는 안정된 것은 보존하기 쉽고, 위험 징조가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은 예방하기가 쉬우며, 연한 것은 녹이기가 쉽고, 기세가 미미한 것은 흩어버리기가 쉽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누가 이 불행의 싹을 가장 잘 잘라버릴 수 있는가? 박 대통령이다. 국가는 우리 사회의 대표고, 국가의 대표는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독재를 미연에 예방하는 것은 우리 국민 전체의 공동이익이며, 이 공공이익의 실현을 위해서 우리는 대통령을 뽑아 일을 맡겼다. 이런 일을 하라고 대통령에게 큰 집을 내어주고, 경호원을 붙여주면서, 공권력까지 위임해줬다. 박 대통령은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할 수 있는 이 일부터 빨리 처리해야 한다. 물론 박 대통령이 이 문제에 연관돼 있기 때문에 운신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을 처벌하고, 자신의 작은 잘못까지도 살피고 드러내서 국민의 용서를 구하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대통령 후보는 선수지만, 당선 되면 심판이다. 지금 박 대통령은 선수로 뛰고 있는가, 심판을 맡고 있는가? 청와대 밖에서는 이 문제로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데,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으면서도 방관하고 있다. 지금 당장 나서서 재앙의 뿌리를 잘라 버리고, 산적한 과제를 여야와 머리를 맞대고 풀어가는 길을 박 대통령이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대통령을 존경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런 식으로 재앙을 키워나간다면, 박 대통령을 퇴임과 연세(捐世) 이후에도 후학들이 경모할 수 있을 것인가? 진정으로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길 꿈꾸는 학생들이라면, 이 현실 정치 대학의 교수로부터 무엇을 어떻게 배울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보기를 삼가 절하면서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