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과의 동행 - 공성훈 미술학과 교수

기자명 조수민 기자 (skkusue@skkuw.com)

 


현대 미술에 ‘회화’ 부활의 신호탄을 쏘다. 본지 1547호 문화면에서 다뤘던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 2013'전에서 우리 학교 공성훈 교수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다. 공 교수는 '겨울 여행'을 주제로 우리네 삶의 불안한 현실을 캔버스로 옮겼다. 회화뿐 아니라 기계를 이용한 설치 미술부터 사회 비평 작업까지,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작업을 해 온 그의 삶을 따라가보자.
 

▲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들려주고 있는 공성훈 미술학과 교수. 김은정 기자 ejjang1001@

조수민 기자(이하 조)  언제부터 미술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공성훈 작가(이하 공)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당시에는 미술 학원이 많지 않아서 혼자 그림을 그리곤 했죠. 그러다 중학교 때 미술반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어요. 매일 한 장의 그림을 그리며 그때부터 진로를 미술로 정하게됐죠.
조 활동 초기에는 회화가 아닌 기계를 이용한 작업과 설치 미술을 주로 하셨다고 하는데, 어떤 작업이었나요.
공 제가 전자공학도 공부하기는 했지만, 고난도 기술을 이용한 적은 거의 없어요. 꼭 어려운 기술이어야만 의미 있는 것을 보여줄 수 있지는 않으니까요. 첫 개인전은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블라인드 커튼을 이용한 작업이었어요. 블라인드를 재조립해 빛의 음영과 파동을 반사하는 작품들이었죠. 어떤 메시지를 표현하거나, 주장하고자 하는 작업은 아닙니다. 망막에 비치는 그 이미지 자체를 다룬 완전히 시각적인 작업이었죠.
첫 개인전을 끝낸 뒤에는 다른 분야로 넘어갔어요. 요샛말로 하면 ‘개념적’인 작업이라고도 하는데요. 미술이나 문화, 사회 전반에 대해 코멘트하고 비평하는 작업을 예술로 담아냈죠.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했던 ‘예술작품자판기’는 예술의 상업성에 대해 생각해 본 작품입니다. 담배 자판기를 개조해 담뱃갑 사이즈의 박스를 제작해 20명의 작가들에게 돌렸어요. 그리고 “당신 작품 천원에 팔테니, 천원어치의 작품을 만들어봐라” 해서 그것들을 모아 자판기를 만들었죠.

▲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한 ‘예술작품자판기’. 담배 자판기를 개조해 담뱃갑 대신 예술가들의 작품을 판매했다. ⓒ공성훈 교수 제공

조 초반에 그런 자유로운 형식의 작업을 주로 하다가, 다시 회화로 돌아가게 된 계기가 있으시다면?
공 97년도에 IMF가 터지고 경기도 고양시의 벽제로 이사를 하게 됐어요. 비닐하우스에서 살면서 당시 제가 교수로 있던 용인대학교까지 출퇴근 했는데, 왕복 5시간 정도가 걸리는 굉장히 먼 거리였어요. 꼭두새벽에 나가 오밤중에 들어오니, 맨날 보게 되는 환경은 교외의 밤 풍경과 동네 아저씨가 기르던 마당의 보신탕용 개들 12마리였어요. 산책도 못 하고 묶여 사육당하는 개들이 퇴근할 때 저를 반겨주는 유일한 존재였어요. 그래서 그 개들에 대한 작업을 해보고 싶어졌어요. 어떻게 다뤄볼까 생각하다가, 간접적인 방식보다는 직접적인 매체인 ‘회화’로 다루는 것이 대상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 이후부터는 쭉 회화에 집중해오며 그림을 그려내고 있죠.
조  사실 회화가 약간 고전적인 장르로 여겨지기도 하는데요. 이런 상황 속에서 ‘회화’를 그리며 힘들었던 점이 있으시다면.
공 특별히 주변에서 하는 얘기 때문에 힘들었던 적은 없어요. 원래 주변 시선을 잘 신경 쓰는 타입이 아니거든요. 다만 항상 어려웠던 건 ‘잘 그리는 것’이었어요. 회화는 정말 어려운 작업이에요. 회화는 동굴 벽화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는 아주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현재 미술 인구 중 거의 대다수가 회화 작품을 그리고 있기도 하고요. 이런 상황 속에서 기술적인 완성도도 있어야 하고, 작가로서 자신만의 독특함도 보여주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조  그럼 교수님이 찾은 교수님만의 ‘독특함’은 무엇인가요?
공 일단 제 그림은 예쁘지 않아요. 장식적이지 않다는 말이죠. 어둡고, 음침한 그런 우울한 풍경들이죠. 하지만 그 안에 동시대적인 정서와 세상을 살아나가는 사람들의 심리를 담고자 한 게 저만의 독특함이에요. 이런 점이 이번 '올해의 작가상 2013'전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인 것 같기도 하고요.
▲ '올해의 작가상 2013'전에 전시된 ‘절벽(담배피우는 남자)’. 이번에 전시된 작품 중 가장 오랜 작업 시간이 소요됐다고 한다. ⓒ공성훈 교수 제공

조  이번 '올해의 작가상 2013'전에서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셨는데요. ?겨울 여행?이라는 주제로 관객들에게 주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공 제 그림들은 어두컴컴한 배경의, 사나운 풍경들이에요. 저는 그런 음침한 분위기를 통해 현대인들의 불안한 삶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예전에 비해 우리네 삶이 훨씬 더 불안정해진 것 같아요. 사회와 경제의 전반적인 시스템에 의해 개개인들이 속박되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어요. 이런 우리가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시스템을, ‘자연’에 비유한 거예요. 자연도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근원적인 힘이니까요. 그 속에서 불안해하는 인간의 모습을 담아냄으로써 문명과 사회에 의해 휘둘리고 있는 인간의 불안감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조  이번 선정이 교수님께 주는 의미가 있다면 어떤 걸까요.
공 일단 감사해요. 사실 회화라는 작업을 해오며 종종 미술계에서 외롭다는 느낌도 있었거든요. 심사 위원 중 외국 심사위원 한 분께서 자신은 이제 회화는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제 작품을 보고 회화의 힘을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낡고 형식적이라고 생각되는 회화의 가능성을 인정받은 것 같아서 기쁩니다.
조  2001년부터 지금까지 우리 학교 교수로서 교단에 서고 계시는데요. 학생들을 교육하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있으시다면.
공 저는 항상 학생들에게 언어적, 추상적으로가 아닌 시각적, 구체적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빠른 속도’를 표현하는 그림을 그린다고 해봅시다. 종이에 비행기를 그린다고 빠른 속도가 표현될까요? 이런 게 바로 언어적으로 사고하는 겁니다. 달팽이를 그려도 빨리 달리는 것처럼 표현할 수 있어요. 막연한 추상성에서 벗어나 명확한 사고를 하는 것. 이게 제가 가르치며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부분입니다.
조  앞으로도 회화 작품을 그리실텐데, 이것만은 지키고 싶다 하는 교수님만의 신념이 있으시다면.
공 흔히들 예술을 현실 초월적이라고 하죠. 하지만 그런 초월성도 ‘어디로부터’의 문제지 ‘어디로의’의 문제가 아닙니다. ‘To’가 아닌 ‘From’의 얘기라는 말이에요. '어디로' 가려는 것도, '어디로부터'가 있어야 갈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예술의 초월적인 힘도 우리의 현실에서부터 나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현실에서 발을 떼지 않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어요. 제 주변의 환경에 집중하면서, 그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그려 나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