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신문평 기자 (arch_eliot@skkuw.com)

가부장적 사회 풍토가 문제 키워
피해자 중심의 해결 방법 요구돼

스토킹에 있어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피해 사실을 제대로 주변에 알리지 못하고 소극적 대처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피해자 개인의 문제이기에 앞서 그들을 둘러싼 사회의 왜곡된 통념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전문가들은 스토킹 문제가 상대에 대한 소유욕 및 지배욕과 관련돼 있다고 말한다. 상대를 강제로 소유하려는 가해자의 욕구는 피해자에게 두려움과 죄책감이라는 두 가지 감정을 심어줌으로써 발현된다. 이는 폭력적 행위로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심리와 지속적 구애행위를 바탕으로 연민의 감정을 유도하려는 행동을 통해 드러난다.
특히 한국 사회의 스토킹 문제는 근본적으로 가부장제 문화에서 비롯된다. 이와 관련해 ‘스토킹의 심리학’의 저자 이규환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문화가 개인으로 하여금 상대 이성을 소유물로 여기게 한다”며 가부장제에 의한 억압의 문제를 제기한다. 특정 계층이나 이성에 대한 소유가 비교적 쉽게 용인되던 가부장 사회의 논리는 현대까지 잔존해왔다. 이는 스토킹을 범죄행위가 아닌 사소하고 개인적인 문제로 여기게 하는 중요한 기제가 됐다. 실제로 스토킹에 대한 강력한 형사처벌을 청원하는 움직임이 오랫동안 지속됐음에도 스토킹은 작년이 돼서야 겨우 경범죄처벌조항에 추가될 수 있었다. 이는 그동안 한국 사회 내에서 스토킹을 포함한 성폭력 문제에 대해 진지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두려움과 죄책감의 감정이 피해자가 소속된 공동체 내에서 더욱 증폭된다는 점이다. 이 전문의는 “피해자의 도움 요청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거나 미온적 대처에 그칠 경우, 피해자는 이를 오히려 ‘가해’의 상황으로 인식해 더 심한 고통을 겪는다”며 주변인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소장 백미순)에 따르면 스토킹에 대한 이해가 낮은 주변인이 피해자의 상황에 공감하지 못할 경우 피해자는 더욱 고립될 수 있다. 결국 이는 스토킹 행위로 고통 받고 있는 피해자의 상황을 악화시키는 결과로 나타난다. 일례로 6개월간 같은 계열 동기에 의해 스토킹을 당한 우리 학교 A학우는 학내 스토킹의 가장 큰 문제로 주변인들의 몰이해를 지적했다. 그녀는 “스토킹 문제에 대해 수군거리거나 당사자가 너무 예민하다고 치부하는 사람들의 시선들로 인해 더 상처받았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스토킹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우선 성폭력 관련 전문가들은 스토킹에 관한 처벌 규정이 더욱 엄격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명예훼손 △모욕 △협박 등 가해행동 하나하나를 별도로 처벌할 수밖에 없는 현행법은 분명 한계를 지니고 있다. 현재 스토킹에 대한 범칙금 8만원의 경미한 처벌은 피해자의 고통을 줄이고 이를 방지할 대책으로서 알맞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더불어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한 관계자는 “스토킹 피해 사실과 그 위험성을 이해하는 사람들로부터 피해자가 지지와 공감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피해자가 그의 주변인들로 하여금 두려움과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풍토가 정착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한 적절한 법안 입법과 사회적 개념정립이 절실하다며 입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