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야기 - 책방 ‘피노키오’

기자명 김태윤 기자 (kimi3811@skkuw.com)

작은 예술 공방과 이색 맛집이 즐비한 연남동 골목에 접어들면, 금방이라도 동화책에서 튀어나올 법한 책방 ‘피노키오’가 보인다. 수백 권의 그래픽 노블과 그림책 앞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손님들의 모습. 알록달록한 책 속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방 지기 ‘피노(본명 이희송)’ 아저씨, 그와 함께 ‘그래픽 노블’ 여행을 떠나봤다.

 
즐비한 대형서점에 가려 동네서점이 사라져 가는 요즘, 책방 ‘피노키오’는 그래픽 노블과 그림책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인디서점’이다. ‘인디’라는 말에 걸맞게 출판사가 아닌 개인이 제작한 독립출판물, 그래픽 노블과 같은 비주류 장르 서적, 그리고 볼로냐 도서전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희귀한 수입원서가 노랗게 채색된 책꽂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래픽 노블을 맛보고자 대형서점을 찾았지만, 비닐 커버 앞에서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독자들에게 이곳은 천국과도 같다. 작품성, 예술성이라는 ‘얼굴값’ 때문일까. 피노씨에게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쉽게 ‘그래픽 노블’을 만나볼 수 없는 이유를 물었다. “일부 대형출판사에서 마케팅의 일환으로 사용하기도 했었는데, 아무래도 상업성이 떨어진다는 한계 때문에 많이 유통되고 있진 않은 상황이에요.” 그래서인지 그래픽 노블이 대중화된 미국, 캐나다, 프랑스의 원서를 수입해 번역하거나, 국내 작의 경우는 독립출판의 형태로 유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피노씨는 이 ‘쉽지 않은 친구’를 어떻게 만나게 됐을까. 그가 처음 그래픽 노블의 매력에 빠지게 된 계기는 에이즈에 걸린 여자와 아들의 이야기를 담은, 프레데릭 페레트스의 자전적 이야기 ‘푸른 알약’을 통해서다. “그래픽 노블은 이렇게 작가의 체험을 담거나 역사적인 기록을 다룬 것들이 많아요.” 선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그래픽 노블의 정석 ‘쥐’는 작가의 아버지가 겪은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체르노빌의 봄’은 폐허가 된 도시 체르노빌에서 작가가 온몸으로 느낀 재앙과 희망을 담았다. “남들이 잘 모르는 장르라는 것, 단순한 오락 이상으로 예술적인 그림과 문학적인 메시지를 느낄 수 있단 게 매력적이었어요.” 그는 이런 매력을 알리고자 하는 마음에 마틴 루서 킹의 일대기를 그린 그래픽 노블 ‘I Have a Dream’을 번역하기도 했다.
▲ 책방 피노키오의 그래픽 노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던가. 그에게 그래픽 노블 한 권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제인 에어와 여우, 그리고 나’를 펼쳐 들었다. “그림 자체가 정말 예쁘고 무엇보다 담고 있는 메시지가 좋아요. 왕따를 주제로 했는데 어린이, 어른 할 것 없이 깊게 공감할 수 있는 철학적인 내용이에요.” 컬러와 흑백을 넘나드는 부드럽고 섬세한 그림체에서 한 폭의 일러스트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 말을 배운 아이의 옹알이처럼 그의 책 이야기는 쉴 틈 없이 실타래처럼 풀어졌다.
좋은 그래픽 노블을 고르기 위해 해외 서평을 읽고 유명 작가의 동향을 파악하는 데 하루에 네다섯 시간 이상을 투자하는 피노씨. 그는 눈앞에 놓인 수익성에 급급한 출판사들이 그래픽 노블이 지닌 진정한 가치를 놓치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하루키 소설만 예술일까요. 그래픽 노블도 하나의 예술이에요. 좋은 책을 고르는 것도 출판사의 몫이죠. 수상작이나 베스트셀러 작가 위주 말고 좀 더 그래픽 노블 장르에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된 공부를 했으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독자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좋은’ 그래픽 노블이란 무얼까. 그는 7년간의 꼼꼼한 자료조사를 통해 탄생한 책 ‘하비비’를 가리키며 ‘작가 정신’과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강조했다.
책방 피노키오는 ‘사람’과 ‘책’이 함께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 있는 공간이었다. “대형서점에선 손님과 점원의 대화가 자연스럽지 않아요. 여기선 친구처럼 추천도 해주고 편하게 수다도 떨죠. 그게 이곳만의 매력인 것 같아요.” 비닐 커버 따윈 벗어 던진 채 독자를 기다리는 그래픽 노블의 화려한 속살을 보고 싶다면, 책방 피노키오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백발에 땡그란 눈의 피노 아저씨가 유독 긴 겨울밤을 책임질 새 친구를 소개해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