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범준 기자 (magic6609@skkuw.com)

 

* 공간·공감
‘공간·공감’은 공간과 그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성대신문> 사회부의 새 코너입니다. 기자가 직접 공간을 방문하여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풀어냅니다.

서울혁신파크에 위치한 ‘청년청’ 건물의 모습.
사진| 이호정 기자 sonamuda@skkuw.com 

지난 19일, 서울의 하늘은 흐렸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불광동에 있는 서울혁신파크는 마치 대학캠퍼스 같았다. 건물들 사이로 너른 잔디밭과 은행나무들이 있었다. 흙탕물이 고인 웅덩이와 은행 열매를 요령 있게 피하며 걷다 보면 하얀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오래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청년들의 해볼 만한 공간’ 청년청이다.
청년청은 서울혁신파크 22동 건물에 있다. 이 건물은 서울혁신파크 종합계획에 따라 2017년 2월 철거될 예정이다. 서울시는 그때까지 놀리는 공간을 청년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임대하기로 했다. 지난 7월, 101개의 청년단체가 청년청에 입주신청을 했고 서류전형과 면접을 거쳐 57개의 단체가 선정됐다. 이들은 지난 9월부터 입주를 시작했다.
청년청이 위치한 서울혁신파크는 뒤로는 북한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6차선 대로를 끼고 있는 삼각형 모양의 거대한 부지(약 3만 평)다. 서울혁신파크는 2010년까지만 해도 질병관리본부로 쓰였다. 2010년 질병관리본부가 충북 오송으로 이전하면서 2013년 서울혁신파크가 자리 잡았다. 이후 서울혁신파크는 사회혁신활동을 하는 단체들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공간의 지리적 위치는 고정적이나 공간의 역할은 가변적이다. 과거 사람의 질병을 치유하던 공간이 이제는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현재 서울혁신파크에는 190여 개 단체에 속한 1,000여 명의 사회혁신가, 청년활동가들이 머물고 있다. 1960년대부터 자리를 지켜온 32개의 낡은 건물에 청년허브, 서울사회적경제지원센터, 서울혁신센터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청년의 자리

서울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2020 청년정책 기본계획’(이하 청년정책)은 벼랑에 몰린 청년들에게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지난 3년간 청년당사자와 정책전문가가 200여 차례의 협의를 거쳐 마련한 청년정책은 △일자리(청년취업 지원) △설자리(청년수당 지원) △살자리(주거빈곤 해결) △놀자리(청년활동 공간 마련) 네 가지 주요 분야로 구성돼있다. 청년청은 ‘놀자리 마련’을 목적으로 추진된 사업이다.
청년들에게 공간은 모든 사회 활동의 기초다. 어떤 단체 활동을 하든 공간예약은 최우선으로 이뤄져야 한다. 특히나 ‘뭔가를 해보려는’ 청년들에게 공간은 더욱 필수적이다. 청년청에 입주한 영상프로덕션그룹인 ‘담이’는 이곳에 입주하기 전 회의공간을 찾지 못해 서울 시내의 카페를 전전하곤 했다. ‘담이’의 김햇살 씨는 “영상작업의 특성상 함께 모여서 작업을 해야 하는데 각자 집, 학교에서 따로 작업하다 보니 어려움이 많았다”고 말했다. 손작업 프로젝트 그룹 ‘수산업’의 김연정 씨는 청년청에 입주하기 전 공간부족문제를 절실히 느꼈다. 사무실이 일반주택에 있었기 때문에 목공작업 할 때마다 나는 소음, 먼지를 매번 신경 써야 했다. 김 씨는 “청년청이 마치 대학캠퍼스처럼 야외공간이 넓어서, 야외에서 소음, 먼지 걱정 없이 작업할 수 있어 편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청년청 지하공간에 모인 청년들이 포트락파티를 열고 있다.
ⓒ청년쳥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동체’

청년청 입주단체들은 보증금 없이 월 20만 원(관리비 포함)의 저렴한 가격으로 공간을 이용하고 있다. 서울혁신파크 22동(청년청)의 1, 4층은 공용공간 및 휴게공간으로 2, 3층은 입주공간으로 사용된다. 총 48개의 입주공간 중 45개는 4.5평 규모로 5∼6명 규모의 작은 단체가 활동하기에 맞춤하다. 57개 입주단체 중 18곳은 입주공간을 공유하고 있다.
청년청에 모인 이들을 한 단어로 규정하는 것은 어렵다. 주거·일자리·교육 관련 사회적 문제를 직접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적 기업뿐만 아니라 일반 회사, 소규모 프로젝트 그룹도 있다. 대표자가 만 19세 이상 39세 이하인, 서울에서 활동하는 단체라는 공통점만 있을 뿐이다.
청년청의 최우선목표는 청년에게 ‘무엇이든 해볼 만한’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청년청의 기획 단계부터 참여한 청년허브 김영경 기반조성단장은 “청년들은 기성세대보다 인적 네트워크도 부족하고, 자원도 많이 부족하다 보니 자신이 해보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어렵다”며 “청년들에게 ‘비빌 언덕’을 마련해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청년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함께할 공간을 찾지 못한 청년들의 싸움은 개별적으로 전개됐다. 하지만 청년들이 청년청에 모인 순간부터 청년들의 싸움은 함께하는 것이 됐다. 건축설계 및 시공을 주로 하는 ‘BAT’의 안형욱 씨는 청년청이 “우리가 떨어져 있지 않다는 감각을 주는 것 같아서 더욱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안 씨는 청년청을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려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동체’라고 정의 내렸다.
자유로운 청년들은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면서 협력한다. 입주한 지 2개월밖에 안 지났지만 청년청 내부에서는 협업의 움직임이 조금씩 일고 있다. 청년프로덕션그룹 ‘담이’는 청년청 1층에 입주한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장애인 관련 콘텐츠 사업을 계획 중이다. ‘BAT’는 청년청 앞을 장식하는 구조물을 설계하고 있는데, 구조물 외벽의 페인트칠을 청년청 2층의 ‘W.painting’에 맡기는 것을 검토 중이다.
 
 

입주단체들은 지난 8월 열린 '매칭데이'를 통해 입주공간을 공유할 단체를 정했다.
ⓒ청년청

공간의 역사, 인간의 역사

저출산이 문제가 되는 오늘날과 달리 1970, 80년대에는 높은 출산율이 문제였다. 국가적 차원에서 출산억제정책을 시행했다.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70년대), ‘둘도 많다 하나 낳고 알뜰살뜰’(80년대) 같은 표어가 등장했다. 지금 보면 실소를 자아내는 표어들이지만 당시 인구문제는 꽤 심각한 사안이었다.
청년청 건물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인구성장 억제의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 1971년 7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인구문제를 담당할 가족계획연구원이 설립된다. 가족계획연구원은 1983년까지 이 건물에 머물렀다. 그리고 국립보건원 훈련부가 입주해 2001년까지 보건인력을 양성하는 역할을 맡았다. 2000년대 초반에는 국립보건원 산하의 몇몇 기관들이 머물렀고, 2011년에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교과서검정본부가 입주했다. 지난 6월까지만 해도 이곳은 교과서 검정본부였다.
이 허름하고 흰 콘크리트 건물이 사람이었다면 아마 국가유공자 예우를 받았을 것이다. 청년청 건물은 시대의 요구에 맞게 인구문제 전문가, 보건인력 양성가, 교과서검정본부장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건물이 준공된 1970년부터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을 함께 견뎌온 것이다. 그러나 이 건물은 호텔건립을 위해 2017년 2월부로 철거될 예정이다.
청년청 건물 철거계획이 철회될 가능성은 작다. 청년청 입주자들이 이미 철거계획에 동의한 후 계약을 맺었고, 청년청 부지에 호텔을 짓기로 한 서울혁신파크의 종합계획은 번복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 이계열 서울혁신기획관 청년정책담당관은 청년청 대안공간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청년청 만한 규모의 사설공간을 새롭게 찾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답했다. 그는 또 철거계획에 대해 “지역발전을 위해 호텔건립을 찬성하는 여론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광고제작업체 ‘인디시에프’의 마크 브라질 씨는 “청년청이 사라지는 게 너무 아쉽다”며 “철거 이후 구체적인 이전계획이 아직 없어 막막하다”고 말했다.
공간은 움직이지 않는다. 다만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화할 뿐이다. 청년청도 마찬가지다. 한때 출산억제 정책을 궁리하던 사람들, 보건공무원을 양성하던 사람들, 교과서를 연구하던 사람들로 가득했던 이 공간을 이제는 청년들이 채우고 있다. 2017년 2월, 청년청이 철거되면 이곳에 머물렀던 청년단체들은 어디로든 떠나야만 할 것이다. 그곳이 어디든 공간은 변함없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공간 안에서 청년들은 치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