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홍정아 기자 (ja2307@skkuw.com)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다섯 친구들이 뛰어놀고 아주머니들이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던, 사람냄새가 풀풀 풍기는 쌍문동 골목은 이제 차가운 콘크리트로 메워졌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이웃의 삶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에서 <응답하라 1988> 속의 삶은 판타지에 가까울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것은, 또 그것을 보며 “저렇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은 삭막한 현실에서 벗어나 이웃 간의 정이 있는 마을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열망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따뜻한 마을, 함께 만들어가요

ⒸtvN

당신의 옆집엔 누가 살고 있나요

‘풀뿌리 민주주의’란 대중들이 지역 공동체의 운영에 자발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지역과 실생활을 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지역 공동체라는 개념은 희미해진 지 오래다. 개인에게 집이란 단순히 잠만 자는 공간이 되어버렸으며, 이웃은 옆집 사람 그 이상의 의미를 담지 못한다. 그들이 놀고 배우고 일하면서 대부분의 생활을 보내는 공간은 이제 철저하게 지역 사회와 단절되어 있다.
2013년 '해럴드경제'는 직장인 600명에게 ‘위층과 아래층, 같은 층 이웃의 얼굴을 알고 있느냐’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응답자의 35.5%가 ‘아무도 모른다’, 26.3%가 ‘한 집 안다’, 16.8%가 ‘두 집 안다’고 답했다. 아마 우리가 굳이 위층에 올라가 초인종을 누르고 이웃과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층간소음에 대한 주의를 줄 때가 전부일지 모른다. 이렇게 서로에게 무관심하다면 사소한 갈등은 곧 눈덩이처럼 불어나 사회적 문제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이런 환경 속에서 △공론의 장 형성 △상호 간의 협력을 통한 상생 △삶의 지혜 전수 △지역 문화 보존이라는 공동체의 순기능은 실현되기 어렵다.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간디는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고 말했다. 그의 저서에 따르면 근대 산업주의 문명이 가져다주는 물질적 풍요는 허망한 약속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의 참다운 미래는 자립적인 마을에 달려있다.
마을 속에서의 자치적인 삶,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사람들 간의 협력, 풀뿌리 민중의 자립을 통한 마을 자치의 실현이 전 세계적인 병폐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이 서울과 잉글랜드의 도시공동체 26곳을 찾아다닌 후 펴낸 『마을의 귀환』에 따르면 마을 공동체의 종류는 굉장히 다양하다. △마을공동체를 기반으로 먹고사는 방법을 고민하는 마을기업 △아이를 함께 키우는 돌봄 공동체 △‘원전 하나 줄이기’를 목표로 하는 에너지 자립 공동체 △지역 주민과의 관계망 형성을 통해 전통시장을 활성화하는 시장 공동체 등이 그 예이다.


더불어 사는 삶을 꿈꾸며

이처럼 △고립된 개인 △무한경쟁이 가져오는 패배감 △서로에 대한 불신 등 성장지상주의의 단면이 모습을 드러낸 현대 사회에서 다시금 함께 하는 삶을 만들어가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취임 후 마을 만들기 사업에 중점을 두며 “이제 중앙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동네 주민이 자생할 기반을 조성하는 마을 단위의 지역 공동체사업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저출산, 독거노인, 양극화 등 한국 사회의 수많은 모순에 대해 마을이 묘약이라고 말했다. 마을 만들기를 통한 공동체 정신의 형성으로 단절과 갈등 구조를 해소해야만 사회적인 문제들의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서울시뿐만 아니라 강릉, 수원, 완주 등에 퍼지며 전국적인 흐름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