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과의 동행 - 하이퍼리얼리즘 화가 정중원

기자명 장소현 차장 (ddloves@skkuw.com)

 

하이퍼리얼리즘 작품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화가들이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생각을 먼저 하고 그것에 대한 반영으로 작업하는 경우는 비교적 드물어요. 대부분 자기가 좋아하기에 하는 거죠. 저는 어릴 때부터 사실적인 게 좋았어요. 군대 전역 후에는 사실적인 그림을 넘어서 아예 극한의 사실성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하이퍼리얼리즘 그림을 그리면서 저도 문제의식이 생겼어요. ‘내가 좋아서 그리는 그림이지만 사진과 똑같이 그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하이퍼리얼리즘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어요. 하이퍼리얼리즘이라는게 ‘내가 이만큼 잘 그려요’하는 기교적 자랑이 아니에요. 이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으며 뒤죽박죽돼버린 원본과 복제의 순서가 담긴 현재 우리의 삶과 사회에 굉장히 맞닿아 있는 거죠.

본인의 작품 스타일을 설명해준다면.

처음에는 기존의 하이퍼리얼리즘 작품처럼 모델을 캔버스에 그대로 옮겨 그리는 작업을 했어요. 연예인이나 친구, 가족들을 실재와 똑같이 그리는 과정이었죠. 최근에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모델 혹은 참고할 수 있는 사진이 오래돼 인물을 제대로 알아보기 힘든 사진 속 모델을 그려내고 있어요. 예를 들어 그리스 조각상, 아그리파 석고상, 과거 회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 등을 그리는 거죠. 대상을 실재적으로 그리기 위해서 그와 비슷하게 생긴 실제 모델을 찾아요. 조각상의 경우, 형태는 조각상에서 가져오지만 피부 질감이나 눈 색깔, 머리 색깔 등은 실제 모델을 통해 그려내요. 그 결과물은 진짜 사람처럼 나오게 되죠. 이처럼 실재보다 더 실재처럼 흉내 내는 가상을 그려내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인물 위주의 작품을 주로 하는 이유는.

인물이 그리기 어렵지만 재미있는 그림 소재예요. 사람 얼굴이라는 게 매일 보아도 질리지 않잖아요. 특히 요즘 하는 작업은 가상의 인물을 실재처럼 되살리는 것이다 보니 결과를 예측할 수 없어서 더 재미있어요. 실제 모델을 바탕으로 그리는 작업은 그림이 완성된 모습도 실제 모델과 같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조각상을 실재처럼 그리면 완성되기 전까지는 그리는 저 자신도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몰라요. 하얀 비너스 석고상을 보고, 제 마음대로 눈동자 색도 정하고 취향에 따라 여드름 하나를 넣을지 두 개를 넣을지도 정해요. 그러다 보면 그 결과물을 저도 예측하지 못하니 결과물이 나오는 과정이 즐겁죠. 하이퍼리얼리즘은 원본을 무색하게 하는 복제를 만드는 거잖아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이 ‘뭐가 진짜야’ 하고 보는 사람이 갸우뚱하게 하는 가상을 만드는 가장 재밌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정중원 화가의 작품 <Costanza>
ⓒ 정중원 화가 제공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선 요즘은 그림 그리는 시간을 줄이려고 하고 있어요. 한 작품을 그리는데 1년 가까이 걸리는 것도 있어요. 현실적으로 하나의 작품에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면 경제적인 문제가 발생해요.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줄이고 작품 수를 늘리고자 하는데, 시간을 단축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그림의 질이 떨어지죠. 그게 딜레마에요. 그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하겠죠.

그림 자체만 놓고 보면 사람의 얼굴을 그리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고민할 게 많아요. 화가가 연출가가 되어야 하거든요. 인물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는지 조금 내려갔는지에 따라서 인물의 표정이 달라지고, 얼굴 방향에 따라서도 느낌이 달라져요. 연출자가 배우에게 지시하듯이 인물의 표정부터 모공 하나까지를 신중히 정해야 하는 거죠.

본인의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제 작품을 보고 ‘그림이 그림다워야지 왜 사진인 척해’하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와 같은 하이퍼리얼리즘 작품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그대로 사회에, 우리 삶에 적용하면 돼요. 인공지능의 경우 인간의 피조물인데 사람들이 그 인지 수준에 깜짝 놀라고 모종의 공포감까지도 느껴요. 전형적인 하이퍼리얼리티예요. 인간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인공지능이 우리를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부정적 생각이 퍼지곤 하죠. 하지만 이러한 하이퍼리얼리티를 바로 알고 이용하면 긍정적 효과를 찾을 수 있어요. 하이퍼리얼리티를 통한 경험의 결과로 인식의 저변이 얼마나 넓어지겠어요. 옛날에는 실시간으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걸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가능하잖아요. 이런 게 재밌는 거예요. 하지만 알고 즐기는 것과 모르고 즐기는 건 달라요. SNS라는 것도 양날의 칼이잖아요. 특히 SNS 속 ‘나’의 모습에 함몰돼 버리면 현실의 일상이 망가질 수 있어요. SNS 속 자신의 사진은 아름다워요. 왜냐하면 항상 보정을 하니까요. 그렇게 가상 세계 속 자신의 모습이 실재의 모습보다 더 신경 쓰고 중요하게 여기면 실재의 삶이 가상의 삶에 맞추게 돼요. 하지만 SNS를 잘 활용하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죠.
제가 그림을 통해 관객에게 무엇인가 가르치고자 하는 건 없어요. 그저 그림을 통해 한번 경험하고 생각해보자는 거예요. 내가 지금 사는 삶은 어떠한 삶인지. 그리고 실재에 맞추어 살고 있는지, 가상에 끌려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정중원에게 ‘정중원’이란.

저는 ‘나’라는 개인이죠. 그렇게 살고자 하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고요. 사회가 정해놓은 규칙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변하면서 생각하는 주체로 사는 거예요.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이고 어떤 일을 해야 신바람이 나는지, 그런 걸 계속 생각하고 찾아가는 거죠. 남들과 다른 독창적인 ‘나’가 되는 것. 남들과 똑같은 공산품이 아니라 한 번뿐인 인생에서 예술작품으로, 적어도 한정판으로 사는 것, 그게 ‘정중원’이에요.

앞으로의 목표는.

건강한 개인으로, 끝없이 질문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일차 목표예요. 저와 같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시끌벅적하게 살아가는 사회가 이차 목표고요.

그 시작점은 어떤 것이 진정한 ‘나’의 생각인지, 무엇이 원본인지, 실재인지를 한 번 생각해보는 거예요. 세상에 하나뿐인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어요. 하지만 대개 사람들은 나라는 존재에 대해 절대평가를 해야 하는데 상대평가를 해요. 상대평가의 기준도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 가상의 괴물이 만들어 놓은 기준을 가지고 평가를 하죠. 외모, 연봉, 학력과 같은 요소로 평가하니 삶이 불행해질 수밖에 없어요. 남들이 만들어 놓은 가치보다 자신의 가치를 먼저 생각하면 내가 더 ‘나’다울 수 있으니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어요. 열 명이 있으면 열 명의 생각이, 생김새가 다 달랐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사회가 더 재밌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