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과의 동행 - 어름산이

기자명 김해빈 기자 (dpsdps@skkuw.com)

총길이 26m 폭 5cm. 좁은 줄을 땅 삼아 하늘을 지붕 삼아 걷고 뛰며 날아다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어름산이 권원태 씨이다. 얼음 위를 조심스럽게 걷는 듯하다고 하여 붙여진 순우리말 이름 어름산이. 먼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지는 *남사당놀이 속 줄타기의 길을 그는 묵묵히 걸어왔다. 주름 속 강하고 억센 예술가의 모습이 담겨있는 그를 만났다.


ⓒ권원태 제공
「어름산이」 - 오대교
여보시게/ 난하늘이 두렵지 않다네
내 집 같은 걸/ 줄기둥에 술이나 한 잔 부어주게
녹밧줄을 팽팽히 당긴 다음/ 한 판 놀아 볼까…

하늘길이 어둡네/ 횃불을 밝혀주게
외홍잡이 쌍홍잡이로 치솟고 싶네
여보시게/ 난 땅이 두렵다네
애써 걸어도 끝없는 땅이

떵따따 쿵따쿵 떵따따 쿵따쿵 얼쑤

왜 어름산이의 길을 선택했는가.
환경에 큰 영향을 받았어요. 광대 집안에서 태어났고, 좋아서 하기보다는 억지로 시작했죠. 10살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줄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줄을 자연스럽게 접할 기회가 주어졌어요. 천재가 아닌 이상 어린 나이에 평생 이 길을 가야겠다고 누가 생각 하겠어요.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 중 제일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남들에게 떳떳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한 거예요. 그것이 줄타기였고 그래서 어름산이의 길을 가기로 했어요.

어름산이는 어떤 직업이라고 생각하나.
복합적인 모습을 담고 있는 직업이에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기에 자부심이 커요. 한편으로는 위험하기도 한 직업이고, 어떨 때 보면 아주 외로운 길이에요. 줄타기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일이 아니니까요. 연기자는 상대 배우와 호흡을 맞추고, 가수는 반주단이 있잖아요? 그런데 줄은 연습부터 공연까지 혼자죠.

사진 | 한대호 기자 hdh2785@
“그 사람 시원시원하게 줄 잘 탔지”라는 말 듣고 싶어
목숨 걸고 하는 일, 두려움은 항상 있어


줄을 타면서 가장 큰 희열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공연이 잘 됐을 때죠. 여기서 공연이 잘 되었다는 것은 관중의 반응보다 나 스스로에 대한 만족이에요. 초보자가 아니잖아요. 수십 년을 한 사람이에요. 40년 넘게 줄을 탄 사람이 무엇에 만족할 수 있겠어요. 관객의 반응에 좌지우지되지 않아요. 내가 줄에 집중하고 그 순간에 몰두해서 완벽하게 공연했을 때 희열이 느껴지고, 그에 대한 선물로 따라오는 것이 관객의 만족이고 호응이죠.

주로 어떤 주제로 공연을 하나.
고정된 주제는 없어요. 전국의 장터,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는데 지역의 특성에 따라 공연내용도 계속해서 바뀌죠. 그냥 그때그때 상황에 따랐고 지금도 그래요. 과거에는 주로 정치 풍자가 많았는데 요새는 힘듭니다. 잘못하면 정치 비하가 되니까요. 다른 사람은 들으면서 그냥 웃음거리로 여길 수 있는 것이 당사자에게는 화살처럼 느껴질 수 있죠. 어름줄타기 재담의 기본이 풍자긴 하지만 정치 풍자는 꺼려지더라고요. 그 외에는 그때마다 즉흥적으로 관객들과 소통해요.

매번 어떤 마음가짐으로 줄을 타나.
아무리 줄을 40년 넘게 탔어도 다칠 수 있다는 사실을 매번 염두에 두며 줄 위에 올라요. 온전히 줄타기에 집중하죠. 하지만 세상에 줄과 나만 존재하는 것 같은 무아지경에 빠지는 것은 아니에요. 당연히 긴장은 됩니다. 목숨 걸고 하는 일인데 매번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죠. 완전히 떨쳐낼 수는 없어요. 유일한 방법은 적응뿐이에요. 매일 반복해서 줄에 오르다 보면 어느 정도 참아낼 수 있습니다.

두 차례의 부상이 있었다. 트라우마가 생기지는 않았나.
그 공포감은 가시질 않아요. 아마 영원히 그럴 거예요. 누구나 아프고 힘들었던 시기가 머릿속에 가장 오래 각인되죠. 두려웠던 순간들은 잠재의식 속에 항상 남아있어요. 극복이라는 것은 없어요. 몸은 회복될지 모르지만 머릿속에서 어떻게 잊히겠어요. 단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조심해야죠. 2003년에 공연 시설문제로 줄 위에서 떨어졌을 때도 1년간 치료받고 회복된 후에는 바로 줄 위로 올라갔어요.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전통문화가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만 보존 되는 것이라는 인식이 만연한 것 같다. 
잘못됐죠. 대학들도 국악같은 전통문화 관련 학과들을 줄이는 추세예요. 점점 더 전통문화를 이어갈 친구들이 줄어들고 있죠. 안타까워요. 중국 기예단은 따로 학교가 있어서 기존의 전통문화에 현대적인 것들을 접목해 더욱 발전시켜나가요. 그러니 세계에서 알아주죠. 사실 요새 인기 있는 아이돌 가수들은 흘러가는 짧은 유행일 뿐이에요. 그러나 우리나라 전통문화는 대대손손 길게 이어가는 것이거든요. 세월의 흐름이 담겨있으니까요. 중국이나 일본 사람들이 한국에 올 때 무엇을 하러 온다고 생각하시나요? 한국 문화나 정서를 체험하러 오는 것이 아니에요. 대부분 쇼핑하며 화장품만 사 가죠. 한국 사람으로서 자존심 상하는 일이에요. 우리가 유럽을 갈 때 쇼핑하러 가지 않잖아요.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 건축양식 같은 것들을 보러 가죠. 국가 차원에서 외국인들에게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면서 우리의 정서와 문화를 알리려고 노력해야 해요. 이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왔구나 하는 걸 보여줘야죠.

ⓒ권원태 제공

ⓒ권원태 제공















전통문화 보존을 위해 정부가 어떤 실질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정부에 지원을 요구하는 것은 우는 소리밖에 안 돼요. 그냥 공연할 수 있는 공간이나 많이 만들어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대학을 비롯한 교육기관들이 한국전통 관련 학과를 많이 만들어야 해요. 현재 이화여대, 중앙대, 한예종 정도에만 있는 것으로 압니다. 제 나이가 51인데 이제 선배님들을 따라서 저까지 은퇴하게 되면 우리 전통문화의 입지가 많이 좁아지겠죠. 이어나갈 후배들이 많이 필요해요. 전통문화 관련 학과에는 자기 전공을 살려서 진로를 개척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그러니 대학에서 전통문화에 많은 관심을 보여주었으면 하죠.

양성 중인 제자가 있나. 얼마나 배워야 공연을 할 수 있는지.
계속해서 후배들을 키우고 있어요. 줄은 어릴 때 시작할수록 좋죠. 몸을 쓰는 일은 어릴 때부터 신체와 기능이 함께 성장하며 생활화돼야 하거든요. 줄을 점점 높이며 난이도를 올리는 식으로 가르쳐요. 줄을 왔다 갔다 하면서 중심을 잡는 훈련을 하죠. 기술적인 문제라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해요. 자기 몸으로 익히는 것이 제일 중요하죠. 그전에는 흉내만 낼 수 있을 뿐 완벽하지는 않아요. 남들에게 내세울 수 있고, 공연할 정도가 되려면 적어도 10년은 필요합니다.

더 이상 신체적 조건이 줄타기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과감하게 내려올 거예요. 거칠게 표현하자면 쪽팔리니까요. 그래도 나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어름산이가 나이 먹어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애쓰는 모습은 보기 안 좋잖아요. 괜히 욕심내다가 잘못해서 어디 부러지기라도 하면 완전히 끝나는 건데. 그 시기가 60이 될지 70이 될지는 모르지만, 스스로 느끼기에 ‘아, 이렇게 줄을 타서는 부끄럽다’ 싶을 때 과감하게 은퇴할 거예요. 줄 아래에서도 하고 싶은 일은 많으니까요. 기획이나 후학을 양성하면서 남은 생을 보내야죠.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나.
“그 사람 참 시원시원하게 줄 잘 탔지!”라는 소리가 듣고 싶어요. 줄을 치고 공연을 할 만한 장소가 적어서 많은 사람이 제 공연을 보기는 힘들겠죠. 그렇지만 제 줄타기를 보신 분들에게만큼은 줄광대로서 그 시대를 풍미할 정도로 잘 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영광일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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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당놀이=조선시대의 춤과 노래 등 흥행적인 놀이를 가지고 떠돌아다닌 유랑예인 집단으로, 중요 무형 문화재 3호이자 유네스코 세계무형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