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인영 (puricure@skkuw.com)

갈 곳 없던 나에게 대한민국은 유일한 선택지
시위 이유, 최소한의 인간다운 대우 원해

지난 7일 광화문에서 난민을 지지하는 시민 단체의 집회가 열렸다. 1시간 기자회견 이후 집회참여자들은 광화문부터 청와대까지 행진했다. 걷는 길은 짧은 듯 길었다. 커다랗게 구호를 외쳐도 시민들은 무관심했다. ‘HUNGER STRIKE라는 팻말을 걸고 22일째 단식 투쟁을 이어나가던 난민 중 한 명이 행진 중에 쓰러지기도 했다. 행진이 끝나고 이집트에서 온 자이드 씨를 만날 수 있었다.

자이드씨가 기자의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다.사진 l 김한샘 기자 hansem8718@
자이드씨가 기자의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다.사진 l 김한샘 기자 hansem8718@

한국에 온 이유와 과정이 궁금하다.
나는 이집트에서 의사와 민주화 운동가로 활동하던 Abdelrahman Zaid이다. 이집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국적은 ‘팔레스타인 난민’ 신분이었다. 당시 아버지가 팔레스타인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이집트는 자녀들에게 아버지의 국적을 따르도록 한다. 팔레스타인은 정치적 갈등을 겪던 이집트 출생인에게 국적을 부여하지 않았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팔레스타인 난민’이 됐다. 성인이 돼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던 중 이집트 정부는 ‘팔레스타인 난민이 정부를 비판하고 모욕했다는 이유로 5년 실형에 처했다. 정치 사범은 감옥에서 폭력을 비롯한 비인도적 대우를 받는다. 이를 잘 알고 있어 가족과 친구의 도움으로 이집트를 떠나 말레이시아로 탈출했다. 이집트 정부가 송환하도록 요구한다면 이집트로 돌아가야 했다. 그래서 말레이시아에서 13개월을 지내면서 캐나다로 떠나기 위해 비자 취득 서류를 준비해 제출했다. 캐나다 정부는 모국인 이집트와 접점이 없다는 이유로 비자 신청을 거부했다. 이후에도 호주 등을 비롯한 많은 나라로 입국 방법을 고민했지만 모두 비자가 필요했다. 난민 신분으로 비자를 취득하기는 힘든 일이었다. 당시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었던 대한민국이 나의 유일한 선택지였다.

남성 난민은 여성 가족 구성원을 등지고 나왔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가족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당시 어머니와 두 누나는 당장 탈출하라고 했다. 그 말은 슬프면서도 동시에 막막했다. 이집트를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탈출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몰랐다.

지금 하는 단식 투쟁의 목표와 이유를 설명해달라.
총 3가지이다. 우선 난민 인정 절차를 전문적이고 공정하게 모든 난민을 위해 진행하라는 것이다. 지금 인정 절차를 이행하지 않은 지 2년이 넘었다. 두 번째는 법무부의 시스템적인 조작에 대한 심도 있는 조사진행이다. 마지막은 반난민적 언사를 멈추고 사과해달라는 것이다. 처음에 대한민국에 입국하고 난민 등록 센터에 난민 지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센터를 방문했을 때 모욕적인 언사를 들었다.

반난민적 언사라면 어떤 것이 있었는지.
이집트에서 경찰에게 붙잡혀 유치장 생활을 했을 때도 정중한 대우를 받았다. 이집트는 대한민국보다 민주적으로 덜 발달한 나라이다. 그런 나라도 나에게 인간다운 대접을 했다. 한국은 민주주의의 국가이고 시민들의 의식이 높다고 들었다. 이 민주 국가에 와서 난민 등록 안내원이 나를 멸시하고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등의 대우를 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난민등록센터가 절차를 무시하고 답변을 유보하는 태도는 난민 신청서를 제출하고 나서 11개월이 지나도록 이어졌다.

예멘 난민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는지.
난민 500명은 한 국가의 세금을 금방 동나게 하거나 한 국가를 엉망으로 만들 만큼의 커다란 숫자는 아니다. 여러 외국 언론의 난민에 대한 반응과 한국 언론의 반응을 비교할 때 예멘인 문제를 과장해서 바라보고 있다. 한국인들이 이슬람교를 어색하게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잘 모른다고 해서 지나친 경계심을 드러내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한국 사회가 개방적인 사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번 예멘 난민 500명이 입국한 사실은 한국이 사회적 분위기를 바꿀 기회가 될 것이다.

본지의 학우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에 와서 힘든 점도 많았지만 친절한 한국인 친구들도 많이 만났다. 나를 돕는 이런 젊은 사람들이 아마 대한민국의 대학생들과 20대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자라 사회에서 자리를 갖게 된다면 대한민국은 열린 사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난민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평범한 직장을 가지고 함께 살고 싶은 사람이다.

                                                                                                                         ※본 인터뷰는 해당 기자가 영어로 진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