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채연 (cypark4306@skkuw.com)

인터뷰 -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

무작정 처벌하기보다는 구조적 문제 해결해야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법, 부작용 우려돼

경제계는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하 개정 산안법)이 기업인의 경영 의욕을 꺾고 기업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를 만나 산안법 개정에 대한 기업의 입장을 들어봤다.

사진 l 박채연 기자 cypark4306@skkuw.com
사진 l 박채연 기자 cypark4306@skkuw.com

 


개정 산안법에 과잉처벌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있다.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는가.
기업에 대한 과잉처벌 소지가 매우 많다. 예를 들어 정부 개정안 제63조는 하청업체의 노동자 보호를 위한 책임을 누구에게 부과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고려 없이, 처벌의 편의만을 위해 무조건 원청업체에 광범한 안전보건조치 책임을 부과했다. 하청업체 사업주는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고 지휘 감독할 수 있다. 반면 원청업체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직접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하청업체 노동자를 직접 관리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원청업체에 하청업체 사업주와 동일한 안전보건 조치를 지게 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개정 산안법이 기업의 산재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보는가.
산업재해 예방에 대한 의지가 아무리 높은 기업도 도저히 지킬 수 없는 법 앞에서는 의욕이 사라질 것 같다. 규정이 너무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기업이 무엇을 어디까지 해야 할지 알 수 없고, 규정을 준수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로 매우 어렵다. 예를 들어, 개정된 산안법을 보면 도급인의 입장에서 자신이 ‘수급인과 같은 수준의 안전 조치를 취해야한다’는 것인지 ‘직접 지도 감독을 하면 된다’는 것인지, 아니면 ‘도급인이 단독으로 안전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도급인은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인 행동지침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단지 사고가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연대책임을 지게 된다.

영국, 독일, 일본 등의 선진국에도 개정 산안법과 비슷한 법안이 있나.
산업안전 선진국의 입법례를 살펴보더라도 개정 산안법 같은 법은 없다. 선진국에서는 실제로 작동되지 않을 처벌에만 의존하는 식의 법을 제정하지 않는다. 선진국은 법안에 역할과 책임을 명시해서 원청업체가 법을 잘 지킬 수 있도록 돕는다. 개정된 산안법이 외국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정부가 법을 제정할 때 충분한 검토를 하지 않았으며 실효성이 보장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법안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외국의 입법례를 찾아보는 이유는 미리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함이다. 이번 산안법 개정은 충분한 검토 없이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법을 우리나라 기업을 상대로 실험하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선진국의 입법사례를 충분히 검토하고 의견수렴을 했어야 한다. 

산안법 개정이 기업에 미칠 영향은.
기업에 혼란만 일으킬 뿐 산안법 개정이 노동자의 산재 예방에 확실히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산안법 제59조 제1항에 따르면 사업주는 자신의 사업장에서 안전 및 보건에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 중 급성 독성, 피부 부식성 등이 있는 물질의 취급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작업을 도급하려는 경우에는 고용노동부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실제로 붕산이나 질산 등 위험한 물질을 사용하는 반도체 업체는 사전에 도급 승인을 받아야 하므로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잠시 도급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것조차 승인을 받아야 하면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이 찾아올 것이다. 도급 승인 제도로만 보면 산안법 개정을 통해 기업의 문서 작업만 늘어나고 정작 산재 예방의 실효성은 없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