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나영 기자 (skduddleia@skkuw.com)
이태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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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사고는 고질적인 하청업체 노동자의 문제 … 산업안전보건법 개정돼
김 교수 "위협을 받는 고용방식을 방치하는 현실에 분개해야"

위험한 작업환경의 관리 책임을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었던 하청업체 노동자는 일터로 향했고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김용균 사고는 고질적인 하청업체 노동자의 위험한 현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여론은 노동자의 안전 보장 책임을 다하지 않는 기업과 법의 변화를 촉구했고 이에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이 개정됐다. 과연 개정된 산안법은 한국 사회가 직면한 하청업체 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하청업체 노동자의 죽음, 김용균 사고
지난해 12월 10일 늦은 밤 하청업체 노동자 김용균 씨는 석탄 이송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머리가 절단된 채로 사망했다. 김용균 씨는 *원청업체인 서부발전의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에 소속된 노동자다. 김용균 씨는 초속 5m로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에 끼인 석탄을 제거하는 등의 점검 업무를 맡았다. 김용균 사고 이전, 서부발전은 한국발전기술에 노동자가 2인 1조로 컨베이어 벨트 8km를 점검하도록 하는 작업지침을 내렸다. 노동자가 2인 1조로 근무한다면 위급상황 발생 시 ‘풀코트’라는 장치를 당겨 컨베이어 벨트의 작동을 멈춰 사고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발전기술은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한 사람당 컨베이어 벨트 4km를 점검할 것을 지시했다. 김용균 씨가 사고를 당했을 때 주변에는 동료가 없었다. 김용균 씨는 사망 추정 시간보다 4~5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발견됐다.

김용균 사고의 책임, 물을 수 없었다
김용균 사고 이후 고용노동부가 시행한 특별근로감독 결과 서부발전과 한국발전기술에서 위법사항이 적발됐다. 주요 내용은 △안전난간 통로 미비 △위험기구 안전인증 검사 위반 △추락위험 방지 장치 미설치 △회전축 벨트 등 방호 덮개 미설치 등이다. 법이 준수되지 않는 환경에서 김용균 씨는 원청업체의 일을 하다 죽었다. 하지만 현행 산안법 상 김용균 사고를 서부발전의 책임이라고 할 수 없다. 현행 산안법 제29조는 ‘도급인이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시행규칙의 대상이 △붕괴 △추락 △폭발 △화재 등 산재 발생 위험이 있는 22개 장소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김용균 사고가 발생한 컨베이어 벨트는 시행규칙의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

김용균 사고 이면에는 근본적 구조 문제가 있었다
김용균 사고는 특별한 사고가 아니다. 인권위원회에 따르면 *간접고용노동자의 업무상 재해 경험 비율은 37.8%로, 원청업체의 정규직 노동자의 업무상 재해 경험 비율 20.6%보다 높았다. 이런 문제는 하청업체 노동자를 고용하는 방식 때문에 발생한다. 하청업체 노동자는 기업이 간접 고용한 노동자다. 원청업체는 업무를 하청업체에게 외주를 맡기고 하청업체는 원청업체에서 받은 일을 노동자에게 배분한다. 원청업체는 상시로 노동자를 고용해서 업무를 시키기에는 일거리가 충분치 않거나 외부의 전문적인 기술을 갖춘 업체를 활용하는 편이 나을 때 하청업체에 일을 외주한다. 원청업체가 직접 노동자를 고용할 때보다 외주를 맡길 시 더 적은 비용으로 인력을 활용하면서도 관리 책임의 부담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소장 조대엽) 김성희 교수는 "하청업체 노동자가 일하다 사고가 발생했을 시 이에 대한 책임소재가 누구에게 있는지 불명확하다. 따라서 위험업무의 외주화, 위험을 방치하는 외주 관리방식이 연쇄적으로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청 업체는 책정된 인력의 인건비를 낮게 유지해 더 많은 수익금을 가져가려 하는 중간 착취형 기업 유형에 해당하기에, 위험업무의 관리나 적정인력 배치에 신경을 쓰지 않으며, 원청업체는 사실상 자신들이 직접 고용한 노동자가 아니므로 이를 방치하고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본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산안법 어떻게 달라졌을까
김용균 씨의 사망 이후 산안법의 개정을 요구하고 하청업체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라는 여론이 형성됐다. 산안법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27일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 산안법은 유해성이 높은 작업의 사내도급을 금지하고 안전조치 위반 사업주의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주 내용이며 2020년 1월 16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김 교수는 “위험한 업무의 외주화 자체는 없어지지 않으나 기업이 위험을 방치하는 행위는 줄어들 수 있다" 며 "이로 인해 무분별한 위험의 외주화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이번 개정의 의의를 밝혔다.

‘노무를 제공하는 자의 안전 및 보건을 유지 증진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산안법 제1조가 개정되며 기존 산안법의 보호 대상이 ‘근로자’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바뀌었다. 기존 산안법의 보호 대상에서 빠졌던 특수형태근로종사자가 이번 개정 산안법을 통해 보호 대상에 포함될 수 있게 됐다. 현행 산안법 시행규칙에서는 원청업체가 폭발·붕괴 등 가능성이 있는 사업장 내 22개 위험장소만 안전·보건 책임을 한정했지만, 개정 산안법 제63조 ‘도급인은 관계수급인 근로자가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작업하는 경우 필요한 안전 조치 및 보건 조치를 해야 한다’에서는 적용범위를 넓혀 원청업체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했다.

김용균 씨가 남긴 숙제
지난 4일 김용균 사고가 발생했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윤 모 씨가 석탄 취급 설비 현장을 점검하다 쇄골과 늑골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고는 2인 1조로 근무를 하고 있었고 상황을 바로 확인할 수 있어 더 큰 사고를 막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번 사고는 산업현장이 여전히 위험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 교수는 “생명의 위험을 느끼면서 수시로 해고의 위협을 받는 고용방식을 방치하는 현실에 분개해야 한다”며 “산안법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노동부의 엄격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며, 앞으로 기업의 실질적 책임성이 발휘되도록 산재 발생에 대한 처벌 수위도 높아져야 한다”고 앞으로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언급했다. 덧붙여 그는 “사람의 노동은 모두 존중받아야 하고, 합리적 차이를 넘어서는 차별을 당연시하는 행태를 고쳐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청=건설 공사를 건축주로부터 직접 청부하는 것. 또 그 건설업자.
*하청=원청이 맡은 일의 전부나 일부를 제삼자가 하수급인으로서 맡는 것.
*간접고용=기업이 노동자를 필요로 하지만 노동자와 근로계약을 직접 체결하지 않고 타인에게 고용된 노동자를 이용하는 고용형태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