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일러스트 l 정선주 외부기자 web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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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외국인 학생이 강의 중에 물었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소중한 기회에 강의만이 아니라 한국 학생들과 더 많은 의견을 나누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 된다는 하소연도 덧붙였다.

그건 그 외국인 학생뿐 아니라 사실 내게도 고민이었던 점이다. 학기의 절반이 지났지만 토론과 질의응답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은 특정 지역 출신 외국인 학생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인 학생들에게 “반론의 기회를 주겠다”고 했지만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결국 한국 학생들의 입장까지도 외국인 학생들이 대신 유추하여 논의한 끝에 아쉽게 강의가 끝났다.

강의가 끝나고 며칠이 지나도록 외국인 학생의 질문이, 그리고 한국인 학생들의 침묵이 불편하게 마음에 남았다. 사실 나도 바로 얼마 전까지 ‘가만있으면 중간은 간다’고 믿는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 자리에 앉아있었어도 교수님과 눈 마주치지 않으려고 앞사람 뒤통수에만 집중하고 있었을 것이다.

본지에 기고 요청을 받으면서 교탁과 좌석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은 중간자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나는 수업 중에 질문을 많이 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궁금한 부분이 있어도 ‘수업에 방해가 되진 않을까’, ‘이게 좋은 질문인가?’ 고민하다가 질문을 삼킨 적이 많았다. ‘질문을 위한 질문’이나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학생들이 있으면 괜히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개인의 질문보다 수업 전체의 흐름이 더 중요하고, 네이버만 쳐봐도 알 수 있는 당연한 얘기보다 교수님 이야기를 한마디 더 듣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강단에 서면서 내 개인적인 선호와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다. 나 스스로를 포함한 학생 한 명 한 명을 보던 시선이 80명 전체를 보는 시선으로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열심히 하면 그만이었던 학생 때와는 달리 아무리 열심히 해도 닿지 않는 소위 말해 ‘멍 때리는’ 학생들이 늘 마음에 걸린다. 딴 짓 하고 있는 학생들과는 확실히 다른 얼굴이다. 내가 아주 잘 아는 그 얼굴은 바로 질문 삼키는 표정이다. 길을 잃은 것이 보이는데 아무리 물어도 질문을 안 하니 어디까지 돌아가야 할지 막막하다. 그 순진하고 착한 얼굴들이 안타깝다.

소그룹을 만들고 과제를 주고 학생들을 지명해서 여러 질문을 던지면 잠시 토론에 생기가 돈다. 그러나 곧 발표에 익숙한 몇몇의 목소리만 남는다. 발표에 익숙한 학생들은 ‘좋은 질문’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좋은 질문에는 보통 정해진 답들이 있다. 좋은 질문들은 분위기를 흐리지도 않고 교수를 당황하게 하지도 않으면서 수업의 흐름을 원활하게 한다. 그런 좋은 질문들을 통해서 나는 학생으로서도 교수로서도 많은 것을 배우지 못했다.

나의 짧은 경험과 이 짧은 글을 통해 학생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한 가지는 좋은 질문이 아니라 답이 없는 질문을 하려고 노력해보자는 것이다. 중간고사를 앞두고 개인적으로 많은 질문을 받았는데, 한국 학생들은 주로 사실을 확인하는 질문을 많이 했다면 외국 학생들은 ‘왜’ 사실이 그러한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했다. 후자의 질문들은 나도 잘 모르겠어서 같이 고민하자고 한 적이 많다. 중간고사 만점자의 대부분은 한국 학생들이었지만 나를 더 공부하게 하는 것은 외국 학생들이었다.

나는 우리 학생들이 다른 누군가처럼 되길 바란다거나 다른 나라 학생들과 비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에서 한 발짝 나아가기 위해서 다듬어지지 않은 질문을 던지는 연습을 제안하고 싶다. 대학 생활 동안 정말 ‘답 없는’ 질문 하나씩이라도 여러 사람 앞에서 당당히 해 볼 수 있길 바란다. 그렇게 남긴 질문들이 결국 새로운 정답을 발견하게 하고 곳곳에서 멍 때리는 수많은 영혼을 구할 거라는 책임감과 자신감을 갖고.

박가인 초빙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박가인 초빙교수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