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아빠는 무작정 수동필름카메라의 레버를 돌리고 급하게 사진을 찍어대는 나를 타일렀다. “필름카메라는 신중하게 아껴서 찍는 거야” 나는 삐죽거리며 뭘 또 아껴야 하는 거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여러 번 찍으러 다녀보고 말뜻을 이해했다. 정성, 시간, 돈, 이 세 가지가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필름을 주문하고 사진관에 직접 필름을 맡기러 가는 정성. 필름이 현상될 때까지 소요되는 시간.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필름 값과 현상 비용.

정성과 시간과 돈을 투자하면서 필름 사진을 찍는 이유는, 특유의 감성 때문이다. 수동카메라에 필름을 집어넣고 레버를 감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 들리는 ‘찰칵’ 소리가 감성적이다. 필름 한 롤 한 롤이 곧 돈이라는 생각에 함부로 찍지도 못한다. 햇빛이 얼마나 비치는지, 피사체의 위치는 적당한지, 셔터스피드와 조리개는 잘 조절했는지, 이런저런 고심 끝에 드디어 셔터를 조심스럽게 누른다. 웃긴 건 이렇게 열심히 찍고 나서도 사진이 예쁘게 나왔는지 바로 확인할 길이 없다는 점이다. 곧바로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은 답답하기도 하지만 좋은 점도 꽤 많다. 사진을 바로 확인할 수 있을 때,  나도 모르게 사진에 대한 평가를 하고 여러 사진을 두고 비교하기 시작한다. 앞뒤로 사진을 넘겨보며 예쁘지 않은 사진들은 삭제해 버린다. 사진이 기대한 모습대로 나오지 않은 순간부터는 집착하게 된다. 사진을 찍어주는 친구에게 “여기서 딱 이렇게 다시 찍어줘”라고 투덜거린다. 하지만 수동필름카메라를 쓸 때는 이런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는다. 맘에 든다.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게.

기다림의 설렘도 필름카메라를 사용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필름을 바로바로 사진관에 맡기는 게 귀찮아서 필름 롤이 여러 개 모였을 때 한꺼번에 맡긴다, 오랫동안 보관해둔 필름 중에서는 한 학기 전에 사용한 필름도, 몇 달 전쯤 친구들과 다녀온 여행에서 쓰던 필름도 있다. 어떤 사진이 나올지 궁금해하며 하루 이틀 기다리면, 디지털로 변환된 사진들이 메일함에 도착해 있다. 과거의 나로부터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느낌이 들고는 한다. 계절이 바뀌어 두꺼운 옷 정리를 하다가 주머니에서 잊어버리고 있던 지폐 몇 장을 발견한 기분이랄까. 컴퓨터로 파일을 다운받아 사진을 한 장씩 넘겨본다. 초점이 나가서 흐린 사진도 있고 빛 조절에 실패해 어둡게 나온 사진도 있다. 조금은 아깝고 아쉽게 느껴진다. 그런데도 어떻게 나오는지 모른 채 찍은 사진에는 자연스러운 매력과 이런저런 설렘이 담겨있다.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다 보니, 터치 한 번으로 소통부터 쇼핑까지 모두 끝낼 수 있는 스마트폰이 약간은 버겁게 느껴졌다. 너무도 쉽고 값싸며 편리한 나머지 ‘해서는 안 될 말’을 남발하고,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될 것’들을 마음껏 자랑하며,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더 많이 느끼고 있지는 않은가. 카톡 숫자 1이 사라진 순간부터 빨리 답장을 보내야 한다는 강박. 찍은 사진을 인스타에 올리는 것이 아닌, 인스타에 올리기 위해 사진을 찍는 사람들. 시시각각 피드를 내리며 남들은 뭐 하고 지내는지 궁금해하는 나.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처럼, 조금은 더 여유롭게 기다리면서 살아봐야지 하는 다짐을 한다. 부쩍 ‘나’의 삶과 지금 ‘이’ 순간에만 초점을 맞춰 사진을 찍고 싶은 요즈음이다.  

박채연(아동18)
박채연(아동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