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자, 약 드세요. 의사가 시계를 보며 말한다. 약을 삼킨다. 물까지 다 드셔야 해요. 입 벌려보세요. 아-. 혀 밑도. 그리고 정해진 시간마다 채혈이 있고, 정해진 시간에 도시락을 먹는다. 조금 식어도 먹을 만하다. 피를 많이 뽑아서 그런지 조금 어지럽다. 병동 안의 병상에는 나와 비슷한 표정을 한 사람들이 빼곡하다.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 들어본 사람도 있을 터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임상시험과는 조금 다르다. 생동성 시험은 이미 시판된 약의 카피본이 원본과 생물학적으로 동등한 약효를 가진지를 시험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신약을 테스트하는 임상시험에 비해 훨씬 안전하다, 라고 주관하는 의사에게 들은 바 있다. 나도 그 시험에 참여해봤다는 말이다.

당연히 돈이 목적이었다. 그래서 자괴감은 더 컸다. 나, 지금 밑바닥으로 떨어져 버린 게 아닌가. 내 신체를 실험의 대상으로 팔다니, 내 신체는 이미 상품화된 것인가. 내가 가진 윤리와 가치관으로 이런 행위를 견딜 수 있을 것인가. 내 삶은 언제 이렇게까지 망가졌나. 일신상의 이유로 급하게 큰돈이 필요했던 터라, 이런 자학의 와중에도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스크리닝 검사라고 해서, 신체 건강한 시험 대상자인지 선별을 한다. 그리고 주관 의사가 시험 일정과 부작용에 관해서 설명하는데, 솔직히 무슨 말인지는 잘 몰랐다. 이것저것 부작용을 열거하는데, 시판되는 감기약도 설명서 읽어보면 이 정도 된다고 쫄지 말라 그랬다. 그래, 별일 없겠지. 제약회사가 알아서 보험도 들어놨다니까. 그리고 여긴 큰 병원이니까.

제 이야기를 한번 해 볼게요. 이런저런 설명이 끝나자 의사가 사무적인 어투에서 일변해 부드럽게 말문을 뗐다. 요지는 이랬다. 대학 다닐 때 어려웠던 친구가 있었는데, 지금은 잘 산다. 얼마 전에 함께 길을 가다 그 친구가 한 빌딩을 가리키며 저거 내가 지었어, 라고 운을 뗐단다. 뭔 말인가 하니, 스무 살 때 속칭 노가다 판을 뛰면서 저기 벽돌을 날랐단다.

이 시험도 다르지 않다고 말을 했다. 여러분이 이 시험에 참여하는 것이, 그 약이 필요한 사람들이 더 값싸게 약을 살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거라고. 제약회사 돈만 불리는 게 아니라, 그 약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일이라고. 그렇게 좋은 미래를 위해 벽돌 하나를 날랐다고 후에 이야기했으면 좋겠다고. 와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라도 생각하면 시험 일정 중의 과정을 너무 괴롭게 여기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닐까, 라고 말했다. 마치 괴로운 마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시험은 별것 없었다. 2박 3일 입원 일정이 두 번, 중간중간 외래 방문이 여섯 번. 경구로 약 투여하고, 시간에 맞춰서 채혈한다. 병원에서 며칠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공부할 거리를 챙겨가서, 나름대로 알차게 시간을 보냈던 듯하다. 일정이 끝나고 삽관했던 카케터를 뽑자 구멍 같은 상처가 남았다. 그리고 몇 주 뒤에 내 통장에는 위험수당인지, 노동량에 비해 조금 과하다 싶은 돈이 꽂혔다. 나도 벽돌을 하나 쌓은 걸까.

정신승리라는 것은 안다. 결국 돈이 중요한 거 아니었냐는 자문도 한다. 그런데 돈‘만’ 받은 건 아니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몇 달이 지났지만, 아직 그 약의 이름을 기억한다. 팔에 난 구멍은 다 아물었지만, 효능도 대충은 기억난다. 언젠가 그 약의 이름을 듣게 되는 날이 오면, 그리고 그 약이 필요했던 사람을 알게 되면, 뿌듯하게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도 벽돌을 하나 날랐다고.

대학생이라고 다 나처럼 사는 건 아닐 터다. 그냥 드는 생각이다. 사는 게 별것 없다고. 이유 몇 마디 붙이면 이렇게 저렇게 대충 견뎌진다. 그렇게 안 견뎌지는 일이라면 어쩔 수 없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어쨌거나 아직까지는 괜찮게 살아지는 듯하다.

 
김진정(국문  15)
김진정(국문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