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어렸을 적엔 유난스레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없는 총총한 삶을 살았다. 기껏해야 도라에몽을 좋아했고, 나란히 앉아 우유를 마시곤 하던 단짝을 좋아했고, 오디세우스의 여정이 어떻게 끝났는지 두 손 모아 기다리던 만화책을 좋아했다. 그리고 깨물면 이렇게 눅눅할 수가 없는 가지무침을 싫어했고, 아이스크림을 사 먹기엔 모자랐던 주머니 속 동전과, (많은 사람이 그럴 테고 그럴 것인) 엄마의 잔소리를 싫어했다. 다분히 어렸던 취향이었지만 내가 사는 데에 방해가 됐던 것은 아니다. 누군가 그것에 대해 논박하면 나는 생각을 쉽게 바꿨다. 예를 들어 한번 가지볶음을 먹어보라는 웃어른의 말씀에, 생각보다는 꽤 먹을 만하다는 것을 깨닫고야 말았던 것이다. 결국 가지의 안티시아닌을 섭취할 수 있게 됐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결과다. 조금 더 자람과 더불어 내가 모르는 세계는 야금야금 칠을 벗어냈다. 그동안 참 많이 먹고 배우고 놀았던 탓이다. 

이제는 어떤 일을 판단하는 데에 경험과 느낌이 앞선다. 예전에 겪었던 쓰디쓴 아픔과 무력한 슬픔과 쓸 만한 기쁨이 비눗방울처럼 터진다. 완고한 편견은 고수를 넣은 쌀국수를 먹은 것인지와, 처음 보는 저 사람이 나와 평생 우정을 나눌 수 있을 것인지를 고심하게 한다. 아직까지도 그 튼튼한 장벽을 깨지 못해서 고수의 진정한 맛은 느끼지 못하겠다. 그러나 사람과 가까워지는 것은 다르다. 강가를 걷다가, 혹은 지하철역에서 나오다가 밤하늘을 보면 빛나는 별 몇 개를 찾을 수 있다. 그렇다고 넓은 우주에 별 몇 개만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총총한 삶 속에서도 아직 조우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마음씨는 70억 인구만큼이나 다양해서 처음엔 실망스럽다가도 감동적이고, 따뜻하고, 깊숙이 기대고 싶어진다. 드문드문 만나는 게 권장되는 시대에도 사람의 온기를 느끼는 일은 제법 간단하다. 카카오톡으로 전해지는 안부 한 마디나, 택배로 도착한 기대하지도 않았던 선물이나 줌으로 접하는 응원의 이야기. 오랜만에 네 생각이 나서 연락해. 아직까지도 겨울인데 건강은 잘 유의하고 있니? 새로운 학기에도 힘내, 항상 네가 잘되기를 바라. 

말 그대로 아직은 겨울이다. 회백색의 나무와 가끔 내리곤 하는 눈이 앞으로도 모두가 계속 집에서 휴식을 취하기를 권장하는 듯하다. 추위 때문이든 지긋지긋한 바이러스 때문이든 오래 집에서 머무는 동안 내밀하게 간직해오던 취향이 더 견고해졌다. 억지로 그것의 틀을 깨부수고 무작정 새로움만 추구하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 예전보다 덜 말랑말랑하게 무언가에 감화될지언정, 예전보다는 덜 아프거나 고될 수 있을 것이다. 더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고, 에너지를 불필요하게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나라는 인간이 존재하기도 한다. 

오늘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제는 어땠고, 내일은 어떠할까? 차곡차곡 쌓이는 시간 가운데 설렘은 미약하게만 느껴지지만, 숨 쉬고 있다.

박민주
박민주(국문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