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손민정 기자 (0614smj@skkuw.com)

흔히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들 한다. 역사의 테두리나 민족의 정의 따위의 복잡한 문제를 차치해버리면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 자신뿐이라면 어떨까? 내가 역사를 잊은 것이 아니라, 강제로 역사가 잊혔다면? 어느 순간 내가 아는 역사가 바뀌어 있다면? 터무니없는 말처럼 느껴지지만, 꼭 허무맹랑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동아시아의 역사분쟁』은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 줄여서 ‘동북공정’으로 알려진 중국의 역사 연구 프로젝트가 끝난 해에 집필됐다. 이 책은 한창 동북공정으로 역사 왜곡 문제가 불거진 시기, 동북공정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다양한 역사 논란과 그 관점들에 대해 필자 나름의 의견을 더해 정리한 책이다. 대학 교양 강의 교재로 쓰여서인지 동아시아의 역사분쟁이 다양한 자료와 함께 설명돼 이에 대해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돕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다양한 역사에 대한 의식은 역사라는 학문을 누가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상대를 찌르는 칼이 되고 또 방패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는 제법 방패를 단단히 들고 실제로 누군가를 찌르기도 했지만, 제법 많이 찔렸다. 찔린 곳이 억울하고 역사가 역사로서 다뤄지지 않는 상황이 안타까워도 우리는 이미 역사는 역사로서만 존재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동북공정이 끝나고 무려 14년 뒤인 2021년. 언론에서는 또다시 무려 14년 전에 이미 종료된 프로젝트를 다시금 떠들썩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과거의 동북공정이 여기저기서 재조명되고 죽은 줄 알았던 동북공정이라는 단어는 대명사화 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쉴 새 없이 터지는 사건들이 꽤 혼란스럽다. 인터넷상에서는 부채춤을 중국의 스트리트 댄스로 소개하며 춤추는 중국 그룹 영상이 떠돌고, 미국의 한 모바일 게임은 갓이 중국의 전통 복식이라며 갓을 본뜬 게임 아이템을 중국의 것으로 소개한다. 최근 샤오미는 한복을 입은 배경화면 일러스트를 중국의 문화라며 업로드하고 뒤늦게 사과문을 게시하기도 했다. 더는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전쟁을 하지 않는 시대, 새로운 전쟁이 전 세계를 덮은 그물망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역사라는 학문은, 아니 역사의 탈을 쓴 이름 모를 것은 이제 훨씬 화려하고 새로운 포장을 입고 자본을 등에 업은 채 그물망에서 펄떡이고 있다. 

이렇듯 교묘한 여러 시도 속에서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이에 대한 우리의 대처다. 우리는 우리보다 훨씬 거대한 물살 앞에서 어떻게 헤엄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 또한 그들보다 더욱더 화려하고 더욱더 새로운 포장으로 모두를 놀라게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마음만 먹는다면 누구보다 노련한 손놀림으로 수많은 이를 끌어당길 매력적인 포장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쨌거나, 가장 익숙한 건 우리니 말이다.

손민정 부편집장0614smj@skkuw.com
손민정 부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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