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지방 인구 흡수해 점차 확장되는 서울 공화국

언론과 정책 등 다양한 영역에 걸친 균형발전 필요해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는 옛 속담이 있다. 말은 말의 고장인 제주도에서 기르고, 사람은 어릴 때부터 서울로 보내 공부를 시켜야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서울을 정치·경제·문화·교육 등의 중심지로 여기고 선호하는 현상은 예로부터 있었다. 이는 오늘날 모든 인프라가 서울로 과도하게 쏠리는 ‘서울 공화국 현상’이 돼 사회에 깊게 뿌리를 내렸다. 서울 공화국 현상은 어떻게 나타나는지 알아보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논해본다.

대한민국이 아닌 서울 공화국
국립국어원의 개방형 국어사전 우리말샘은 서울 공화국을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따위의 모든 부분이 서울에 과도하게 집중된 현상을 비꼬아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한다. 사전에도 등재된 오늘날의 서울 공화국 현상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장호순 교수는 “일제 식민지배와 군사독재 경제개발을 거치며 축적된 서울과 지방의 불균형 구조가 아직까지도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을 중심으로 형성된 정치ㆍ경제 시스템이 권력 집중을 낳았고, 발전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우선으로 개발하는 국가 정책이 수도권 집중 개발을 야기했다.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마강래 교수는 산업구조의 변동이 인구와 자본의 수도권 쏠림 현상을 발생시킨다고 지적했다. 마 교수는 “과거 조선철강 등 구 산업이 우리나라 경제를 크게 견인하며 △군산 △마산 △창원 등 지방에 위치한 산업도시가 함께 성장했지만, 4차 산업혁명 이후 산업구조가 첨단산업 중심으로 변화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주환경이 좋고 광역 교통 접근성이 높은 지역을 선호하는 것이 전 세계 첨단산업의 기조”라며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을 중심으로 첨단산업과 일자리가 모이다 보니 자연스레 기존의 산업도시가 쇠퇴하고 수도권으로의 쏠림 현상이 발생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공화국, 이렇게 나타난다
실제로 수도권의 경제 규모는 상당한 수준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총 *GRDP 1923조 9774억 2천만 원 중 수도권의 GRDP는 1001조 3845억 6백만 원으로 전체의 약 52%를 차지했다. 이는 많은 일자리가 수도권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KBS ‘시사기획 창’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우리나라 1000대 기업 중 수도권에 본사를 둔 기업은 74%에 달했다. 스타트업도 예외는 아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2019년 기준 10억 원 이상 투자받은 스타트업 중 80.2%가 서울에 위치했으며, 수도권으로 범위를 넓힐 경우 93.2%에 달했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한 수도권으로의 인구이동도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우리나라의 총인구는 5170만 5905명으로, 이 중 수도권에 거주하는 인구는 전체의 약 50.2%인 2600만 782명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처음으로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를 추월하기도 했다. 마 교수는 “국토의 12%밖에 되지 않는 수도권에 50%가 넘는 인구가 몰려 있다”며 “2035년 정도가 되면 지방소멸 문제가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했다.

교통 인프라 역시 수도권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대중교통은 물론이고 교통약자를 위한 이동수단도 서울이 훨씬 발달했다. 특히 교통약자의 편의를 위해 도입된 저상버스의 경우 서울 대비 지방의 도입률이 현저히 낮다. 서울에서 2003년부터 저상버스를 운영한 데 비해 강원도 횡성군은 지난해 처음으로 저상버스가 도입됐다. 강원도에서 저상버스를 아직 운행하지 않는 기초지자체도 12곳에 달한다. 장애인 콜택시 역시 서울은 677대가 운행 중인 반면 경북 125대, 전남 177대 등으로 서울의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구 출신 위유진(국문 19) 학우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입장에서 교통수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며 “서울은 장애인 콜택시 차량 숫자가 훨씬 많고 카카오톡으로 실시간 위치정보도 확인할 수 있는 등 시스템이 잘 갖춰졌다”고 덧붙였다. 

문화 인프라도 수도권, 특히 서울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서울에 있는 1000석 이상 규모의 대극장은 민간 극장과 대형 체육관 등을 포함해 총 32곳이다. 그러나 지방으로 갈수록 민간보다는 지자체별로 설립한 문예회관이나 공공 문화시설 등이 다수를 차지한다. 예술 분야의 특별전이나 기획전시 상당수 또한 서울에 한정돼 열린다. 지방에 위치한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지역색을 살린 상설전시를 진행하지만 이는 주로 역사 유적이나 지역 특산품에 초점을 맞춘 경우가 대다수다. 이처럼 거주 지역에 따라 문화의 향유 정도에 큰 차이가 발생한다. 강원 양구 출신 임자경(철학 17) 학우는 “뮤지컬이나 콘서트 등을 찾아볼 때 인프라의 부재를 크게 느꼈다”며 “문화적 접근성이 낮아 서울로 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장 교수는 “문화나 미디어 등의 영역에서는 수도권 집중 현상이 훨씬 더 심하다”고 말했다. 기존의 문화적 환경이나 종사자들이 이미 수도권에 주로 분포해 지역으로 다시 분산시키기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문화ㆍ예술뿐만 아니라 편의시설에 대한 접근성 문제도 서울 공화국 현상의 단면 중 하나다. *배후인구를 최소 10만 명 이상 필요로 하는 것으로 알려진 스타벅스의 경우 우리 학교 주변에만 5개 지점이 영업 중이다. 반면 행정안전부에서 발표한 ‘2021년 인구통계’상 인구 4만 명대를 기록한 전남 보성의 경우 스타벅스 매장이 전무하다. 마 교수는 “인구가 줄어들면 수익을 낼 수 없어 인프라가 축소되고 이로 인해 다시금 인구가 대도시나 수도권으로 유출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미디어와 언론이 부추기는 서울 공화국 현상
서울 공화국 현상은 미디어와 언론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연재해나 사건사고가 발생해도 발생지역이 비수도권일 경우 언론 보도는 크게 감소한다. 실제로 2019년 4월에 발생했던 ‘강원 대형 산불 사건’ 당시, 지상파 방송사의 재난방송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방송통신발전 기본법에 따르면 KBS는 국가재난주관방송사로서 재난방송을 통해 재난의 △구조 △대피 △복구 등에 필요한 정보를 정확하고 신속하게 제공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KBS는 산불이 발생한 지 4시간이 지나서야 재난 관련 특보를 방송하기 시작했다. 또한 재난 특보의 수어 통역을 지원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단순 현장 상황 송출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강원 고성 출신 이장원(정외 15) 학우는 “당시 지상파 보도가 늦어 종합편성채널의 뉴스 속보로 화재 소식을 먼저 접했다”고 전했다. 장 교수는 “우리나라는 미디어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큰 편으로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대부분의 언론과 미디어가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의제 설정에 있어 지방이 배제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 공화국이 야기하는 문제점
쇠퇴한 지방 중소도시가 정부 예산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다는 점에서 지방 소멸은 심각한 문제다. 이에 대해 마 교수는 “인구가 빠져나갈수록 비수도권의 중소도시는 점차 쇠퇴하게 되지만, 국민들이 사는 한 정부는 재생사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어 예산을 점점 더 많이 투입하게 된다”고 전했다. 배후인구가 감소하면 상하수도나 문화시설 등의 인프라 효율성 역시 줄어든다. 또한 시설을 사용하는 인구가 적은 만큼 개인이 부담하는 사회적 유지비용이 상승한다는 문제가 있다. 마 교수는 “인구가 많은 수도권 역시 인프라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며 “비수도권과 수도권 모두에 예산이 다량 투입돼 큰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2040년에는 우리나라 기초지자체의 30%가 파산 위기에 이를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비수도권 지역의 국민들은 비교적 낮은 수준의 인프라로 인해 불편을 겪기도 한다. 도시 환경은 인구에 맞춰 계획되기 때문에 비수도권의 인프라는 수도권에 비해 낮은 수준일 수밖에 없다. 특히 많은 배후인구를 필요로 하지만 수익성이 높지 않은 의료나 교통 분야에서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적자로 폐업한 진주의료원 역시 인프라 부재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위 학우는 “대구 역시 광역시이기 때문에 인프라의 부재를 크게 느낀 적은 없다”면서도 “교통이나 문화 측면에서 서울의 시스템이 더 발달한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교통 분야에서도 광역교통수단인 KTX의 6개 노선은 주로 서울과 지방 연결의 편의를 고려해 설치돼 있어 지방끼리의 직접적인 연결성은 낮다. 장 교수는 “비수도권에서는 교통성이 좋은 지역의 기준을 서울과의 연결 정도로 정의하는 경우가 많다”며 “인프라가 모두 서울에 몰려 있어 지역의 판단 기준 역시 서울에 맞춰 결정되는 것 또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울 공화국,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
장 교수는 이러한 수도권 쏠림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미디어의 지방분권을 강조했다. 그는 “KBS는 수신료의 80%를 지방에서 거두고 있지만 방송 프로그램의 90% 이상을 서울에서 만들고 있다”며 “미디어 권력 구조에 다양한 지방의 사람들이 관여할 수 있어야 미디어가 지방의 여론을 대변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미디어가 유권자의 지역주의 투표 성향을 강화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선거철에 미디어가 각 후보를 소개할 때 가장 먼저 출신 지역을 설명하는 것이 그 예다. 장 교수는 “지역주의가 사라져야 수도권에 치우친 각종 경제ㆍ사회적 혜택을 비수도권에 분산시키는 정책이 등장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 교수는 해결책으로 지방의 대도시권을 형성하기 위한 압축도시 모형을 제시했다. 압축도시 모형이란 원도심 쇠퇴와 인구 분산의 원인이 되는 도시 외곽의 개발을 억제하고, 기존의 원도심을 중심으로 거주지역과 도시지역을 함께 압축한 지방 대도시권을 형성하는 것이다. 마 교수는 “장기적 관점에서 모든 도시는 서울에 인구를 빼앗길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인구 감소에 대한 도시 계획이 가능하다”며 “광역시를 중심으로 대도시권을 형성하되 지역의 특색을 살린 지역 맞춤형 도시재생을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행정구역 통합이나 메가시티 형성 등 다양한 방법을 고려하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부 주도 지역 균형발전 정책이 나아가야 할 길
역대 정권에서도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다양한 정책적 시도를 해온 바 있다. 균형발전을 제도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은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됐다. 국가균형발전 특별법을 제정하고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발족하는 등 균형발전을 처음으로 논의했다.

이러한 노력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20일, ‘국가균형발전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개정안에는 인구 감소로 소멸이 우려되는 지방 도시를 인구감소지역으로 설정하고 해당 지역의 지원 정책을 국가균형발전 계획에 포함하는 내용이 담겼다. 현 정부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주요 국정 과제로 삼아 전국의 낙후지역 500곳에 5년간 총 50조 원을 투자하는 대대적인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균형발전이 논의된 지 20년이 되어가는 오늘날에도 균형발전 논의는 과거보다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장 교수는 이에 대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다 같이 더불어 살자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며 “이권을 두고 경쟁하는 데 그치지 말고 장기적인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고 전했다. 마 교수는 “옛날에는 도시에 기업을 유치하고 일자리를 만들면 사람들이 따라가며 도시가 발전했지만, 지금은 인구가 많은 곳에 공공·교육·문화·상업 기능 등이 모이고 있다”며 “모든 지역을 살리기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통한 도시 활성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글/박다솜 기자 manycotton@skkuw.com, 손재원 기자 magandsloth@skkuw.com

◆정주환경=인간이 정주해 살아가고 있는 지역의 주거지와 그 주변 생활 환경.
◆GRDP=각 시ㆍ도내에서 경제 활동별로 부가가치의 발생 정도를 나타내는 경제지표.
◆배후인구=재화나 서비스 등에 대한 수요가 있는 잠재적 소비 인구.
 

인구가 많을수록 지역의 크기가 커지는 지도. 수도권의 크기가 국토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인구가 많을수록 지역의 크기가 커지는 지도. 수도권의 크기가 국토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WorldMapper,2012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