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일러스트 I 김지우 기자 web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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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수사원’은 ‘음수사원, 굴정지인(飮水思源, 掘井之人)’에서 온 말로 ‘물을 마실 때 그 물의 근원을 생각하고 우물을 판 사람을 생각하며 마셔야 한다’는 뜻으로 모든 일의 근원을 잊지 말자는 의미이다.(When one drinks water, one must not forget where it comes from) 

작년 8월 정년퇴임 후 올 3월 모교 교장으로 부임하였다. 모교 교장으로 부임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대학과 달리 모든 일이 조심스럽다. 그리고 아직 미성숙한 학생을 훌륭한 품성을 지닌 인재로 양성해야 하는 책임감이 어깨를 무겁게 누른다. 얼마 전 성적우수자를 격려하는 자리에서 “물론 빼어난 성적을 받은 것이 여러분이 밤잠을 줄여가며 학업에 매진한 결과니 축하받아 마땅한 일이긴 하나, 지금의 성취가 오로지 나만의 노력과 잘남으로 이루어졌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오만에 빠지게 됩니다. 오만한 사람은 자신은 호의호식할 수는 있겠지만 결코 우리 사회의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지금 이룬 나의 성취는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돌보아주신 부모님과 좋은 수업을 해주신 선생님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감사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겸손함이며 이런 겸손한 리더십을 지닌 사람이 우리 사회에 선(善)한 영향력을 미치는 진정한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성취는 나의 뛰어남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겸허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모든 일은 출발과 근원이 있으며 그 일을 가능하게 한 동인(動因)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의 성취를 누리면서 그것에 도취 되어 감사함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오래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우리 대통령에게 ‘음수사원’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중국이 상해 임시정부에 도움을 준 것을 생각하고 지금은 자기편을 들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미였다고 한다. 음수사원은 은혜를 받은 사람이 할 말이지 은혜를 베푼 사람이 하는 것은 어색하다. “예전에 도움 받은 걸 잊고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라는 것이니 참으로 뻔뻔하고 듣기에도 민망하고 딱하다.

우리 대학 600주년 기념관 앞에 <학봉(學峰) 이석구(李錫九)선생 기념비>가 있다. 구석진 곳에 있어 잘 보이지도 않고 우리 대학 누구도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다. 이석구 선생(1880∼1956)은 충남 보령 태생으로 평생 모은 막대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분이다. 고향에서 가뭄 때문에 모든 사람이 고통 속에 지낸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은 돈을 보내준 일화도 전한다. 따뜻한 공감 능력을 지닌 분이다. 그리고 재정난에 빠진 동덕여대 초창기에 거금을 희사한 동덕여대의 진정한 설립자이기도 하다. 1945년 11월 명륜당에서 전국 유림대표자 회의가 열려 조선 성균관의 전통을 이을 근대 대학 설립을 위한 기성회를 조직하기로 하였다. 기성회 위원장은 심산 김창숙 선생이셨다. 이때 이석구 선생은 장학재단으로 운영하던 학린사(學隣舍) 소유의 막대한 토지(53만 평) 전부를 희사하여 기성회 결성에 결정적인 초석을 놓았다. 기성회 결성 후 1946년 9월 25일 교육부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아 오늘의 성균관대학교가 출발하게 된 것이다. 그날이 바로 개교기념일이다. 이석구 선생의 통 큰 후원이 없었다면 우리 대학의 출발이 가능했을지 모를 일이다. 우리 대학으로서는 이석구 선생의 민족교육에 대한 열정과 후원에 진심으로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누구도 이석구 선생의 존재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안내판 하나 없이 초라하게 서 있는 기념비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착잡하기만 하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학봉 이석구 선생 기념비>에 안내판을 세워 추모의 뜻을 표하고 후손께도 상응하는 예우를 해드려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마땅한 도리이다. ‘음수사원’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일이다. 
 

이명학 명예교수 한문교육과 중동고등학교 교장
이명학 명예교수
한문교육과
중동고등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