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요즘 고민이 생겼다. 싫어하는 것은 누구에게, 얼마만큼 밝혀도 되는 걸까? 사람을 제외한 대상이라면, 나는 어디까지 표현해도 되는 걸까? 

싫어하는 것에 관한 얘기는 사실 나도 엄청나게 말하고 싶은 주제는 아니기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먼저 밝혀본다. 나는 웹툰 읽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맛있는 케이크를 좋아하고, 예쁜 가방을 좋아한다. 나는 칵테일을 이것저것 마셔보는 것을 좋아하고, 적당히 어두운 곳에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도 좋아한다. 가끔 엘피플레이어를 이용해 노래 듣는 것을 좋아하고, 따뜻함이 있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좋아한다. 산책을 시작할 때 느끼는 시원함도 좋고, 오래 걸어서 살짝 열기가 올라온 상태의 뿌듯함도 좋다. 좋아하는 것을 말하려면 이 글을 조금 더 오랫동안 써야 할 것 같다. 좋아하는 것들에는 이유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한순간에 끌리는 대상이 있기도 하고, 오랜 시간 정이 들어 좋아지는 일도 있다. 좋아하는 것들을 꽤 많이 적었는데, 사실 싫어하는 것을 적으려고 하면 더 많이, 더 상세하게 적을지도 모른다.

같은 걸 좋아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정말 즐겁고,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같은 걸 좋아하는 것보다 더 강력한 동질감과 유대감을 느끼게 하는 상황은 같은 걸 싫어할 때이다. 공통으로 싫어하는 대상을 발견하면 대화는 더욱더 흥미진진해지고, 대화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어쨌든 한 가지 대상을 같이 좋아하거나, 같이 싫어하는 것은 활기차게 이야기가 오갈 수 있는 긍정적인 상황이다. 만약 한 가지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정반대라면 그것은 굉장히 고민스럽고 복잡한 상황이 된다. 나는 지금까지 그런 주제가 등장했을 때 웃음으로 대화를 마무리하거나, 화제를 돌려 이야기를 피하곤 했다. 그렇게 대처하는 게 맞는 것 같다가도, 뒤늦게 문득 찝찝함이 찾아온다. ‘아까 그 상대방이 정말 친한 친구라면, 싫어한다는 것도 조금 더 명확하게 말했어야 하는 걸까?’, ‘내가 아까 제대로 싫은 티를 냈어야 다음에 또 이런 상황이 안 생기는 거 아닐까?’, ‘첨예한 논쟁은 피하면서도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방법은 없을까?’ 등등 수많은 의문점이 생겨난다.

앞서 얘기했던 좋아하는 이유의 여부와 달리, 싫어하는 데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유는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그래서 내 생각을 얼마나 자유롭게 표현해도 되는가이다. 싫어하는 것을 밝히는 데에는 어떤 목적이 있을까. 단지 나에 대해 알리고 싶은 마음, 내 의견에 공감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 대상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를 바라는 마음 등이 떠오른다. 이렇게 글로 써보니 글의 첫 부분에 했던 질문에 어느 정도 답할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싫어하는 대상에 대해 알리고 싶은 사람에게, 이해 가능한 이유와 함께, 최대한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것을 기준 삼는 것이 좋겠다.

남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하는 것이 비난, 현상이나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밝히거나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것이 비판이라고 한다. 내 비판이 비난이 되지 않게 주의하면서 건강한 비판을 해야겠다. 하지만 역시 비판보다 더 즐거운 것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자랑과 홍보라는 것도 잊지 말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고루 발견하고자 해야겠다. 모두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명확히 알아가기를 바라며, 그것들을 건강하게 표현하기를 바라며 글을 마무리한다.

 

강유미
(독문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