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서현 기자 (8forgerrard@naver.com)

또다시 펜이 부러졌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몰라...'하고 중얼거린다.
펜을 특이하게 쥐는 나는 글을 쓰다 종종 뚝- 하고 플라스틱 펜을 부러뜨린다.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가는 탓이다. 못쓰게 된 펜을 보니 속이 쓰리다. 그러나 이내 은근한 자부심마저 든다.
'글 쓰다 펜이 부러지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걸.'
부러진 펜은 버리지 않고 필통에 모아둔다. 펜들의 무덤이다.

"서현아, 넌 힘을 좀 빼야 돼."
생각이 많던 나에게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은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생 별거 없다고, 너무 끙끙대며 살면 부러지기 마련이라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수년이 흐른 지금도 나는 별반 다르지 않다. 거창한 꿈을 꾸며 나의 행동에 온갖 의미를 부여한다. 수습기자가 되어 부서배치를 할 때에도 그랬다.
"기자가 되어 세상을 바꾸고 싶습니다."
약간의 허세, 그보단 그것 외에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렇게 본격적인 수습기자 생활이 시작됐다. 나는 잔뜩 힘을 주었다.

나는 또다시 부러질 것인가? 혹은 부러지지 않기 위해 꿈을 내려놓을 것인가.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잠시, 나는 그 꿈에 대해 생각한다. 다양한 의견이 존중받는 공론장으로서의 대학. 사람을 위하는 정치. 누군가의 탐욕에 의해 노동자가 죽지 않고, 누군가의 절박한 외침이 조롱거리가 되지 않는 사회. 나는 여전히 그런 꿈을 꾼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기 일을 해내는 언론을 생각한다. 진실을 좇고 약자를 대변하는 언론. 그럼으로써 실현하는 민주적 권력... 나는 원대한 꿈속에서 허우적댄다.

그러나 결코 부러지지 않으리라. 수습기자로 시작해 준정기자가 된 지금까지, 나는 그 꿈에 다가서는 법을 배우고 있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문건이란 무엇이고 취재는 어떻게 하는지를 배운다. 회의에 참여해 피드백을 받고 때로는 용기를 내 의견을 제시한다. 그렇게 나는 이 과정을 조금은 사랑하게 되었다. 앞으로 수많은 흔들림이 있을 테지만, 그 흔들림마저도 사랑해야지. 느낌이 좋다. 비슷한 듯 다른 꿈을 품고 이곳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라면 우린 뭐라도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 아니, 뭐든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부러지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