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혜리 기자 (hyeeeeeli@gmail.com)

비대면 시대 이후 학내 온라인 공간 주목도 상승
다양한 환경의 공론장 상상할 수 있어야

 

'안녕들하십니까'로 시작하는 대자보가 처음 붙은 지도 9년이 지났다. 지금의 대학에서는 대자보는 물론이고 토론할 수 있는 공간도 쉽게 떠올릴 수 없다. 우리에게는 학내 사안부터 학외 사안까지 여러 주제에 대해 자유롭고 건강하게 토론할 곳이 필요하다. 오프라인 개강을 앞둔 지금, 대학 내 공론장의 실태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논해본다.


기존의 공론장, 
일반 학생들의 접근 어려워 한계

 어떤 사안에 대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거나, 구성원들과 의논하고 싶을 때 흔히 ‘공론화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공론화가 일어나는 ‘공론장’은 어떤 곳일까? 공론장이란 사회 구성원 간의 합리적 토론을 통해 구성원의 보편적 이익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담론적 공간이다. 공론장의 형성과 활성화가 중요한 이유는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정치 활동 영역을 확장하고,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대학의 구성원들은 어떤 공론장을 마주하고 있을까? 대표적으로 우리 학교 총학생회칙에 등장하는 △전체학생대표자회의 △중앙운영위원회 △확대운영위원회의 등이 있다. 학생 대표자들을 주축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아니더라도 학교 차원에서 개최하는 공청회 또한 공론장에 해당한다. 2019년 학생·교원·교직원을 대상으로 열렸던 ‘도전학기제’ 공청회가 대표적이다.

 다만 이런 공론장의 경우 현실적으로 일반 학생들의 접근성이 떨어지고, 학생들이 체감하는 문제가 모두 안건화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학생 대표자들은 이 간극을 최소화하고 공론화에 선행해 여론 지형 파악을 위한 방법을 마련한다. 제54대 인사캠 총학생회 Spring 장필규(영상 17) 회장은 “학우들의 의견을 다양한 경로로 습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온라인 설문조사는 물론 학우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의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전했다.


온·오프라인 공간의 상호작용과 
온라인 공간의 중요성 증가해

 온라인 공간도 공론장이 될 수 있다. 대학생들이 사용하는 온라인 공간은 △대나무숲 △대학 커뮤니티(스꾸터·고파스·이화이언 등) △에브리타임(이하 에타) 등이 있다. 온라인 공간은 접근이 간편하며 주로 학생들이 체감하는 학내문제나 사회문제에 대한 공론화가 이뤄지는 곳이다. 우리 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이재국 교수는 “온라인 공간은 주목받기 힘든 소수의 의견이나 쉽게 알기 힘든 현장의 문제를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이를 통해 기존 공론장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공간에서 공론화된 의견은 오프라인 공간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그 힘을 키워간다. 연세대 사회학과 강정한 교수는 대학 내 온·오프라인 공간에서의 활발한 상호작용이 가능한 이유에 대해 “청년 세대는 온라인 환경에 친숙하며 팬덤 문화 등을 통해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나아가는 형태의 사회참여 경험과 정치적 효능감을 느낀 적이 많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이후에도 이러한 경향은 계속됐다. 2020년, 대학의 수업이 전면 비대면으로 전환되며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이하 전대넷)는 ‘대학가 대책 마련 및 등록금반환’을 의제로 다양한 활동을 기획했다. 전대넷 이민지 의장은 “온라인 상으로 대학 커뮤니티와 기사 등을 지속해서 모니터링했고 대규모 설문조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그는 “수는 적지만 학생들을 만나 의견을 듣고 설문조사도 독려하는 등 오프라인 활동도 계속 이어갔다”며 대학생들의 여론 확인을 위해 온·오프라인을 모두 활용했음을 밝혔다.


사실상 유일한 온라인 공론장, 
에브리타임

 지난해 발표된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연령별로 살펴보는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 행태’에 따르면 에타는 대학에 재학 중인 20대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커뮤니티 서비스다. 대학생들은 에타가 이미 공론장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유민(국문 18)학우는 “공론장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최대한 많은 구성원이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에타만큼 다수의 사람이 참여하는 곳은 아직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통계학과 A 학우는 “2018년 총여학생회 이슈나 작년 말의 소프트웨어융합대학 논란 등은 모두 에타를 통해 알았다”며 “에타가 없었다면 공론화되지 않는 문제들도 많았을 것 같다”고 전했다. 에타에서 공론화된 내용은 실제 학생회의의 안건으로 올라가기도 한다. 한편 장애인 이동권 시위나 대선, 우크라이나 사태 등 학내 사안이 아닌 사회 현안에 대한 토론의 장이 형성되기도 한다.

 에타는 익명을 사용해 형식이나 절차에 구속받지 않고 편하게 의견을 나눌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인증을 거쳐야만 활동할 수 있어 원칙상으로는 커뮤니티 이용자가 모두 같은 학교 재학생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이용자들이 소속감을 느낄 수 있고 일종의 폐쇄성을 가진다. 게시글과 댓글에 '좋아요'를 누를 수 있고, 베스트 댓글과 HOT 게시판 기능을 운영하고 있어 어떤 의견이 많은 ‘좋아요’를 받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용자들은 에타에서 오가는 의견을 실제 여론이라고 인지할 가능성이 높다. 이 교수는 “이를 유사 통계적 감각이라고 한다”며 “논리적으로 따지지 않고 좋아요 수나 몇몇 댓글을 본 후 경험적으로 직관해 여론을 감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특히 베스트 댓글과 HOT 게시판에 올라온 의견들은 사람들이 많이 동의하는 주류의견이라고 생각하기 쉽다”고 말했다.


공론화는 가능하지만 
공론장까진 어렵습니다

 온라인 공간이 공론장으로서 기능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끼리 대화와 타협을 통해 *숙의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에타를 비롯한 온라인 커뮤니티는 찬성·반대·좋아요 등을 통해 많은 공감을 받은 글이 상단으로 올라가는 형태를 띠는데 이는 숙의와 달리 다수결에 가까운 시스템이다. 이 과정에서 의견 간 숙의와 조절보다는 각자의 의견이 극단적으로 치우치기 쉽다. 강 교수는 “익명 커뮤니티의 경우 극단적으로 찬반이 갈리는 경우가 많은데, 침묵하는 다수는 대부분 중도의 입장이다”며 “그들이 극단적 정보에 노출됐을 때 극단적인 의견에 설득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강 교수는 이어서 “의견에 대한 책임을 지면서도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닉네임을 쓰는 정도의 익명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온라인 공간에서 형성하는 자아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네이버에서 댓글 목록을 열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하지만 에타의 익명 시스템은 발화자를 특정할 수 없어 책임지기 어려운 구조다. A 학우는 장애인 이동권 시위와 베이징 동계올림픽 관련 *혐오표현을 본 경험을 전하며 “비판의 여지가 있는 사안이지만 혐오 정서가 섞이다 보니 단순 비방에 가까운 글들만 유통되는 것 같다”고 우려를 표했다. 숙명여대 법학부 홍성수 교수는 “에타에서 등장하는 혐오표현은 다른 온라인 공간보다 더 직접적인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으며 실질적으로 소수자들의 진입을 막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혐오표현 사용이 증가하면 특정 구성원이 피해를 받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이 교수는 “온라인 공간에서 유통되는 주제와 그 당시의 상황, 반응에 따라 극단적 표현의 사용은 전체 구성원을 잠재적 피해자로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온라인 공간은 공론장이 될 수 없을까? 
 현재 에타는 공론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공론화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은 정부에서 운영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민주주의 서울’ 등의 시민참여 플랫폼이 있다. 민주주의 서울의 경우 ‘시민토론’과 ‘서울시가 묻습니다’라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시민토론은 공감을 100개 이상 받은 시민제안을 검토 및 공론화해서 새로운 정책으로 반영한다. 서울시가 묻습니다의 경우 정책 수립 전·후 서울시가 시민들의 의견을 묻거나 갈등이 있는 주제에 대해 사회적 합의의 장을 마련한다.
 민주주의 서울 담당자 황보은영 씨는 “시행 이후 시민들이 제안 게시판을 통해 간편하게 글을 쓰고 피드백을 제공받으며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민주주의 서울은 오프라인 공론장을 함께 활용한다. 황보 씨는 이에 대해 “디지털 소외계층이 소통과정 참여에 유리하도록 만들고, 온라인 공론장에 부족한 책임성과 신뢰도를 오프라인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고 전했다. 다양한 시민들의 평등하고 자유로운 참여를 위해 공론장의 형태 및 시스템을 정비한 것이다. 이 교수는 “쌍방향 소통을 위해 구성된 공론장의 경우, 일반 시민들의 제안을 통해 사회 현장에서만 알 수 있는 중요한 문제들을 다룰 수 있다”며 “언론이나 정부 등 다른 공식적인 기관에서 제시하기 힘든 문제들을 드러낸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더 다양한 공론장을 상상하기 위해
 자유롭고 평등하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공론장을 위해서는 사회를 구성하는 각 주체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에타의 경우 대학 사회에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혐오표현 등 구성원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극단적인 표현에 대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인권센터 등 학내 교육기관의 역할도 중요하다. 우리 학교 자과캠 인권센터 전유경 직원은 “코로나19로 인해 행정지원 등이 이전처럼 활발하게 이뤄지진 못하고 있으나 공론장에 진입하는 개인들의 인권 감수성 향상을 위해 노력할 의향이 있다”며 “어떤 단위의 공동체에서든 문제가 생겨 상담받고 싶다면 편하게 연락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본지를 포함한 교내 언론 또한 건강한 공론장 형성에 대한 책무가 있다. 성대방송국 임세아 보도부장은 “여러 형태의 공론장에서 벌어진 일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취재원을 확보해 정확한 정보를 신속히 전달해야 한다”고 답했다. 총학생회 등 학생 자치 기구의 노력도 필요하다. 제54대 총학생회 Spring(인사캠 회장 장필규, 자과캠 회장 최유선)은 이와 관련해 ‘성균인 백인소’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장 회장은 “‘성균관 백인소’는 학내 사안에 대한 학우들의 의견을 공론화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아쉬움과 공식적으로 수렴할 창구가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정책”이며 “학내 구성원이라면 모두가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며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론장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자세다.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안전한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공론장에 관한 논의가 더 많이 이뤄져야 할 시점이다.
 

◆숙의=깊이 생각하여 충분히 의논함.
◆혐오표현=Hate Speech. 증오표현이라고도 한다. 인종, 민족, 성별 등 특정한 속성을 갖는 집단이나 개인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비하, 비방, 모욕, 협박하거나, 차별, 적의, 또는 폭력을 선동하는 행위를 말한다.

 

우리 대학의 도전학기제 공청회.

 

전대넷의 등록금반환 시위 모습.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제공

 

에브리타임 웹페이지 첫 화면.
ⓒ에브리타임 홈페이지 캡처

 

민주주의 서울의 시민참여 과정.
ⓒ민주주의 서울 홈페이지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