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나래 기자 (naraekim3460@naver.com)

가명점주 피해 막기엔 부족한 법률
기업을 변화시킬 힘을 지닌 가치소비

 

지난 1월 초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은 본인의 SNS에 공산주의를 멸한다는 뜻의 ‘멸공’ 키워드를 단 게시물을 연속해 올렸다. 정 부회장의 발언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거부감을 느낀 일부 누리꾼은 스타벅스와 신세계백화점, 이마트 등 신세계 계열사 제품을 불매하겠다고 선언했다. 정 부회장의 게시물이 며칠간 화제에 오른 끝에 1월 10일 신세계의 주가는 전일 대비 6.8% 하락했다. 경제계에서는 이것이 바로 ‘오너리스크’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오너의 잘못이 일파만파로 퍼지다
‘오너리스크(Owner risk)’는 오너라 불리는 지배주주나 그 가족 구성원의 잘못된 판단 또는 불법행위가 기업 전체에 큰 해를 주는 것을 말한다. 한진그룹의 오너 일가가 땅콩 회항, 물컵 갑질, 가사도우미 불법고용 등의 사건을 잇달아 일으키며 기업의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실추시킨 것이 대표적인 예시다. 오너의 잘못된 행동은 사전에 예측하거나 방지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피해는 고스란히 가맹점주나 직원, 소액 주주에게 돌아간다는 문제가 있다. 2017년 ‘호식이두마리치킨’(이하 호식이치킨)의 최호식 회장이 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최 회장에 대해 큰 비난 여론이 일었고 이는 호식이치킨 불매운동으로 이어졌다. 당시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사건 보도 직후 3개월간 호식이치킨 전체 가맹점포의 매출은 최대 40%까지 떨어졌다. 이처럼 오너리스크는 불매운동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등 기업의 이미지에 지울 수 없는 낙인으로 남는다. 
 

회장님 잘못에 우는 가맹점주, 
실효적인 법률은 부족해

호식이치킨 불매운동의 영향으로 2018년 10월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가맹사업법)이 개정돼 가맹점주가 오너리스크로 인한 손해를 보상받을 여지가 마련됐다. 이에 따라 가맹계약서에는 가맹본부(이하 본사) 임원의 위법 행위 등으로 가맹점주의 손해가 발생할 경우, 본사가 이를 배상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 그러나 법률사무소 서초 김진수 공정거래전문변호사는 “개정된 사항은 가맹계약서에 기재되는 내용에 불과하다”며 “‘본사의 임원이 가맹사업의 신용이나 명예를 해쳐서는 안 된다’는 의무를 직접적으로 명시하지 않아 실효성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오너리스크 피해 예방이나 가맹점주의 권익 보호 차원에서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김 변호사는 “소송 시 가맹점주가 매출 감소 사실뿐만 아니라 그 원인이 본사에 있다는 점을 모두 입증해야 해 어려움이 있다”고 전했다. 

전 빅뱅 멤버 승리가 창업한 것으로 세간의 관심을 받았던 ‘아오리라멘’은 버닝썬 게이트 사건 당시 매출에 직격탄을 맞았다. 아오리라멘 가맹점주 2명은 개정된 가맹사업법을 근거로 2020년 1월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지만 패소했다. 재판부는 가맹계약 상 “본사가 브랜드의 명성을 유지할 의무가 있다”면서도 “그 명성 유지 의무에 사외이사 개인(승리)의 평판을 유지할 의무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임원의 사적 일탈을 본사가 모두 책임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아오리라멘과 같이 임원 개인의 평판이 마케팅에 크게 활용된 경우라면 사정이 다를 수 있다. 김 변호사는 “이런 경우 가맹점주의 피해를 본사가 배상하도록 법률이 보완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기업 총수나 대주주처럼 기업과 연관이 매우 높은 사람이라면 그들의 사적인 위법 행위를 본사가 책임지는 것이 옳다”고 전했다. 


오너리스크는 우리나라에서만 
사용하는 말이다?

오너리스크는 재벌이라는 표현처럼 우리나라에서만 쓰이는 고유한 용어다. 해외에서는 경영진의 부도덕한 행동을 스캔들에 포함해 부를 뿐 우리나라처럼 용어를 따로 정의하지는 않는다. 우리 학교 경영학과 오종민 교수는 “미국을 포함한 여러 선진국 기업의 경우 전문경영인이 경영을 맡기에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있다”고 설명했다. 재벌 가문이 기업 전체를 장악한 것이 아니므로 경영진 한 명의 잘못은 해고나 다른 처벌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2019년 맥도날드의 CEO 스티브 이스터브룩은 사내 규정을 어기고 직원 여러 명과 사적인 관계를 맺어 해고된 바 있다. 

우리나라의 오너리스크는 재벌기업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2000년대부터 재벌 2세의 탈세나 횡령 등이 잦아지며 사회적 화두에 올랐다. 오 교수는 오너리스크를 “경영 능력이 부족한 재벌가문 오너가 경영에 참여해 경영 상태를 악화시키는 것”이라 정의했다. 오너리스크 예방과 피해 완화를 위해서는 이사회와 주주의 역할이 강조된다. 오 교수는 “이사회는 늘 경영진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하며 오너리스크로 인한 손실 발생 시 이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주 역시 기업의 경영진을 견제하기 위해 주주대표소송, 소액주주연대 등을 활용할 수 있다.
 

적극적인 소비문화, 
기업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오너의 잘못된 행동은 소비자의 강력한 불매로 돌아와 기업에 해가 된다. 최근의 불매운동은 ‘가치소비’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가치소비는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소비 방식이다. 가치소비는 불매운동뿐만 아니라 사회적 선행을 베풀거나 친환경적인 기업을 ‘돈쭐’내는 문화 역시 포함한다. 돈쭐은 돈으로 혼쭐낸다는 신조어로 사업자에게 도움이 되고자 제품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것을 말한다. 

A 학우는 2021년 자사 발효유 제품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억제 효과가 있다고 허위홍보했던 남양유업의 불매운동에 참여한 경험을 전했다. 이 학우는 “몇 년 전 해당 기업에서 있었던 대리점 갑질 사건도 되새기며 제품을 불매하게 됐다”고 말했다. 남양유업 불매운동 과정에서 관련 제품을 식별해주는 사이트와 앱이 생기기도 했다. 한편 가치소비자가 선한 영향력에 반응해 돈쭐을 낸 사례도 있다. 지난해 8월 탈레반 집권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아프가니스탄인들을 충북 진천이 수용했고 주민들도 이에 협조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후 진천군 자체 특산물 쇼핑몰인 진천몰의 하루 주문량은 5배 이상 늘어나 한 달 평균 6000만 원이던 매출액은 열흘 만에 1억 1422만 원을 기록했다. 이처럼 소비자는 가치소비를 통해 사회적 효능감을 경험하며 사회에 유의미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우리 학교 소비자학과 황혜선 교수는 “가치소비자는 온라인을 통해 신속히 연대하고 시장 변화를 촉구하고 있어 기업에 충분한 자극이 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가치소비는 오너의 사과나 기업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2015년 미스터피자 정우현 회장이 가맹점주를 상대로 갑질 운영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다음해 경비원 폭행으로 또 한 번의 물의를 빚었다. 이에 대대적인 불매운동이 벌어지자 결국 정 회장은 2년 만에 대국민 사과를 하고 회장직에서 사퇴했다. 황 교수는 “가맹점주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가 불매운동을 주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며 “소비를 통한 의견 표출이 단순한 감정 분출이 아닌 사회적 행동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매운동은 기업의 입장에서 위기지만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황 교수는 “불매운동을 시장의 방향을 읽어낼 수 있는 신호이자 소비자와 소통해야 하는 중요한 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전했다.
 

서울의 한 '호식이두마리치킨' 매장의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는 매장임.
사진|김나래 기자 wingnara1201@
한 '아오리라멘' 매장이 휴업 안내문을 붙인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는 매장임.
사진|김나래 기자 wingnara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