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나래 기자 (naraekim3460@naver.com)

현 체계에선 ‘우영우’와 달리 자립 어려운 발달장애인

자본 논리에서 벗어나 발달장애인의 노동 인정할 수 있어야

 

최근 종영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발달장애인 주인공 우영우가 대형 로펌의 변호사로 취직해 겪는 성장 서사를 그려냈다. 그러나 대부분의 발달장애 청년은 우영우와 다르다. 그들이 일자리를 갖고, 부모의 품을 떠나 지역사회에서 자립해 살아가기 위해 우리 사회엔 여전히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발달장애인 4명 중 3명, 일상생활에 도움 필요해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2021년 발달장애인 일과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15세 이상 발달장애인 중 일상생활에서 도움이 필요한 경우는 74.8%에 달한다. “발달장애 부모들이 자녀보다 하루만 더 살길 바란다는 식의 말을 많이 하잖아요. 사실 부모가 자녀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건 말이 안 되죠.” 김수정씨에게는 자폐스펙트럼장애와 *뇌병변장애를 가진 아들 김동현(28)씨가 있다. “혼자 이동할 수 있고 의사소통도 가능한 경증 발달장애인이지만 독립해서 생활하기는 어려워요. 밥을 하거나 청소를 할 순 없기 때문이에요.” 그는 발달장애인의 경우 신체장애인에 비해 혼자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더 크다고 말한다. 발달장애는 지적장애와 자폐스펙트럼장애를 함께 이르는데, 이중 자폐스펙트럼장애는 높은 비율로 지적장애를 동반한다. 발달장애인은 의사소통과 지적 능력 제한으로, 자립을 위한 생활 기술 습득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한편, 지난 6월 서울시의회는 장애인의 탈시설과 지역사회 정착을 지원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탈시설은 장애인이 24시간 거주하던 생활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자율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거주시설을 퇴소한 장애인은 국가로부터 자립생활주택 등 주거 및 생활 측면에서 지원을 받는다. 탈시설은 서울시의 조례 제정으로 확대 추진될 방침이다. 본 기사는 거주시설에서 살지 않아 탈시설의 경험 역시 없는 발달장애 청년의 삶을다뤘다. 이에 현재 거주시설에서 살지 않는 발달장애인과, 앞으로 탈시설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발달장애인 모두가 자립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살펴봤다. 

 

24시간 촘촘한 지원체계 필요해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이번 달부터 매주 화요일마다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발달장애인의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따르면 주 보호자가 만 15세 이상 발달장애인을 돌보는 시간은 일주일 중 평균 5.8일, 하루 평균 5.2시간이다. 돌봄의 책임이 전적으로 주 보호자에게 있는 셈이다. 이들은 중등교육을 마친 후 낮 동안 머물 곳이 한정된 발달장애인이 자립하기 위해 국가의 촘촘한 지원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소속인 김수정씨는 “모든 발달장애인을 24시간 동안 필수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장애의 정도가 천차만별인 만큼 국가는 개인이 필요로 하는 지원을 맞춤형으로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호자의 돌봄부담을 줄일 24시간 지원체계를 위해선 국가가 발달장애인의 낮 활동과 생활을 지원하고, 노동과 주거, 소득을 보장해야 한다. 현재 발달장애인의 낮 활동, 교육 및 보호 등을 제공하는 국가 서비스로는 △장애인종합복지관 △주간보호센터 △주간활동서비스 △평생교육센터 △활동지원서비스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 수용 가능한 인원이 적어 경쟁률이 높으며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는 한계가 있다. 

 

최저임금 적용에서 배제되는 발달장애인
발달장애인은 △민간기업(37.1%) △직업재활시설(26.3%) △공공일자리(12.4%) △장애인표준사업장(7.0%) (%:*취업자 비율) 등 다양한 곳에서 일하고 있다. 24세 발달장애 청년의 어머니인 김행화씨는 “최근 들어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에서 장애인의 취업 기회가 크게 늘어난 것을 체감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전엔 단순 노무 형태 일자리만 있었다면 요즘엔 사회 전반적으로 문화나 예술 분야에서 장애인 일자리도 점차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 긍정적이다”라고 말했다. 

민간기업 다음으로 많은 발달장애인이 일하는 직업재활시설은 직업능력이 낮은 장애인에게 보호의 기능과 근로의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 근로자에게 부여되는 일은 대부분 단순 공장 노무다. 최저임금법 제7조는 장애로 근로 능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에게는 최저임금의 적용을 제외할 수 있음을 명시한다. 이에 따라 직업재활시설은 상대적으로 근로 능력이 낮은 장애인 근로자에게 주로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지불한다. 인제대 사회복지학과 이선우 교수는 “발달장애인 또한 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최저임금을 보장받아야 한다”며 “정부가 충분히 보조금을 주어 최저임금을 지급하도록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권리중심 일자리, 새로운 고용의 개념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발달장애인 취업자의 77.6%는 건설이나 운송, 제조 등의 단순 노무에 종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동석 교수는 “자본주의 논리를 내세워 발달장애인에게도 비장애인과 같은 생산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소득을 내지 않아도 발달장애인의 사회참여에 의미를 두는 다른 방식의 고용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2020년 12억의 예산을 투입해 최중증 장애인을 위한 권리중심형 공공일자리(이하 권리중심 일자리)를 만들었다. 이는 주민센터의 행정 업무나 공공도서관의 사서를 보조하던 기존의 공공일자리와는 차이가 있다.

권리중심 일자리는 △문화예술 △장애인 권익옹호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 분야에서 장애인이 업무를 수행하고 최저임금을 보장받도록 하는 일자리다. 지난 5월 노들장애인야학의 권리중심 일자리 근로자는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의 공연과 저상버스 인식개선 캠페인을 주최하고 노동으로 인정받았다. 현재 서울시엔 350개의 권리중심 일자리가 있다.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권리중심 일자리를 담당하는 박임당 활동가는 “이전엔 중증장애인을 노동할 수 없는 몸을 가진 존재로만 여겼다”며 “권리중심 일자리는 자본 논리를 벗어나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을 스스로 창출한다”고 말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함께하려면
이동석 교수는 “40세 정도의 발달장애인에겐 비장애인의 65세 수준의 노화가 찾아온다”며 “20대부터 자립하더라도 경제활동이 가능한 기간은 15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따라서 지역사회 전체가 발달장애 청년이 자립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김동현씨는 지난 2년간 동료지원 상담가로 일한 뒤 긍정적인 변화를 맞았다. 어머니인 김수정씨는 “본인의 소득으로 사고 싶은 물건을 사거나 자유롭게 모임에 참석하는 등 원하는 바를 선택하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다”고 전했다. “장애인만 모인 복지관이나 주간보호센터에서 벗어나 다양한 이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 달라졌다”고 덧붙였다. 

이선우 교수는 “현재 최저임금 이상을 제공하는 장애인표준사업장이나 공공일자리 등을 발달장애인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자리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며 “지역사회 곳곳에서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어우러져 일하는 것이 이상적인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 뇌병변장애= 뇌 손상이나 뇌성마비 등 으로 보행 및 운동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
◇ 취업자=경제활동인구조사 주간동안 수입을 목적으로 1시간 이상 일한 사람.

일러스트 | 서여진 기자 duwls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