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2020년 방영된 tvN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는 각기 다른 상처를 지닌 성인들이 주인공 문영의 그림책을 계기로 자신과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장면이 나온다. 이처럼 성인이 돼 읽는 그림책은 어린 시절에 읽었던 그림책과는 또 다른 울림을 준다. 글과 그림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책의 매력에 빠진 성인들은 그림책 모임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림책에 빠진 성인들을 만나보며 그 매력에 같이 빠져보자.


그림책 읽는 성인들
그림책을 보는 성인의 모임이 늘어나고 있다. 2020년 책읽는사회문화재단에 등록된 전국의 독서모임은 2,025개다. 이 중에서 그림책 독서모임은 240여 개에 이른다.
지난 9일 기자는 성동구의 고즈넉한 골목에 위치한 ‘카모메 그림책방’에 방문했다. 카모메 그림책방은 2017년 만들어진 성인을 위한 그림 책방이다. 책방에 들어서니 흰 선반 위에 놓인 알록달록한 그림책이 눈에 띄었다. 책방 한구석에는 어른을 위한 그림책을 추천하는 종이와 그림책 소모임에 대한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카모메 그림책방의 실장 A씨는 “그림책을 읽는 성인들이 많아지자 아늑하고 편하게 그림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고 설립 이유를 설명했다.

성인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림책의 예술성
그림책의 시각적 요소는 독자를 책의 내용으로 이끈다. 그림책의 시각적 요소는 △모양, 선과 같은 기본적 그림요소 △서체와 화면 구성 등의 디자인 △시각화된 캐릭터를 살핀 조형성으로 구성돼있다. 그림책 작가는 예술 양식과 기술을 활용해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시각적 요소를 적절히 활용한 그림책은 독자에게 심미적 경험을 제공한다. 황지영(아동 19) 학우는 “평소 전시회를 좋아하는데 그림책을 보면서도 비슷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며 “미술관이나 전시회보다 접근성이 좋아 코로나 시기에는 그림책을 보는 것으로 문화생활을 대신했다”고 전했다.
그림책은 △서식 △소재 △입체감 등의 요소를 활용해 심미성이 강화된다. 천을 이용해 책을 양장하거나 팝업북 형식을 취하는 것이 그 예다. 그림책은 *파라텍스트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기 때문에 시각과 더불어 촉각을 자극하는 감각적 경험을 제공해 예술성을 더하기도 한다. 안녕달 작가의 그림책 『눈, 물』의 경우 속지를 이용해 이야기를 극적으로 풀어냈다. 『눈, 물』은 눈처럼 부드러운 속지를 사용한다. 그러나 주인공이 ‘눈아이’가 녹는 걸 막기 위해 도시로 뛰어가는 장면에서 속지는 광택이 나는 미끄러운 질감으로 바뀐다. 독자는 속지의 변화를 손끝으로 느끼며 주인공의 조급한 마음을 감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삶의 무게로 지친 어른에게 위로 건네는 그림책
그림과 글을 통한 감각적 예술 경험은 마음을 치유해 주기도 한다. 그림책 테라피는 이러한 그림책의 특성에서 비롯했다. 그림책 테라피는 그림책을 도구로 해 직면하기 어려웠던 자신의 문제를 받아들이는 치료 과정이다. 이는 특정 연령층에 국한되지 않고 유아부터 노인까지 전 연령을 대상으로 한다. 그림책 테라피 수업을 진행하는 황유진 작가는 “그림책을 통해 어떤 감정을 어느 장면에서 어떤 이유로 느끼는지 살펴 감정의 배경을 파악하는 것이 그림책 테라피의 시작이다”고 말했다.

기괴함으로 위로를 주는 그림책
한편 현실을 기괴하게 묘사한 그림책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위로받는 이들도 있다. 김지호(아동 20) 학우는 팀 버튼의 『굴 소년 의 우울한 죽음』을 읽고 “기괴한 그림 이면에는 사랑받고 싶어하는 우리의 모습이 솔직하게 드러난다”며 “그 솔직함이 위로를 건네는 거 같다”고 전했다.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에는 아홉 개의 눈을 지닌 소녀의 이야기가 나온다. 소녀를 보고 소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근사한 일이죠. 여러 개의 눈을 가진 소녀를 사귄다는 건. 하지만 정말 흠뻑 젖어버릴 거예요. 그녀가 펑펑 울어버린다면.” 언뜻 기괴하게도 보이는 내용은 현실 부적응자이자 외톨이인 소년이 소녀와 사랑에 빠지는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줌으로써 위로를 전한다.
이러한 기괴함은 포스트모던 그림책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포스트모던 그림책은 20세기 이성 중심주의에 대한 회의로 탈 이성적 사고의 포스트모더니즘이 대두됨에 따라 생겨난 새로운 갈래다. 이러한 형태의 그림책은 △아이러니 △열린 결말 △애매모호함 △풍자 등을 특징으로 한다.
일각에서는 포스트모던 그림책에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포스트모던 그림책은 독자의 인지적, 도덕적 성숙도가 낮은 경우 독자에게 혼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 아동청소년학과 현은자 교수는 “포스트모던 그림책은 어린이보다 성인을 독자층으로 겨냥한다”며 “그림책이라는 이유로 때문에 어린이용으로 오인하기 쉬워 주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성인 독자만을 위한 성인용 그림책의 등장
성인용으로 분류되는 그림책도 출간되고 있다. 안녕달 작가는 지난 6월 성인을 위한 그림책인 『눈, 물』을 출간해 이목을 끌었다. 『눈, 물』의 주인공인 소녀는 녹아내리는 눈아이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자신이 ‘낳았다’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 눈아이를 사랑했던 소녀는 눈아이를 지키기 위해 도시로 나간다. 그러나 돌아왔을 때 눈은 이미 녹아내리고 없다. 안녕달 작가는 이 장면을 두고 “눈 아이를 개인이 살아온 환경에 따라 단순히 아픈 아이라고 해석할 수도, 나아가 쇠퇴하고 있는 가치로 해석할 수도 있다”며 “개인이 살아오며 지키고 싶어 하는 대상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따라 독자가 다양한 해석을 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독자 유정권 (25)씨는 “눈아이와 소녀를 보며 기러기 가족이 떠올랐다”며 “다양한 이유로 가족의 사랑을 미루는 우리의 현실을 투영할 수 있었다”고 감상을 밝혔다.
한편 오늘날 그림책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어린이용 도서’에 머물러 있다. 안녕달 작가는 “대부분의 독자층이 어린이인 그림책 출판계에서 성인용 그림책을 내기란 쉽지 않았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어른을 위한 그림책 시장이 넓어지려면 그림책 독자층에 대한 인식이 넓어져야 한다. 오늘 밤은 빠르게 돌아가는 화면을 끄고 그림책 한 권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파라텍스트=이야기의 글 주변에 있는 책 모든 부분인 △면지 △속표지 △책날개 △표지 등을 지칭함.

 

카모메 그림책방의 전경.오른쪽 사진은 그림책 『굴소년의 우울한 죽음』의 ‘여러 개의 눈을 가진 소녀’.
카모메 그림책방의 전경.
그림책 『굴소년의 우울한 죽음』의 ‘여러 개의 눈을 가진 소녀’.
그림책 『굴소년의 우울한 죽음』의 ‘여러 개의 눈을 가진 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