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안세현 기자 (sehyun99@skkuw.com)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앞둔 지금, 사고 책임 관련 법안은 미비

제도적 논의 활발히 이뤄져야 해

당신이 탑승한 자율주행차의 브레이크가 고장난 상황을 떠올려보자. 앞에는 길을 건너고 있는 많은 행인이 있다. 만약 자율주행 차가 핸들을 유지하면 행인들이 죽고 핸들을 틀어 경로를 바꾼다면 탑승자인 당신이 죽는다. 과연 자율주행차는 어떤 알고리즘을 따라야 할까. 만약 자율주행차의 탑승자가 죽을 수 있게 프로그래밍 됐다면 당신은 그 차를 사겠는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인 자율주행차
인공지능 윤리 분야의 전문가들은 윤리적 딜레마 상황을 가정해 인공지능의 선택을 연구해 왔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올바른 윤리적 판단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율주행차 사고는 윤리적 딜레마 상황에서 발생하지 않으며 실제로는 기술적 결함이 사고를 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학교 기계공학과 황성호 교수는 “사람도 사고 발생 전 윤리적 판단을 먼저 하지는 않는다”며 “인공지능에게 윤리적으로 옳은 선택을 묻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고 밝혔다. 결국 가상의 윤리적 상황보다 현실적인 환경에서 자율주행차를 운행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위기에 대한 통제가 중요해진 것이다. 이에 국토교통부에서는 2020년 자율주행 자동차 윤리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해당 가이드라인에는 자율주행차가 지켜야 할 기본 가치와 행동 원칙, 행위 주체별 책임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는 가이드라인인 만큼 그 효력은 담보할 수 없다.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정완용 교수는 “가이드라인이 실제 자율주행차 사고가 발생했을 때 법원 판결에 참고 자료가 될 수는 있겠지만 그 자체만으로 법적 효력을 갖지는 않는다” 고 설명했다. 2019년 제정된 자율주행자동차상용화촉진및지원에관한법률(이하 자율주행차법) 은 우리나라 자율주행차의 핵심적인 법안이지만 마찬가지로 사고에 관한 내용은 미비하다. 정 교수는 “자율주행차법은 시범운행 및 연구 단계에서 나아가 상용화를 촉진하는 법률이라 사고 책임 및 운전자의 안전 주의 의무에 관한 내용은 없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자율주행차 사고의 법적 문제를 현행법으로는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

자율주행차가 사고를 냈다
자율주행차 사고는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가 주된 쟁점이다. 현행법에서는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주체가 책임을 진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 택시회사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자율주행차의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면 서비스 사업자인 택시회사가 주요 책임을 지게 된다. 한편 운행자도 대표적인 책임 주체 중 하나다. 자율주행차를 제작한 자동차 회사들과 프로그램을 담당한 설계자 역시 책임 주체에 포함된다. 자율주행차를 활용한 택시나 렌터카 사업의 경우 서비스 사업자들도 책임을 질 수 있다. 자율주행차는 일반 차량과 달리 인프라 기반 운행이 중요한 만큼 교통 인프라를 관리하고 사고 상황을 모니터링 하는 정부, 위임 기관 등의 관리자도 책임 주체가 될 수 있다. 사고가 어느 단계에서 무슨 이유로 발생했는지에 따라 사고의 책임은 분산되기도 한다. 정 교수는 “자율주행차 사고 관련 법은 일반적인 자동차 사고와 기본 법리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배상 책임의 분산이 다소 복잡하게 전개된다”고 밝혔다.

모두의 이동권을 위한 길
국토교통부의 자율주행차 윤리 가이드라인 제2조는 자율주행 자동차가 인간의 행복과 이익의 증진을 위한 수단이기에 모든 사람의 안전하고 편리한 이동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자율주행차는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설계 및 제작돼야 하며 사후 관리 역시 필수다. 황 교수는 “자율주행차는 교통약자들의 이동권에 기여할 것”이라며 “이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남아있는 기술적, 법적 문제 해결을 위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정 교수는 “자율주행차 상용화와 지원을 다루는 법안은 있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안전과 생명”이라며 “자율주행차의 안전 운행 기준부터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전했다.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앞둔 지금, 관련된 제도적 논의는 시급하게 해결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