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찬주 기자 (chanjupark7@gmail.com)

 

각색을 통해 장르의 다양성을 담보해

지나치게 산업적으로 각색에 접근하는 것은 지양해야

지난해 방영된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최고시청률 약 26.9%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원작을 바탕으로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각색은 이전부터 이뤄져 왔으며, 지금은 드라마 웹소설 웹툰 간의 각색이 특히 활발하다. ‘각색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이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각색이란 무엇인가?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각색이란 서사시나 소설 따위의 문학 작품을 희곡이나 시나리오로 고쳐 쓰는 일을 뜻한다. 현재는 사용 범위가 확대돼 어떤 작품을 다른 매체나 장르의 특성에 맞게 변환하는 상황에서도 사용된다. 각색은 이론적으로 크게 충실한 각색 다원적 각색 변형적 각색으로 유형화할 수 있다. 각 유형은 순서대로 원작의 주제, 설정, 인물 등에 충실한 경우 원작의 주제, 설정, 인물 등을 일부 재해석 및 변형하는 경우 원작을 재료 삼아 해당 매체에 적합하게 창의적으로 수정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한편 모든 각색은 다원적 각색의 특성을 지니고 있기에 유형이 명확히 나눠지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윤석진 교수는 유형화를 인정하면서도 원작에 충실하게 각색했을 경우 각색의 의미가 퇴색된다각색은 변화를 반드시 수반하기 때문에 변형적 각색과 다원적 각색을 구분하기 모호하다고 전했다.

최근 세 장르 간의 각색이 활발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기가 검증된 하나의 이야기를 다양한 매체에서 각색해 선보이면 흥행할 가능성이 높고, 각색 작품을 먼저 접한 후 원작을 찾는 소비자도 생기며 양 작품 간 선순환이 이뤄지기 때문이다(본지 1684웹툰·드라마·게임 등 종횡무진매체를 넘나드는 스낵컬처기사 참조).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영상학과 조희영 교수는 네이버와 카카오페이지 등은 웹소설을 웹툰으로, 웹툰을 드라마로 각색하는 방법으로 *IP의 수명을 연장한다고 전했다. 성신여대 창의융합학부 김예니 초빙교수는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가 다른 매체로 각색될 때 생기는 변화를 즐기는 문화 때문에 각색을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매체별 정보량에 따른 연출의 차이는

현재 각색은 주로 웹소설 웹툰 드라마의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나의 작품이 순서대로 세 단계를 모두 거치기도 하고, 웹소설이 곧바로 드라마로 제작되거나 원작이 없는 웹툰이 드라마로 각색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만화문화연구소 이재민 소장은 세 매체가 지닌 정보량이 순서대로 풍부해지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웹소설보다는 웹툰이, 웹툰보다는 드라마가 풍부한 시청각적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웹소설과 웹툰의 차이는 시각화에 있다. 청강문화산업대 웹툰만화콘텐츠전공 홍난지 교수는 글 중심의 웹소설을 웹툰으로 옮길 때는 분량을 압축해 표현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웹소설에서는 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상세하게 묘사해야 하지만, 웹툰에서는 단 한 컷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 웹툰 화산귀환의 경우, 주인공이 느낀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원작에서는 글로 풀어서 설명했지만, 웹툰에서는 주인공의 일그러진 표정과 꽉 움켜쥔 손의 그림을 통해 표현했다.

웹툰이 드라마로 각색될 때의 특징은 어떨까? 이 소장은 세로가 긴 웹툰의 화면보다 가로가 긴 드라마의 화면이 더 많은 시각 정보를 전달한다드라마는 배경음악을 통해 청각적인 자극을 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웹툰 안나라수마나라에서는 버려진 유원지에 보랏빛 불이 켜지는 장면을 스크롤을 내리면 흑백이었던 화면이 색채로 전환되는 연출로 표현했다. 반면 이를 각색한 동명의 드라마에서는 배경음악과 컴퓨터그래픽 등을 통해 시청각적으로 더욱 풍부하게 표현한다. 가톨릭대 학부대학 이상민 교수는 스크롤의 느낌을 살려야 하는 웹툰은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속도감으로 긴장감을 조성한다시청자에게 속도감을 제어할 권한이 없다는 드라마의 특성은 더 많은 정보를 드라마에 담아낼 수 있게 한다고 전했다.

 

각색에 따라 내용은 어떻게 바뀌나

웹소설이 웹툰으로 각색될 때 매체의 특성에 따라 내용이 변화하기도 한다. 웹툰 엔딩 후 서브남을 주웠다황제와 여기사는 많은 내용이 각색된 작품이다. 원작 여성 캐릭터의 수동적인 모습을 더 적극적인 모습으로 나타내거나, 외모를 비하하는 과격한 대사들을 삭제했다. 이에 대해 홍 교수는 이미지와 글이 함께 나타날 때 의도가 더 강하게 전해질 수 있다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완화된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공공성을 띠는 드라마의 특성에 맞춰 원작이 각색되기도 한다. 청강문화산업대 웹소설창작전공 조희정 교수는 방송은 공공성이 강한 매체며 지상파 방송은 가이드라인과 심의 규정이 있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웹소설 재벌집 막내아들에 나온 비속어와 퇴폐적인 상황은 드라마로 각색되는 과정에서 순화되거나 삭제됐다. 또한, 원작에서 주인공이 출세에 맹목적인 중년으로 묘사되는 반면, 동명의 드라마에서는 비교적 정의로운 인물로 그려진다.

한편 웹툰·웹소설이 드라마로 제작될 때는 드라마의 장르 문법에 맞춰 변형된다. 유기적인 서사가 중요한 드라마 장르의 특성에 따라 웹툰·웹소설에서는 설명하지 않아도 됐던 설정이나 서사를 추가하기도 한다. 웹툰 신성한, 이혼에서는 주인공의 친구 관계가 거의 언급되지 않지만, 이를 각색한 JTBC 드라마 신성한, 이혼에서는 주인공과 두 친구 간의 관계를 자세히 보여준다.

 

각색, 장르 간 경계를 허물다

각색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이 교수는 각색은 하나의 이야기를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며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고 전했다. 웹소설·웹툰의 드라마화를 엄숙주의의 완화로 이해하는 시각도 있다. 동덕여대 ARETE교양대학 박수미 교수는 웹툰·웹소설은 거대 담론보다는 독자의 욕망을 구체화해 대리만족을 제공하는 데 주력하는 콘텐츠라며 두 장르의 이런 점이 과거 문화계에서는 환영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드라마화는 의미 있다고 전했다.

각색은 드라마의 다양성에도 기여한다. 윤 교수는 현실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드라마가 웹소설·웹툰과 같은 자유로운 원천 텍스트의 영향을 받아 장르적 다양성도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대중에게 익숙한 로맨스 장르의 웹소설·웹툰의 경우는 기존에도 종종 드라마로 제작됐지만, 최근에는 그 장르가 현대 판타지까지로도 확대되고 있다. 조희정 교수는 지난해 방영된 드라마 어게인 마이 라이프재벌집 막내아들과 같은 작품에 등장하는 일명 회··(회귀, 빙의, 환생) 코드는 2015~2016년에는 거의 웹소설에서만 등장했었다이를 통해 대중이 즐겨 소비하는 이야기의 소재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각색,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최근에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여러 매체의 활용을 염두에 두고 하나의 이야기를 개발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조희정 교수는 매체의 특성을 이해하고 플랫폼의 소비자가 작품에서 무엇을 기대하는지 파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각색해 네이버에서 연재되고 있는 동명의 웹툰의 경우 현재까지 공개된 19회차의 평점이 모두 10점 만점에 8점을 넘기지 못하며 저조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김서우 씨는 드라마에 나오지 않았던 내용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원작과 유사한 내용이 지나치게 빠르게 전개되는 점이 아쉬웠다인물의 생동감과 입체성도 줄어들어 드라마에서 느꼈던 매력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원안의 핵심 메시지를 유지하면서도 장르에 맞춰 제작자의 의도가 드러나는 새로움이 덧붙여져야 좋은 각색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현재 이뤄지고 있는 각색은 자본이 결합된 일종의 문화 산업 콘텐츠이므로 산업적인 논리에만 입각해 각색에 접근하는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 윤 교수는 흥행이 검증된 작품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각색은 작품의 다양성을 훼손하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비주류 작품들까지도 발굴해낸다면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전했다.

웹툰 '화산귀환' 표지.
ⓒ네이버 웹툰 캡처

 

 

웹툰 '엔딩 후 서브남을 주웠다' 표지.
ⓒ네이버 웹툰 캡처
드라마 '안나라수마나'의 한 장면.
ⓒNetflix Korea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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