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율따라, 전율따라 걸어온 50년 외길

기자명 안상준 기자 (mindmovie@skku.edu)

장인(匠人)’. 어느 한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과 기술을 가진 이를 일컫는 이 말은 단지 타고난 재주만을 가지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한 눈 팔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길만을 묵묵히 걸어온 사람. 그 사람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칭호가 바로 ‘장인’이다. 세상이 변하고 평생직업의 개념이 점점 사라져 장인을 찾기 어려워지는 요즘. 본지에서는 50여년 가까이 외길인생을 걸어온 진정한 장인, 한국 락(Rock)의 대부 신중현(65)씨를 만나 장인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 최근 영화 ‘하류인생’의 음악을 담당했다. 이제 연세가 많아 어려운 점도 많았을 것 같은데.

한 가지 일에 열중하는 외길인생이다 보니, 그 집중력 덕에 나이도 잊을 수 있는 것 같다. 집중력이 없어졌다는 것은 사람이 쇠퇴했음을 의미한다고 보는데, 한 가지에 집중하면서 살다보니 쇠퇴할 수 있는 시간이 오지 않는 것 같다.
나이에서 오는 문제보다 이번 영화음악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디지털화를 추구하는 시대임에도 이번 영화음악에는 이런 점이 반영되지 못했다. 영화음악에 새로운 장을 열어보고자 달려들었으나, 녹음실부터 음향기기, 감독의 성향까지 기존에 해오던 틀을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틀을 깨는 대담함이 필요한데, 자신의 기존 방식이 흔들릴까 두려워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아쉬움을 느낀다.

■ 언제부터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지.

어려서부터 음악이라는 그 자체를 좋아했던 것 같다. 어릴 적에는 집이 부유한 편이었기 때문에 당시 귀했던 축음기가 집에 있었다. 그 덕분에 어릴 적부터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는데, 일제시대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구하기가 쉬운 독일 음악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이런 환경 덕에 음악을 쉽게 좋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음악의 장르가 다양하지 않던 시절, 어떻게 락을 접할 수 있었는가.

미8군부대에 들어가 그곳에서 발전된 세계의 음악과 접할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었다. 그 속에서 다양한 장르를 접할 수 있었으며, 락이라는 장르를 알게 됐다. 일제시대부터 내려오던 트로트보다는 발전적이고 새로운 것을 찾던 젊은 시절이었기에 락을 선택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락을 통해 세계적인 음악 흐름을 볼 수 있었으며,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상을 새롭게 정립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접한 많은 장르 중 락에 호감을 가진 이유는 무엇이었나.

한마디로 말해 째즈는 미국만의 음악, 락은 전세계가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이다. 째즈는 흑인들의 토속가락을 백인화하면서 만들어진 미국만이 만들 수 있는 음악이다. 반면 락은 미국에서 탄생했다 할지라도 전세계를 돌며 전세계 사람들이 참여해 재생산된 음악이다. 째즈에서 분리된 쉽고 빠르고 신나는 가락이 전세계의 민속음악과 접목이 된 경우로, 그 덕에 락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통할 수 있는 광범위한 수용력을 가질 수 있었다. 락이 20세기 가장 위대한 음악으로 평가받은 이유 또한 바로 세계 공통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 박정희 정권 시절, 박 대통령 찬가를 지어달라는 요구를 몇 차례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때마다 번번이 거절했다는데 어떤 이유였나.

나는 음악인일뿐 정치에 관련된 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을뿐더러 독재정권을 위해 음악을 만들어 달라는데 달가울 리가 없지 않나. 당시 정권이 갖고 있던 힘으로 대중적, 문화적인 지명도가 있는 사람들을 이용해 자신들의 정권을 정당화, 합법화시키려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대중음악가이고 음악을 사랑하는 대중들을 위해서는 수백 번이라도 음악을 만들 수 있으나, 정권의 선전물로 이용당하는 그런 음악은 절대 할 수가 없었다.

■ 그 이후 음악인으로서의 활동을 금지 당하고 ‘미인’을 비롯한 많은 곡들이 금지곡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생활이 많이 어렵지 않았나.

물론 생활고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음악활동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음악인으로서 음악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생명을 빼앗기는 것보다도 더 심한 고통이었다. 이건 살인행위나 다름없지 않은가. 게다가 같이 음악을 하던 친구들마저 나를 외면했었다. 인간으로서 가장 비참한 생활. 그 때를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냥 잊고 살아야하지 않겠나.

■책상 위에 붙은 ‘상선약수’라는 글귀가 눈에 띤다. 인생관과 연관이 있나본데.

그렇다. ‘도’라는 말로 대표되는 노장사상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박정희 정권 시절 탄압을 이겨낼 수 있었던 힘도 노장사상에서 얻을 수 있었다. 지금도 노장사상을 항상 가슴에 새기고 있으며, 나를 살아가게 하는 기본 바탕이기도 하다.

■요즘 그동안의 음악인생과 음악을 담은 DVD를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 음반 시장이 침체돼 음악이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 위기를 벗어나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기존에 갖고 있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든 분야에서 디지털화를 향해 가는 요즘 이를 수용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본다. DVD는 용량도 클뿐더러 다양한 소리를 내는데 있어 매우 유리하다. 모노와 스트레오를 이용해 CD로 음악을 틀던 시대는 지나갔다고 본다. 이제는 음악을 멀티사운드로 표현해내는 것이 오늘을 사는 음악인들의 숙제이다. 이와 같은 작업이 침체돼 있는 음악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 요즘 음반 시장이 침체돼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중음악계는 어떤 노력을 해야하겠나.

대중음악은 크게 리얼뮤직과 쇼뮤직으로 나뉜다. 하지만 요즘은 리얼뮤직이 완전히 쇠퇴하고 쇼뮤직만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립싱크를 하고 짜깁기를 해서 만들어진 쇼뮤직은 시간이 지나면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대중음악계는 대중들의 마음에 담겨질 수 있는 음악, 리얼뮤직을 해야 한다. 나 역시 음악계를 바꿔놓기 위해 DVD를 준비하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승산없는 싸움에 매달리는 느낌이다.

■ 대중음악은 MP3 불법복제 성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를 어떻게 보는가.

MP3 파일 복제로 음반시장이 많이 침체되면서 대중가요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이 활성화된 요즘, 인터넷을 통해 MP3가 불법복제 되는 현실을 규제하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본다.

어쩔 수 없이 대안은 대중음악의 질 향상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음악인들은 리얼뮤직에 대한 고민을 해야하며, DVD등을 통한 멀티사운드 표현 등을 대안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프로가 되길 바란다. 남들이 세워놓은 기반 위에 안주하는 아마추어가 되지 말고 한 가지 분야에 열중해 그 길에서 전문가가 돼라. 남이 해야 옳은 것처럼 생각하고 따라하는 것에 대한 미련은 이제 버려라.

개인적으로 ‘위대하다’는 말을 참 좋아하는데 모든 사람이 자기가 갖고 있는 재능을 찾아 자기 분야에서 위대해지길 바란다. 기교를 부리기보다는 묵묵히 자기가 맡은 바에 힘써줬으면 한다.

글:안상준 기자 mindmovie@skku.edu
사진:권은태 기자 dmsxo@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