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복제 논쟁

기자명 박현민 기자 (jade84830@skku.edu)

인류에게 축복인가 아니면 재앙인가. 인간복제를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그 중에서도 1999년부터 지금까지 독일의 ‘슬로터다이크(Sloterdijk)’논쟁은 인간복제 논쟁의 전형을 보여준다.

슬로터다이크 논쟁의 시작

「냉소적 이성 비판」이라는 책으로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독일 학자 슬로터다이크. 슬로터다이크는“오늘날 휴머니즘은 죽었다. 생명공학으로 돌아가자”라는 주장으로 인간복제에 관해 찬성입장을 밝혀 독일 지성계에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슬로터다이크는 99년 7월 16일 독일 바이에른에서 ‘존재의 저편. 하이데거 이후의 철학’이라는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에서 「인간농장을 위한 규칙」이라는 논문을 발표해 인간복제에 관한 논쟁에 불을 지폈다. 

슬로터다이크의 주장

이 논문에서 인간복제와 관련해 슬로터다이크는 “자연에 대한 생명공학의 개입은 자연스런 과정”이라고 말한다. 인간복제와 같이 자연에 대한 생명공학의 개입은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슬로터다이크의 주장에 독일 지식인들은 인간복제는 엘리트 인간만을 사육하려 하기 때문에 곧 나치의 인종주의 철학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한다. 슬로터다이크는 생명을 윤리적 측면에서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입장에서 추구한다는 것이다.

‘슬로터다이크 논쟁’의 핵심은 인간복제가 탈 형이상학적인가 아니면 포스트 휴머니즘적인가라는 물음으로 정리할 수 있다. 탈 형이상학은 인간성을 어떤 이유에서도 훼손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으로 본다. 반면 슬로터다이크가 말하는 포스트 휴머니즘은 변화된 조건에 부합하는 인간의 본성을 탐색하기 위해서는 인간 자체가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수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탈 형이상학적 관점에서는 인간복제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행위고 포스트 휴머니즘 관점에서 인간복제는 인간의 기술 자체가 넓은 의미에서 역사에 속하기 때문에 인간복제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미래의 새로운 인류 창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태어난 인간을 길들이는 것이 아니라 유전공학을 통해 먼저 엘리트 인간을 선별한다는 것이다. 슬로터다이크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신체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더 나은 인간으로 계속 진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슬로터다이크 주장 비판

도덕적 교육이 아닌 유전자 사육에서 새로운 인간성 창출을 말하는 슬로터다이크의 이런 주장에 많은 철학자가 비판을 하고 있다.

투게하트(E.Tugendhat)는 그 가운데 가장 날카로운 비판을 던지고 있다. 투게하트는 도덕은 유전적이라기 보다 사회 문화적 현상으로 학습과 교육을 통해서만 습득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슬로터다이크는 지나치게 많은 부분을 유전자에 기대고 있다는 비판이다. 마찬가지로 슈패만(R.spaemann)도 슬로터다이크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한다. 슈패만 비판은 유전학적 사육 자체의 인위성이 가지는 문제에 초점을 두고 있다. 유전학적 사육을 통해 인간 개선을 위해서는 보다 우월한 인간과 열등한 인간의 기준이 마련돼야 할텐데 그러한 기준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따라서 교육을 사육으로 대체하려는 슬로터다이크는 슈패만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장을 방해하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이다. 또한 생명 윤리학자인 호네펠더(L.Honnefelder)는 자연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존재라는 이유로 비판한다. 자연은 우리가 만들어낸 새로운 인간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슬로터다이크의 주장은 사육자와 피사육자의 구분은 모든 사람이 도덕 주체로 존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평등의 원칙과 충돌하는 위험한 주장이라는 점에서도 비판받는다.

인간복제 논쟁의 과제

이처럼 슬로터다이크의 주장은 △유전자 결정론에 대한 지나친 의존 △인간성과 휴머니즘 △자연의 본질에 대한 오해 등 다양한 이유로 비판을 받는다. 그리고 또 이런 비판은 재반박 된다. 그러면서 ‘슬로터다이크 논쟁’은 인간의 유전자 의존도에 대한 질문부터 난치병 치료와 같은 좋은 목적을 위한 인간 존엄성 훼손은 정당하지 않는가라는 질문까지 다양한 물음을 던져준다. 이러한 논쟁은 독일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유전 공학 분야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선진국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슬로터다이크 논쟁’은 우리에게도 진지한 논의 주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