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강선아 기자 (viariche@skku.edu)

최초의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네덜란드 화학자 야곱 반 트호프는 “가장 혁신적인 과학자들은 언제나 미술가나 음악가이거나 시인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과학과 예술이 우뇌와 좌뇌로 비유되어 별개의 영역으로 규정돼 왔지만‘창조성’에 초점을 맞추면 두 경계가 자연스럽게 허물어진다는 것을 말해준다. 두 분야의 상호작용은 물리학과 미술학의 결합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미술의 표현 방식은 시각적이기 때문에 물리학이론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해내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고전 물리학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해 붕괴되면서 20세기 미술가들은 새로운 시공간의 개념에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영향은 현대 많은 미술 작품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그리트는 ‘거울을 보는 남자’를 비롯해 앞뒤가 뒤섞인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이는 빛의 속도로 달리면 길이가 사라지고 앞뒤가 합쳐진다는 상대성이론을 표현한 것이다. 또한 뒤샹의 ‘계단을 내려가는 나체’는 시간에 따른 위치의 변화를 하나의 캔버스에 그려냈다. 그래서 그림의 어디에서도 나체의 형태는 찾을 수 없고 운동하는 형상만이 보인다. 

누구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은 단연 피카소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피카소는 아인슈타인에게 영향을 끼친 앙리 푸앙카레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앙리 푸앙카레가 자신의 저서인 『과학과 가설』에서 말한 비유클리드 기하학과 4차원에 대한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이후 많은 작품에 이러한 관념을 담게 된다. 실례로 3차원의 공간에 시간이라는 차원을 더해 4차원의 개념으로 그린 ‘아비뇽의 여인들’은 입체파의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피카소는 물체의 완전한 모습을 2차원인 단면에 담아내고자 사물의 앞, 뒤, 위, 아래, 양옆의 육면을 상대적으로 모두 분해해 펼쳐진 그림을 그리게 된다. 이렇게 사물의 큐브를 해체하여 그리는 큐비즘 이론은 상대성 이론과 함께 발전한다. 이러한 큐비즘은 피카소의 ‘화장대’,‘공장’을 비롯해 브라크의 ‘술병과 생선들’,‘바이올린과 물병’등의 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공성훈(미술) 교수는 “입체파나 큐비즘의 미술품은 사물을 보이는 시각 그대로 표현하던 방식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사고체계를 통해 그려내는 것”이라며 “현대미술의 다양성이 전혀 연결되지 않을 것 같은 물리학 이론이 미술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