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김진애(53)씨

기자명 이곤미 기자 (luckygm@skku.edu)

   
많은 사람들이 건축가의 집은 과연 어떨까 궁금할 것이다. ‘가장 큰 향나무집’으로 자택 위치를 설명해주던 인간중심철학의 건축가 김진애. 그녀는 건축도, 글쓰기도 모두 우연이었다며, 그렇지만 인생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우연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본인의 준비와 능력이라고 했다. 일제 시대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건축가의 오래된 집, 소박하게 식물을 심은 사람 냄새나는 뜰에서 건축가 김진애 씨를 만났다.

■ 여성으로서 쉽지 않은 건축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특별한 어떤 사건이나 계기는 없었다. 다만 나는 어렸을 적부터 독립에 대한 의지가 강했고 그 때 내 생각에 이과가 여자로서 보다 독립하기 좋을 것 같았다. 그 중에서도 건축학은 예술과 기술, 그리고 경영이라는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한 소위 '공대스럽지 않은 공대' 학과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 가만히 돌아보면 과거 어느 시점의 선택이 정말 운명적이었다고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 고등학교 때 이과로 진학을 결심하고 건축학을 전공한 것은 '잘 택했던' 나의 운명적 선택이었다.

■ 대학 생활도 남달랐을 것 같은데
국내에서 대학을 다녔을 때는 유신시절이라 대학시절 중 절반은 학교를 안 나간 것 같다. 그렇지만 그만큼 바깥 세계를 더 접하고 더 많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볼 수 있어서 한편으로는 좋았지 않았나 싶다. 결혼한 뒤 27세 때 남편과 함께 한 MIT에서의 유학시절은 흥미와 자유 그 자체였다. 그 곳은 내게 학교라기보다도 일종의 ‘현장’이었다. 박애정신, 혁신적 이론, 기술개발, 기업가 정신의 MIT의 학풍은 나와 코드가 잘 맞았고 나는 그 곳에서 정말 많이 성장했다. 내 계획과 바람들이 결코 꿈만이 아님을 느꼈던 시절이었다.

■ 건축 철학은
건축은 기본적으로 자연에 죄를 짓는 것이다. 그런 만큼 되도록 잘 짓자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다. 또한 건축은 인간 중심이어야 한다. 특히 시각적인 데에서 탈피해 인간의 오감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해야하는데 오감 중에서도 내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촉감이다. 예쁜 건물보다도 앉고 싶고, 기대고 싶고, 만져보고 싶은 건축물이 좋은 건축물이다. 즉 나는 인간적인 터치를 중요시하며, 이런 맥락에서 인간적인 접촉이 많도록 사람 사이의 선을 이어주는 도시가 살기 좋은 도시라고 생각한다. 산본 신도시 등 도시 계획을 할 때에도 이런 부분을 염두에 두었다.

■ 95년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차세대 지도자 100인(이하:타임지)’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선정됐다
나는 평소 인생과 미래에 대해 많은 것들을 계획하곤 한다. 그러나 타임지에 선정된 것만큼은 내 시나리오에 없던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 이전의 내가 전문분야에서 인정받는 사람이었다면 이 사건 이후로 갑자기 나는 기대받는 사람이 됐다. 지난 4·15 총선에 출마하는 등의 정치활동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또 하나 타임지 이후 비리가 많거나 거친 일이라는 기존의 도시·건축 분야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 좋다. 한편 타임지 이후 나에 대해 돈을 많이 벌었다거나, 작은 규모의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등의 선입견이 많이 생겼는데 이런 데에 소신을 잃지 않도록 지난 10년 간 스스로 많은 노력을 했다.

■ 본인을 설명하는 많은 타이틀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그냥 ‘김진애’가 좋다. 사실 아줌마라고 불릴 때가 가장 편하다. 직업이니만큼 도시건축가도 좋고 나 스스로는 ‘멀티인간’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하지만 한편 생각하면 누구나 멀티하지 않은가 싶다. 이름 뒤에 말을 이어 붙여 ‘김진애너지(energy)’라는 말도 마음에 든다. 혹은 김진애 박사라는 칭호도 좋은데 박사라는 말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끝까지 철두철미하게 역량을 쌓는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 앞으로의 계획 역시 기대된다
당분간은 사적인 부분은 잠시 접고 공공 정책에 관련한 일을 하고자 한다. 현재 정부의‘행정복합도시’사업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 사업을 궤도에 올려놓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광복 60주년을 맞아 ‘역사발굴사단’에 참여하며 ‘미래한국 어디로 갈 것인갗에 대한 연구도 할 것이다. 책 쓰는 일은 꾸준히 하려고 한다. 대개 책을 쓸 때에는 전공, 사람과 삶, 그리고 내가 모르는 분야 이렇게 테마를 세 가지로 잡곤 한다.  
그렇지만 앞으로 또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나도, 누구도 알 수 없다. 아직도 내 시나리오 상의 사업은 수십 가지다. 앞일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이 인생이 흥미진진한 이유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