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형진 편집장 (rioter@skku.edu)

얼마 전 낯선 전화를 받았다. 북촌 가회동에 사는 주민인데 제보거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학교 관계자도 아닌데 갑자기 무슨 제보일까? 왠지 모를 궁금증이 의구심을 누르고 그 집을 찾게 했다.

집주인 아주머니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어딘가 낯익은 곳이었다. 바로 영화 '빈집'에서 주인공들이 지나가던 길과 들어가서 머무르던 한옥. 하지만 영화에서의 평온한 느낌과는 달리 그곳은 지금 '전쟁중' 이었다.

제보를 한 아주머니의 집을 제외하면 주변 집들은 모두 공사가 이뤄지고 있었다. 영화 '빈집'의 여주인공이 세상모르게 누워 쉬던 그 의자에서 부수고 깨뜨리는 소리를 들으며 대화를 시작했다.

북촌지역은 6백년의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한옥마을이다.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 사이에 위치한 이곳은 풍수지리적으로도 매우 좋은 위치여서 예로부터 왕실의 고위관직에 있는 선비나 왕족이 거주했다. 때문에 수십년간 정부는 이곳의 전통을 보호하기 위해 각종 규제를 적용했고 주민들의 반발도 많았다.

하지만 지난 01년부터 서울시에서 '북촌 가꾸기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건축에 대한 규제를 많이 풀고 지원금을 지급함으로써 북촌에도 개발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본래 '북촌 가꾸기 사업'은 우리 전통 한옥의 보전을 위해 한옥등록제를 시행하고, 등록된 한옥에 대해 정부가 '겉모습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현대생활에 적합하도록 개보수 비용을 지원해주는 제도다. 심사를 통해 무상 3천만원, 무이자 2천만원까지 지원해주고 개보수한 한옥을 개방할 경우 6천만원까지 지원된다. 하지만 투기꾼들은 이를 악용해 원주민을 내보내고 2층, 3층의 술집 노래방 등 상업건물을 올리면서도 지붕만 한옥으로 만들어 정부의 지원금을 챙기고 있었다.

일반 상식으로는 도저히 용납하기 힘든 이런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을 보고 있으려니 갑자기 지난 학기 우리 학교의 양현재가 머릿속을 스쳐갔다. 6백년 전 선배들의 전통을 이어가며 나름의 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학생들이 결국 내몰리게 된 이유도 문화재 보호라는 명목이었다. 양현재 학생들은 지난 학기말 퇴거조치에 취해졌으며 현재 다시 양현재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학교 당국이 관계부처와 협의에 들어갈 예정이다. 

결과적으로 전통을 보호하고 보전한다는 명목아래 한곳엔 5천만원의 상업지구 지원금이, 한곳엔 퇴거명령이 내려진 것이다.

차를 타고 5분 거리도 채 되지 않는 두 곳에 내린 조치는 분명 모순점이 있다. 지난 양현재 사태에서도 문화재청은 성균관 내 사적인 이득을 위해 문화재를 사용한 업주에게만 퇴거조치를 내렸으나 언론에 크게 보도가 되자 입장이 난처해졌다며 성균관 내 모든 시설을 철수하라고 번복한 바 있다. 이렇듯 그들의 행정편의주의와 확고한 원칙의 부재 속에서 우리의 소중한 유산(遺産)이 얼마나 잘 관리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